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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자동차 소비가격 평준화
[유럽] 자동차 소비가격 평준화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2.08.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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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유럽에서 자동차 구매 패턴이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앞으로 자동차를 구입하려는 유럽 소비자들은 동일한 대리점에 전시된 여러 회사 제품을 서로 비교한 다음 구매할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각 대리점은 지정된 특정 회사 부품 외에도 자유로이 여러 회사 부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게 됐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리점이 온갖 종류의 자동차 관련 부품을 판매하는 ‘전문매장’ 기능을 떠안을 수도 있다.
자동차 판매시장에 완전경쟁을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새 규정이 마련됨에 따라 이제 유럽 자동차산업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근본적 변화를 겪을 전망이다.


7월17일 유럽연합 경쟁위원회는 몇년을 끌어온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자동차 판매시장을 완전 자유화하는 새 규정을 확정해 발표했다.
이 규정의 핵심은 1985년 이래 17년 동안 유지돼온 이른바 ‘집단면제’ 조항을 철폐하는 것이다.
그간 자동차 소매를 담당하는 대리점은 이 조항에 따라 특정 완성차 업체와 독점계약을 체결하고, 그 업체에서 생산한 자동차만을 전시 판매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대리점은 독점계약을 맺은 완성차 업체로부터만 부품을 공급받아 판매해왔다.



한 대리점서 모든 자동차·부품 판매


사실 이 조항은 여타 산업의 경우 소매시장에서 독점판매권을 엄격히 금지하는 것과는 달리 경쟁금지법안에 일종의 예외규정을 인정하는 것이다.
설령 이 조항으로 대리점이나 소비자의 권리가 어느 정도 제한받는다 하더라도 유럽 자동차산업이 경쟁력 있는 소수 업체의 손에 집중되는 것을 막는 반독점 효과가 더 크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자국 자동차산업을 보호하려는 각국 정부의 이해관계도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완전경쟁 압력에서 벗어나 안정적 판매망을 확보하려는 자동차 완성차 업체들은 이 조항의 최대 수혜자였다.
완성차 업체들이 나라별로 서로 다른 소비자가격에 동일한 모델을 판매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 조항 덕분이다.


하지만 자동차산업만이 자유화와 완전경쟁이라는 대세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주장이 점차 커지면서 이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덩달아 힘을 얻었다.
무엇보다도 유럽 단일시장이 형성되고, 특히 단일통화가 도입된 마당에 복잡한 규정 때문에 동일한 모델 가격이 나라별로 큰 차이를 보이는 현상은 없어져야 한다는 논리를 피해 갈 수 없었다.
각국 소비자단체들은 다양한 제품을 비교 구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자동차 소비자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이 조항을 폐지하도록 강한 압력을 행사해왔다.
각국의 완성차 업체들이 이 조항을 유지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안간힘을 쓴 건 물론이다.


이번에 마련된 새 규정은 크게 두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우선 대리점과 완성차 업체 사이의 독점판매 계약은 금지된다.
이제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대리점은 모든 업체 제품을 자유로이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예컨대 앞으로는 각종 스포츠카만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대리점이 출현할 수도 있게 됐다.


그 다음으로 대리점 영업구역 제한이 완전히 풀렸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앞으로는 유럽연합내 어느 지역에서든 자유로이 대리점을 운영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경우에 따라서는 막강한 자금력을 갖춘 소수업체가 백화점 체인을 열 듯 여러 나라에 대리점을 개설하는 상황도 나타날 수 있다.


이번에 확정된 새 규정은 대리점 영업구역 설정과 관련하여 두가지 선택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만일 완성차 업체가 판매대행 계약을 맺은 대리점에 대해 특정한 영업구역을 지정하면, 대신 그 대리점은 지정된 영업구역 밖에서는 자유로이 일반 슈퍼마켓이나 인터넷 판매업체에 자동차를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반대로 완성차 업체가 대리점에 대해 슈퍼마켓이나 인터넷 판매업체에는 자사 제품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대신 영업구역 제한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 마련된 새 규정이 앞으로 유럽 자동차산업을 근본적으로 뒤바꿀 만한 위력을 지녔다는 데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도 자동차 소비자가격이 전반적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자동차 판매시장에 완전경쟁이 도입될 경우, 최대 수혜자는 일반 소비자들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동일한 모델에 대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주고 구입해야만 했던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등의 소비자들은 이번 조처를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현재 각국별로 자동차 소비자가격은 큰 편차를 보이고 있다.
예컨대 독일에서 가장 대중적인 폴크스바겐 골프 모델의 경우, 독일 소비자들은 핀란드 소비자들에 비해 30.5%나 비싼 돈을 내야 한다.
푸조 406 모델은 독일에서 1만7131유로에 판매되는 데 반해, 그리스에서는 고작 4761유로를 주고도 살 수 있다.


이처럼 동일한 모델이라 하더라도 나라별로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물가수준 이외에도 독점판매 계약 등 여러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새 규정에 따라 독점판매 계약제도가 사라질 경우, 유럽 각국의 소비자들은 소비자가격에 대해 좀더 완전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설령 새 규정에 따르더라도 자동차 소비자가격이 당장 큰 폭으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각국의 자동차 소비세 구조가 덩달아 변화하지 않는 한 가격인하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들은 덴마크나 그리스 등 신차 구입시 상대적으로 높은 세금을 매기는 나라의 대리점에는 매우 낮은 세전 가격에 제품을 공급해왔다.
앞으로는 이들 대리점이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서도 대리점 영업을 할 경우, 완성차 업체들이 예전처럼 혜택을 줄 수 없다.
7월1일부터 르노가 덴마크에 공급하는 세전 가격을 6.5% 올린 데서 잘 드러나듯, 소비자가격 인하효과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국경넘어 영업… 국가간 가격편차 감소


게다가 완성차 업체들의 강력한 저항에 밀려 새 규정 가운데 영업구역 제한 폐지 조처의 시행일자가 2005년 10월로 미뤄진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당장 오는 10월부터 대리점에서 여러 종류의 모델을 전시 판매한다 하더라도 당장 소비자가격 인하 효과가 나타나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


이번에 확정된 새 규정이 가져올 변화가 단지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넓어지고 자동차 소비자가격이 어느 정도 평준화하는 데 그치는 건 아니다.
대리점이든 완성차 업체든 예전보다 훨씬 강력한 경쟁압력에 직면하리라는 건 분명하다.
벌써부터 오펠, 피아트 등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업체들의 진로가 더욱 불투명해지는 반면, 다임러크라이슬러, BMW, 푸조 등의 시장점유율은 더욱 높아질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그간 특정 업체와 체결된 독점계약에 따라 평균적 수익성을 보장받았던 대리점들 역시 경쟁에 노출되기는 마찬가지다.
앞으로 유럽 자동차 판매시장이 자금력을 갖춘 소수 판매업체를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도 높다.
“새 규정의 도입이 가져올 가장 확실하고 빠른 효과는 아마 대리점 수가 줄어드는 대신, 그 규모가 커질 것”이라는 언론의 지적은 짚고넘어갈 만하다.


대신 유럽 시장에 진출하려는 역외 완성차 업체들에는 새로운 활력소가 될 가능성도 높다.
예전보다는 판매망 확보가 손쉬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이사 위르겐 후베르트가 이번에 확정된 새 규정의 핵심내용을 두고 “역외 업체들만 유리하도록 만드는 역차별”이라 반발한 데서 이번 조처가 가져올 파장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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