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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인터뷰] 이종대 / 대우자동차 회장
[탐방인터뷰] 이종대 / 대우자동차 회장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2.07.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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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대 회장 약력 1941 경남 울주 출생 언양농고, 서울대 독문학과 서울대 대학원(경제학 석사) 미국 하와이대 경제학 박사 1967~75 동아일보 외신부, 정치부 기자 1977~89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무역연구부장) 1989~94 중앙일보 논설위원(비상임) 1989~98 기아경제연구소 소장 1998 기아자동차 기획총괄 사장 1999~2000 국민일보 대표이사 사장 겸 발행인, 편집인 2000~현재 대우자동차 회장 겸 법정관리인 대우차-GM 신설법인 9월 출범... “시장점유율 회복 시간문제” 이종대(61) 회장의 이름 석자 앞엔 언젠가부터 ‘매각전문 법정관리인’이라는 별명이 따라 다닌다.
기아자동차와 대우자동차. 한국 경제에 큰 주름을 만들었던 두 파산기업을 뒤처리하는 일이 그에게 맡겨진 탓이다.
그의 말대로 “한없이 평화롭기만 했던” 대기업 산하 경제연구소 소장의 삶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대신 이미 망해버린 기업의 잔해를 수습해 새 주인에게 넘기기까지 수도 없이 발품을 팔아야만 했다.
지난 4월30일 제너럴모터스(GM)의 대우자동차 인수 본계약이 체결됨에 따라 법정관리인 신분을 겸한 대우자동차 회장인 그의 삶도 중대한 고비를 넘어섰다.
GM쪽은 곧 출범할 신설법인의 회장에 한국인을 임명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자신이 후보 가운데 한사람으로 거론된다는 말에 이 회장은 “GM쪽으로부터 그런 제안을 받은 적도 없지만, 설령 제안이 온다 하더라도 받아들여서도 안 되고, 또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라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이 회장은 “팔자에도 없는 경험을 하고 있지만” 법정관리인 임기가 끝나는 대로 몇년 전부터 재미를 들인 아코디언 공부를 위해 중국으로 떠나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의 다음 행보가 어떠하건 간에 그는 아마도 국내 대표기업의 치부와 한계를 진저리날 만큼 들여다본 사람 가운데 하나로 남을 게 분명하다.
-신설법인의 출범이 애초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 단계의 작업이 정말 힘들다.
법인, 사람, 자산 각각을 본 계약 내용에 따라 서로 갈라내는 일이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자산 가운데 담보로 잡혀 있는 것도 있고 압류된 것도 있고, 망한 기업의 속을 들춰내보니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 예를 들어 98년에는 회사가 임금을 못줘 사무직 사원들이 회사 자산에 대해 압류신청을 해놓은 적도 있다.
이 모든 것을 처리한 다음에 회사를 넘겨줘야 하니까 애초 예정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건 어쩔 수 없다.
8월말까지 모든 작업을 끝내고 9월초에 신설법인을 출범시키는 게 목표다.
-법정관리인 신분으로 겪는 어려움도 많을 것 같은데. 하루하루 법을 어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걸 상상할 수 있나. 전에는 대우자동차가 만든 차를 (주)대우를 통해 외국에 내다 팔았다.
수출대금 가운데 바로 국내로 들어온 것도 있고 다른 곳에 투자되거나 외국에 머물러 있던 것도 있다.
이것 때문에 대우 임원들이 불려가 조사도 받고 하지 않았나. 지금 내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대우자동차와 (주)대우 사이에 주고받았어야 할 이런 돈들을 장부상으로 정리하는 거다.
이런 게 모두 수만건에 액수로는 70억달러 규모에 이른다.
만약에 한건 한건에 대해 검찰이 시비라도 걸고나선다면 나는 곧바로 범법자 신세가 된다.
국내로 들여와야 하는 외화에 대해 장부상으로 상계처리를 한다고 해봐라. 바로 외환관리법 위반이다.
채권단이 면책특권을 주겠다고는 하지만, 일부가 고발이라도 한다면 어찌 될까. 법률만 가지고는 대우자동차 문제를 절대로 처리할 수 없다.
누가 이 일을 맡더라도 부분적으로 법을 어길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주)대우가 대우 브랜드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도 갈등의 소지를 남길 텐데. GM과의 계약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없나? 국내 그룹 계열사들이 법적으로는 다른 법인이면서도 실제로는 한 회사의 여러 부서인 것처럼 운영되지 않았나. 전에는 별로 문제가 안 되었는데 막상 회사상황이 어려워지니까 서로 욕심을 부리는 쪽으로 변했다.
조만간 쌍방이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 선에서 타협할 것으로 본다.
GM은 이 문제에 이해관계가 없다.
계약서에는 ‘대우 브랜드를 대우자동차가 확보해서 GM에 넘겨줘야’ 하는 걸로 명시되어 있다.
-기아자동차에 이어 대우자동차까지 처리했다.
두 경우 사이에 다른 점은 뭔가?
기아의 경우 해외부문이 문제가 안 됐고, 계열사 내부문제도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우자동차의 경우 GM에서 받을 돈, 대우 자산 매각분, 현금자산 등을 다 더해 정리계획안을 만들어 법원에 제출해야 하는데, 채권단만 1950명이다.
