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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2. "타향살이 이토록 서러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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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철 기자
  • 승인 2002.08.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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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싶지 않은데 나가라고 하네요. 우리는 컴퓨터도 잘 알고 한국말도 잘 합니다.
마음 놓고 일하고 싶어요. 2년쯤 더….” 한국에 온 지 2년 된 인도인 노동자(26)는 말끝을 흐렸다.
방글라데시 출신 노동자(24)는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내년 3월에 안 나갈 겁니다”라며 걱정스러워했다.
그는 2000년에 입국해 화학공장과 전구공장에서 일을 했고, 심장이 좋지 않아 1년 동안 놀고 있다.


지난 7월 정부는 27만명으로 추정되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를 내년 3월까지 전부 출국시키고, 대신 외국인 산업연수생 수를 기존 8만명에서 13만명으로 늘리는 ‘외국인력제도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노동력 22만명이 부족해진다.
이에 외국인 노동자가 가장 많이 몰려 있는 안산이 술렁이고 있다.



늦도록 일해도 월급 90만원 남짓


금요일 오후, 반월공단 거리는 너무도 한산하다.
다들 공장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연료파이프 도금업체인 예성에서는 직원 11명 가운데 3명이 외국인 노동자다.
이들 외국인 노동자는 인도네시아 출신 불법체류자로, 자진신고를 한 상태다.
이들은 월급 90만원에 식비 10만원을 받는다.
이들도 원하지는 않지만 내년 3월에 출국해야 한다.


예성 경창영 사장은 “가끔 채용공고를 내보면 한국인은 오지 않고, 외국인만 연락해온다.
불법체류자라도 사람이 없으면 써야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는 “내년 3월에 강제출국이 집행된다면 인력난이 심각해지고 공장 가동을 중단할 수도 있다”며 걱정했다.


도금, 염색, 피혁 등 3D업종은 다른 업종보다 외국인 노동자 의존도가 높아 정부 방침에 불만이 많다.
반월공단의 다른 도금업체 D사는 20명의 외국인을 고용하고 있다.
한국인보다 인건비가 싸지만, 그보다는 사람이 없어 외국인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공장의 김아무개 이사는 “내년 4월부터 외국인 불법체류자를 단속한다는데, 공장 문을 닫으라는 말이냐”며 “산업연수생으로도 인력이 부족하면 불법체류자라도 고용하겠다”고 말한다.


오후 7시가 넘었지만 공단거리에는 아직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공단 안에 드문드문 자리잡고 있는 2평 남짓한 조그만 가게들이 외국인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간혹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가게는 이 지역에선 ‘대형 매장’이라고 부를 만하다.
한 구멍가게의 주인 아주머니는 “여기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공단내 휴식공간”이라고 말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주중에는 공단을 떠나지 않는다.
주로 주말에 안산 시내로 나간다.


반월공단의 다선섬유를 찾아갔다.
필리핀 청년 발 프레도(38)는 “매월 기본급 100만원을, 잔업을 할 때에는 110만원을 받는다”며 “대우에 만족한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해 4월 산업연수생으로 와서 줄곧 다선섬유에서 일했다.
그는 “사장님이 좋은 분이어서 가능하면 여기에 계속 있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주말에는 부족한 잠을 보충하고 교회에서 예배를 본다.
TV 프로그램 가운데 ‘개그콘서트’를 즐겨본다는 그가 공장내 자신의 방으로 기자를 안내한다.
방은 두평 정도로 생각보다 넓고,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천장에 야광 별이 붙어 있다.
“불을 끄면 고향의 별 아래 누워 있는 느낌이에요.”


