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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나이 많은 게 죄인가요?
[커리어] 나이 많은 게 죄인가요?
  • 황보연 기자
  • 승인 2002.08.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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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재수생인 박종현(29)씨는 지난해 대학을 ‘코스모스 졸업’했다.
그는 지금까지 100군데가 넘는 곳에 입사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제 일반 기업체에 취업하는 것은 거의 포기한 상태다.
1974년생인 그의 나이를 문제삼는 기업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별수없이 지난 3월부터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자신의 적성을 고려하면 영업사원이 딱 어울리는 직업이지만 어쩔 수 없다.
박씨는 “재수를 한데다 군대에 갔다와서 복학시기가 맞지않아 반년 정도 쉰 것이 이렇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며 “주변 친구들도 연령 때문에 본인이 원하는 직업을 갖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면접과정에서 노골적으로 나이를 문제삼진 않았지만, 주로 졸업이 늦어진 데 대해 집중적 질문공세를 받은 것으로 봐선 그의 나이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각 대학 취업지도과나 채용정보회사에 가면 이처럼 ‘나이’ 때문에 자신의 적성을 살려 취업하지 못한 사례가 수두룩하다.
물론 거꾸로 기업이 피해를 보는 일도 적지 않다.
채용시 연령을 제한하는 오래된 관행이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세대 김농주 취업담당관은 “대기업들이 2002년을 기준으로 대학졸업자는 남성 1975년생, 여성 1978년생으로 연령을 제한하고 있다”며 “정형화된 틀에 맞지 않으면 응시원서 접수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서비스 업종 특히 심해


온라인 리쿠루팅 업체 스카우트 www.scout.co.kr에 따르면 7월20일 현재 채용공고를 낸 6410개 업체 중 나이를 제한하고 있는 곳은 모두 3517개 업체로 나타났다.
전체의 54.9%에 달한다.
2002년 1월(55%)부터 6월(50.6%)까지의 조사에서도 채용공고를 낸 기업들의 절반 정도는 꾸준히 ‘나이’를 응시조건의 우선순위로 내걸었다.
평균 제한연령이 31.6살(1월 기준)이라는 것은 현실을 피부로 절감하게 해준다.
특히 중소기업에 비해 대기업들이 연령문제에 엄격한 편이다.
업종별로는 서비스쪽에서 연령제한 사례가 좀더 두드러진다.


한국노동연구원 금재호 연구위원이 지난해 경인지역의 50인 이상 기업 1003개 업체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음식점 등 접객서비스부문에서 전체의 56%(평균 제한연령 32살)가 채용시 연령을 제한하고 있다.
평균 제한연령이 상대적으로 높은 건설현장의 관리감독직(61.5%, 43.6살)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대신 프로그래머 등 소프트웨어 기술직의 경우 29.6%만이 연령제한을 두고 있어 차이가 크다.
김농주 취업담당관은 “대인접촉을 하는 판매서비스쪽은 연령제한이 많은 편”이라며 “은행의 경우도 연령제한 조건에서 하루만 어긋나도 원서 자체를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전했다.
여성이 ‘연령차별’로 받는 피해는 더 심각하다.
한국여성민우회가 2000년에 구인광고 1394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모집공고 중에서 연령을 제한한 곳은 68건으로 남성만 모집하면서 연령을 제한한 51건보다 더 많았다.
여학생들이 채용과정에서 가장 크게 겪고 있는 차별도 바로 ‘연령’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실제 기업들이 채용시 연령을 제한하고 있는 이유를 들어보면 그다지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상당수 기업들은 ‘나이가 많은 신입사원은 대하기 불편하다’거나 ‘조직내 위계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인크루트 이민희 홍보팀장은 “쉽게 말해 자기 ‘아래’ 직원을 채용하면서 나이 많은 사람을 뽑기 싫은 것”이라며 “나이 차이가 어느 정도 벌어져야 원만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보수적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재호 연구위원도 “나이가 많은 사람이 들어오면 동료관계도 안 좋고 상사가 지시하기도 껄끄럽고 해서 결과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보는 것 같다”며 “생산성에 근거한 채용이 이루어지고 임금과 보직도 그에 걸맞게 결정되는 풍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내 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시 연령을 제한하는 관행은 공개채용을 시작한 1937년부터 시작됐다.
일본식 기업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후 연령에 따른 위계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명목으로 이같은 차별 관행은 굳어졌다.
이처럼 취업 연령을 제한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등 몇나라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은 ‘연령차별금지법’을 만들어 구직자들이 자유롭게 직장에 진입할 기회를 주고 있다.
40대가 되어도 적합한 인재라는 판단이 서면 신입사원으로 받아들인다.
연령차별로 직업을 가질 기회를 제한하게 되면 고용기회 평등 위반으로 소송당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연령제한의 기업관행을 이식시킨 일본조차도 취업 상한연령은 평균 39.1살로 한국보다 훨씬 유연하다.


