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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중소기업 발전에 일생거는 인쇄장이- 류기정 / 삼화인쇄 회장
[사람들] 중소기업 발전에 일생거는 인쇄장이- 류기정 / 삼화인쇄 회장
  • 한정희 기자
  • 승인 2002.07.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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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을지로입구 외환은행 본점 맞은편엔 요즘 SK텔레콤의 빌딩 공사가 한창이다.
그 바로 뒤편에 이 대형 공사와 대조되는 낡은 2층짜리 흰 건물이 주변의 시선에는 아랑곳없이 둥지를 틀고 앉아 있다.
그러나 현관 옆에 걸려 있는 목재 간판은 자긍심이 배인 듯 당당하다.
삼화출판사. 이 건물 2층에 류기정(80) 삼화출판사 겸 삼화인쇄 회장의 사무실이 있다.


언론출판계에 종사했던 사람이라면 국내 인쇄업계의 리더격인 삼화인쇄소를 모르지 않으리라. 삼화출판사는 삼화인쇄소의 계열사이고 류기정 회장은 삼화출판사는 물론 삼화인쇄소 역사를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그의 나이가 32살이던 1954년에 삼화인쇄소를 설립해 현재까지 국내 인쇄문화를 주도해오고 있으니 벌써 48년째다.
이제 그는 백발이 성성한 여든살의 노인이 됐지만, 인쇄출판문화에 대한 열정은 아직도 처음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중소기업이지만 인쇄에 관한 한 톱이오. 수출도 제일 먼저 했고, 컬러 인쇄도 제일 먼저 시작했고, 기술자를 독일로 보낸 것도 제일 먼저요. 지금은 하루에 600컨테이너 분량의 인쇄물을 수출합니다.
국제 수준에 손색이 없지요.”

그동안 삼화인쇄소에서 찍어낸 잡지를 비롯한 인쇄물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현재도 '여성중앙21', '마담휘가로', '까사리빙', '세시' 등 상당수의 월간지들을 이곳에서 인쇄한다.
최근에는 홈쇼핑 카탈로그 등 부수가 100만부를 넘는 인쇄물들도 도맡아서 하고 있다.


60년대에는 10만원짜리 수표권도 인쇄했고, 전매청에서 나오는 담배갑을 인쇄하기도 했으며, 어두운 시절 지성계의 나침판과도 같은 역할을 했던 '사상계'나 인기 여성잡지 '여원' 등도 다 삼화인쇄소가 아니었다면 빛을 보지 못했을 정도다.
그가 인쇄업에 자긍심을 가지고 인쇄문화에 앞장서게 된 것은 한국의 인쇄문화가 독일의 구텐베르크보다 77년이나 앞섰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인쇄문화에서 우리 민족은 자긍심을 느끼지요.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만 하지만 사명감 없이는 못 하지. 사실 인쇄업이 돈은 많이 안 돼요. 돈은 나보다 더 잘 버는 사람이 있잖아. 그러나 인쇄는 나만큼 아는 사람이 없지. 인쇄업자는 예술가예요.” 류 회장은 한국의 브리태니커 사전과도 같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인쇄해낸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60년대에는 삼화출판사를 만들어 교과서를 찍어냈고, 그 뒤에도 아동용 책을 많이 만들어오고 있다.
현재 삼화인쇄소 경영은 아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삼화출판사 경영을 담당하고 있다.


그의 그간 활동은 중소기업 발전을 위한 꾸준한 노력의 역사이기도 하다.
류 회장은 71년부터 10년간 국회의원으로, 그의 표현에 따르면 ‘외도’를 했지만, 그 외도 덕분에 80년부터 9년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중소기업 발전 관련 법률 등을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견실한 중소기업을 이끌어왔다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제가 꿈꾸는 건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두텁고 넓은 층을 이루는 계란형 자본주의예요. 그러려면 중소기업과 자영기업이 발전해야지요. 앞으로 남은 여생도 이런 활동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류 회장은 92년부터 8년간 122개 국가가 가입하고 있는 ‘세계중소기업연맹’ 회장을 역임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에는 회원국들로부터 종신 명예총재로 추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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