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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지하경제 양지화 "글쎄"
[초점] 지하경제 양지화 "글쎄"
  • 박형영 기자
  • 승인 2002.08.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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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이자를 연 70% 이하로 규제하는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양극단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자제한법의 부활을 주장해오던 참여연대와 민주노동당 등 사회단체에서는 사채업자의 고리를 보장해주는 악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반면, 사채업자들은 더이상 영업이 불가능하다며 불법영업이라도 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대부사업자연합회(한대련) 유세형 회장은 “현 상황에서 이자율을 70%로 제한한 것은 영업을 하지 말라는 소리”라며 “그동안 사채를 이용해온 신용불량자들은 갈 곳이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소비자금융연합회(한금련) 이선재 사무국장은 “제한이율이 90%선으로 거론될 때만 해도 회원사들 사이에서 ‘어렵지만 해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는데 70%로 결정되고 나니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한금련은 “최근 250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부업 등록을 하고 합법적으로 영업하겠다’는 응답이 17%(43개사)에 불과했다”고 발표했다.
응답자의 83%(207개사)는 지하에 숨어서 지금과 같이 고리의 사채업을 하거나 상품권 할인 등 유사업종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대부업법은 대금업의 소액대출에 한해서 이자제한의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점 외에는 긍정성이 전혀 없는 사실상의 고리대금업 육성법”이라며 “대부업법을 폐기하고 이자제한법을 부활하라”고 촉구했다.



시민단체 이자제한법 부활 촉구


과연 대부업법은 사채업자들의 목을 옥죄는 법인가, 아니면 고리대금업을 육성하는 법인가. 한금련은 최근 10억원의 자금을 연리 18%에 조달해 사채업을 할 경우 연리 90%로 대출하면 연간 3067만원의 순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70%로 대출하면 1억440만원의 손실을 보게 된다는 손익계산서를 제시했다.
비용 항목에는 초기 투자비용(2억원), 인건비(1억2천만원), 광고선전비(1억1400만원), 대손충당금(1억720만원) 등이 포함됐다.
사채업자들은 이를 근거로 이율이 적어도 90%는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이 500명의 사채업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달금리는 24~36% 수준이고 부실채권은 20~25%에 이르렀다.
이들 수치를 근거로 판단한다면 연리 70%로는 수지를 맞추기 힘들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선재 사무국장은 “토종 대금업체는 대부분 자본금 100억원대 미만”이라며 “이들은 평균이율이 170%에 달하는데 이들에게 갑자기 70%로 줄이라는 건 사채업을 그만두라는 말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서 영업하는 일본 대금업체도 이자를 98~146%까지 받고 있고 저축은행도 85%까지 받는다”고 덧붙였다.
사채업자들은 자신들이 높은 이율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만큼 많이 떼이기 때문이지 폭리를 취하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참여연대 김남근 협동처장은 “사채업자들의 조달금리가 일본계는 16~18%지만 토종업체는 대부분 30~40%에 이른다”며 “이런 경쟁력없는 사채업자는 도태시키고 경쟁력있는 사채업자만을 양성화하는 것이 마땅한데, 그런 관점에서 70%는 너무 높다”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은 “대부업법은 옛 이자제한법상의 법정 최고금리 25%를 훨씬 초과하는 과도한 수준의 이자율로 폭리행위를 합법화하고 있다”며 “사회와 제도가 발전할수록 시장금리가 하락한다는 이치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저발전된 1960년대(40%)보다도 못하며, 고려시대(연 33.3%)에 비교해서도 크게 뒤지는 시대역행적 기준”이라고 혹평했다.


민주노동당은 또한 사채업자들의 편법을 우려하고 있다.
3천만원 미만의 대출에만 법이 적용된다는 점을 악용해 3천만원 이상의 대부계약을 강요하거나 개인과 개인간의 거래로 위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쪽은 이 법의 이자율 규제가 사채에만 적용될 뿐 은행, 카드사, 상호저축은행 등 제도권 금융회사에는 적용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사채보다 이자율이 높은 제도권 상품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 단체는 근본적으로 이자제한법을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남근 처장은 “이자제한법을 부활해 25~40% 이자율을 모든 금융거래에 적용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사채업자의 양성화를 위해 그들에게 10~20% 정도 더 인정해주는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금융감독원 조성목 비제도금융조사팀장은 “사채업자들을 일단 그물망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조 팀장은 “일본은 83년에 대부업법을 도입했는데 그때 제한 이율이 109.5%였지만 이후 10여차례에 걸쳐 차츰 낮춰 지금은 25%를 적용하고 있다”며 “일단 사채업자들을 제도권으로 흡수한 다음 시행령에서 이자율을 계속 떨어뜨리면 된다”고 말했다.



사채업자 피나는 자구노력 해야 생존


문제는 얼마나 많은 업체가 대부업 등록을 하고 양지로 나올 것인가다.
일본에서는 대부업법을 도입할 때 19만개 업체 중 1만9천개 업체만 등록했다.
조 팀장은 “우리도 일본처럼 10분의 1만 양지로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대금업체는 모두 2만~3만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사업자등록을 한 대금업체는 4천여개 정도다.
조 팀장은 “대금업체는 사업자 등록을 안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심지어는 업자가 주민등록에 올라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며 “그동안 금감원에서 접수를 받은 5천여건의 피해사례를 분석해본 결과 양지에서 광고도 하고 공개적으로 영업을 하는 곳은 문제를 안 일으켰는데 이런 곳이 결국 문제를 일으켰다”고 말했다.
우선 사채업자를 양지로 나오게 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사채업자들은 법이 시행되면 지하로 잠적해 현재와 같은 고리대금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한 사채업자는 “사채업자들은 법 밖에서 일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라며 “정부에서 6개월 동안 집중 단속한다고 하는데 업자들은 농담삼아 ‘그동안 동남아 여행이나 갔다오면 되지’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부는 불법영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우선 사채광고에 등록번호를 기재하도록 하면 미등록 업체는 광고를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불법 영업을 한다면 고객에게 약점을 잡혀 채권회수가 어려워질 것이란 기대도 있다.
재경부에서는 신고자에게 보상을 하는 방법도 강구하고 있다.


금융전문가들은 사채업자들이 앞으로 살아남으려면 자구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선 조달금리를 10%대로 낮춰야 한다.
국내에서 영업중인 11개 일본계 대금업체들은 국내 저축은행으로부터 연 17%에 3천억원이 넘는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국내 대금업체들이 이런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규모를 키우고 신용도를 높여야 한다.
부실대출도 줄여야 한다.
앞으로 대부업법이 시행되면 과다한 빚독촉 행위가 처벌되기 때문에 대출조건은 자연스럽게 까다로워지게 된다.
이런 자구노력을 통해 비용을 절감한 업체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사채시장의 급격한 위축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이 경우 사채를 이용했던 신용불량자나 저신용자들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하는 대책도 필요하다.
금감원이 최근 사채이용자 6820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과소비나 다른 빚을 갚기 위해 사채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의료비나 학자금 등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하기 위해 사채를 이용한 경우도 11%에 이른다.
조 팀장은 “3분기부터 시행되는 개인워크아웃 제도로 개인의 신용을 회복해주고, 자기 신용에 맞는 대출상품을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해서 정보의 불균형으로 인해 사채업자를 찾는 경우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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