최근 들어서는 이러한 보수적 관행에 제동을 거는 조짐도 일부에서는 나타나고 있다.
우선 기업들의 채용방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총이 ‘2002년 신규인력 채용동태 및 전망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920개 기업 중 89.8%가 ‘수시채용’ 방식으로 신규인력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연간 1~2회로 나누어 정시채용을 실시하는 기업은 5.9%에 불과했다.
지난해 수시채용을 한 기업의 비율이 70.4%였던 것과 비교한다면 채용방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젊은 신입사원을 대거로 채용하는 공채위주에서 전문지식이 풍부한 경력자 위주의 수시채용 방식으로 옮아가고 있는 것이다.
경총의 이호성 사회복지팀장은 “연령차별은 기업의 연공서열식 시스템에서 비롯됐다”며 “그러나 최근 기업들이 연봉제를 도입하는 등 성과나 능력위주의 인사관리로 전환하는 추세여서 연령차별도 완화될 것”으로 분석했다.



연공서열식 기업문화 개선해야


여기에다 올 봄 시민단체들의 연령차별 철폐 목소리가 높아 우호적 여론이 조성됐고 정부도 최근 신규인력 채용시 응시연령을 제한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국회에선 최근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 등 의원 28명이 취업시 연령차별 금지를 골자로 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고용정책기본법을 개정해 현행 취업기회의 균등한 보장을 위해 연령차별금지도 명시하자는 것이다.
제도개선을 위한 분위기도 어느 정도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연령제한을 명시하는 업체가 줄어든다 해도 실제 차별적 요소가 제거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연령제한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두산, 제일제당 등의 사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2000년부터 연령차별을 없앤 제일제당의 한 인사담당자는 “우수한 인력의 취업기회를 가로막지 않기 위해 연령제한을 없앴다”며 “그러나 실무부서장들이 직접 면접을 하다보니까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이를 고려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두산 역시 1999년 연봉제를 도입하면서부터 나이를 제한하지 않고 있지만, 예전과 큰 차이는 없다는 평가다.


또 경력직 위주의 수시채용에서도 ‘나이’는 현실적 고려사항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대리나 과장급을 지원할 때, 서른다섯을 넘긴 경우는 지원해봐야 좋은 소식을 얻기 힘들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연령차별을 금지하도록 기업들에 강요하는 것은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입사원서를 받을 때 연령을 제한하는 것은 법으로 막을 수 있지만 채용결정 과정에서의 제한은 막기 힘들다.
연령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하더라도 ‘남녀고용평등법’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문화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
결국 뿌리깊은 연공서열식 기업문화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 것도 이 때문이다.
리크루트 이정주 대표이사는 한 토론회에서 “지식산업시대로 전환하면서 노동시장 측면에서 볼 때 연령제한이 의미없는 분위기가 성숙되고 있다”며 “그러나 뿌리깊은 사회문화적 요인과의 갈등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총 이호성 팀장도 “기존 인사관리 시스템이 변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채용제도만 바뀌면 자칫 기업문화에 치명적 손상을 입을 수 있다”며 “무조건 강요하는 것보다는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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