대우자동차의 부채가 20조인데 비해 예상되는 변제율도 아주 낮을 것 같다.
-최종변제율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정리계획안을 최종적으로 작성해 인천지법에 제출할 때 결정될 것이다.
-이제 부평공장 얘기를 해보자. GM이 정말 인수할 것으로 보나? 분명히 3~4년 안에 인수할 것이다.
협상과정 중에 GM쪽으로부터 들은 것도 있고, 본 계약 내용을 봐도 그렇다.
부평공장 인수조건이 양해각서(MOU)를 맺을 당시에는 ‘노사관계, 생산성, 품질 등 GM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돼 있었다.
하지만 본 계약을 맺으면서 분명하게 객관화하자고 요구했다.
계약서에는 ‘전세계 GM 공장의 지난 3년간 평균분규일수’, ‘전년대비 연간 4% 성장’ 등의 문구가 들어 있다.
현재 수준에서도 얼마든지 도달할 수 있는 조건이다.
-GM 인수팀이 신설법인의 본사를 부평공장으로 정했는데(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GM이 부평공장을 조기에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가시화했다고 보는 반면, 신설법인을 이끌 닉 라일리 사장은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이런 해석을 경계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30년 역사의 부평공장은 대우자동차와 기능적으로 따로 떼어낼 수 없다.
전산시설에다 엔진공장도 있고, 연구개발(R&D) 기능도 맡고 있다.
GM쪽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GM이 신설법인 본사를 서울에 둘지, 부평에 둘지 고민하다 결국 부평을 선택한 것만 봐도 부평공장의 중요성을 잘 알 수 있다.
-대우자동차의 기존 해외판매망은 어떻게 되나? GM이 인수하지 않는 해외판매망 가운데서도 GM은 일부 딜러와 계약을 체결해서 활용할 계획인 것으로 안다.
무상 보증수리 규정만 봐도 그렇다.
인수 전에는 대우가, 인수 후에는 GM이 이를 담당해야 하는데, 연속성을 위해서도 GM이 기존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게 유리하다.
여기에 GM 고유 판매망이 더해지면 대우 고유 판매망만을 이용할 경우보다 판매량이 2~3배 늘어날 것이다.
특히 미국 시장에는 GM 딜러만 4천곳이나 된다.
물론 미국 시장에서 대우 브랜드를 사용하지 못하는 게 문제긴 하지만, 부평공장 인수에 관건이 될 생산량 증대에는 큰 도움이 된다.
-기존 대우자동차 임원진의 거취도 관심거리인데. 본 계약에 기존 임원진을 데려간다고 명시됐다.
본 계약을 체결한 뒤 내가 상무까지 데려가라고 GM쪽에 요청했다.
얼마 뒤 GM은 문서로 그러겠다고 알려왔다.
현재 대우자동차에는 사장 2명, 부사장 3명이 있을 뿐이고 전무는 없다.
결국 상무 이하는 100% 승계되는 것이고, 사장과 부사장은 선별적으로 승계된다고 봐도 된다.
이 회장은 법정관리인이라는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인식시키려는 듯 인터뷰 동안 애써 말을 아꼈다.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GM쪽이 답변할 사항이라며 에둘러 가기도 했다.
다만 GM에 인수된 대우자동차가 결국 하청기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세간의 의구심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였다.
한때 경제연구소를 이끌던 학자의 풍모가 묻어나왔다.
이 회장은 하청관계가 뭔지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대우자동차의 경우 R&D, 판매, 생산 기능 모두를 담당한다는 점에서 섣불리 GM의 하청기지로 폄하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그는 “그러나 설령 하청기지라 하더라도 무조건 나쁘다고만 볼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경우에 따라서는 종업원들의 고용을 승계하는 게 최우선 과제가 되는 수도 있다는 지론을 펴기도 했다.
그는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후 2년간 실직상태가 주는 고통을 몸소 겪었던 적이 있다.
그때의 체험은, 그가 이번 대우자동차 매각 과정에서 고용승계 문제에 임하는 데 개인적으로 중요한 배경이 됐다.
그는 GM에 인수된 뒤 대우자동차의 국내외 시장 점유율은 곧바로 높아질 것이라고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대우사태 이후 대우차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30%선에서 10%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 가운데 10% 정도는 신뢰도가 떨어진 데서 비롯된 것이다.
GM이 들어오면 이 부분은 금방 회복이 될 것이다.
” 대우자동차가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많이 무너졌다는 점은 이런 판단에 근거가 된다.
“GM이 해외영업을 하면 해외시장에서도 대우차 점유율이 올라간다.
생산물량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대당 생산비용을 떨어뜨릴 거고 결국 국내경쟁력도 높아진다.
”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부평공장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바다.
혹시라도 부평공장 처리 문제와 관련해 김우중 회장으로부터 직간접적 메시지를 받은 적이 없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전혀 없다”는 짧은 대답이 곧바로 튀어나왔다.
대신 이 회장은 기아자동차와 대우자동차를 잇달아 매각 처리한 기억을 떠올리는 듯 “김선홍 회장, 김우중 회장, 다들 어쩌다가…”라며 말끝을 흐렸다.
순간 씁쓸한 표정이 그의 얼굴에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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