가족과의 국제통화로 외로움 달래


다선섬유 장순복(57) 사장은 “사람이 부족해 산업연수생 2명, 자신신고한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2명을 고용하고 있다”며 “외국인 노동자들은 착하고 성실해서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반월·시화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모두 11만6천여명이다.
이 가운데 4만명 정도는 외국인일 것으로 추산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업체 사장은 “여기 외국인 노동자 중 70~80%는 불법체류자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불법체류자는 월 80만~100만원, 산업연수생은 40만~50만원 정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흥진정공 홍승석 과장은 “7월 중순에 들어온 인도네시아인 세명에게 각각 잔업수당을 합해 월 80만~90만원을 주고 있고, 식사와 기숙사도 제공한다”고 말한다.
그는 “연수생은 기협중앙회에 신청해야 받을 수 있는데, 배정받기가 까다롭다”고 덧붙인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부정적 평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서로 임금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쉽게 일하는 공장을 옮긴다는 것이다.
러닝머신 제조업체인 자코휘트니스 박웅규 사장은 “2년 전에 파키스탄 출신 산업연수생을 월 60만원에 채용했는데, 무리하게 높은 임금을 요구하다가 석달 만에 그만뒀다”고 사례를 든다.
반월·시화공단에 입주한 업체들에 따르면 이 지역 외국인 노동자들의 급여는 국내 다른 곳보다 많은 편이다.


안산역에서 5분 거리인 원곡본동. 이곳은 ‘국경없는 마을’로 불린다.
외국인에게는 해방구 역할을 한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4만명에 이르는 원곡본동 거주자의 절반가량은 외국인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거리에는 간자체 한자와 파키스탄 문자로 된 간판을 달고 있는 상점이 줄지어 서 있다.
4, 5년 전부터 중국인도 많이 들어와 차이나타운이 형성되기도 했다.


파키스탄의 식료품과 비디오테이프 등을 판매하는 ‘아바시’에 들렀다.
주인은 파키스탄인 아바시(30)로, 한국인과 결혼한 합법체류자다.
불법체류자 강제출국에 대해 한국인 부인은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지만, 외국인 노동자들 대부분이 그냥 계속 일했다는 설명이다.
스리랑카 가게에 들어가니 2명의 스리랑카인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가게 한쪽 벽엔 각종 할인전화카드 광고가 빽빽하게 붙어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고향 가족과 전화로 대화를 나누며 외로움을 달랜다.
자갓(30)은 6년 전에 한국에 왔다.
기계조립공장에서 일하며 월급은 100만원을 받는다.
그는 “고향에 있는 애인에게 전화를 자주 하며, 내년에 결혼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그는 처음엔 산업연수생으로 일했는데, 월급이 50만원도 안 돼 도망쳐나왔다.



강제출국 조처에 시름은 더해가고


8월11일 일요일 오후. 원곡본동 거리를 다양한 인종의 외국인이 메우고 있다.
이날만큼은 자유를 맘껏 누리리라는 기대에 표정이 밝다.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외국인 노동자 여러 명이 앉아 통화를 한다.
전화기 여러 대를 갖춰놓은 ‘전화방’인 셈이다.
안산외국인 노동자센터는 이국생활에 지친 이방인 노동자들의 피난처로, 일요일마다 붐빈다.
외환은행 안산지점 송재영(44) 차장이 다른 직원 1명과 함께 파견나와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가 고국에 송금할 수 있도록 통장을 만들어줍니다.
주중에 은행에 갈 시간이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격주로 일요일에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 필리핀의 메트로뱅크도 원곡본동 성당에서 자국민을 대상으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보스토 파카말(34)은 “도금공장에서 1년 가까이 일해 모은 400만원을 송금하러 왔다”고 말한다.


센터의 상담창구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줄지어 서 있다.
상담은 임금체불과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한 중국인 노동자(40)는 “임금이 석달째 밀렸다”며 “사장에게 밀린 임금을 요구하다 폭행까지 당했다”고 하소연한다.
그는 시화의 한 공장에서 잡일을 하고 있다.
“상담 가운데 일부는 외국인이 오해한 경우”라고 한 자원봉사자는 말한다.


인도네시아 출신의 로비(28)는 친구와 함께 ‘누산타라’ 식당을 찾았다.
그는 산업연수생으로 왔다가 도망쳐 불법체류자로 있었지만, 지금은 자진신고를 한 상태다.
그는 “월급으로 90만원을 받는데, 두세 달에 한번씩 100만원씩 고향에 송금하고 있다”며 “귀국하면 장사를 하고 싶다”고 한다.


저녁 무렵 동네 놀이터에서 ‘오동잎 한잎 두잎~’ 노래가 들린다.
매주 일요일 열리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거리축제가 한바탕 벌어지고 있다.
이날은 필리핀 사람들을 위한 행사가 열렸다.
행사는 매주 국가별로 돌아간다.
한국인과 외국인 노동자 30명 정도가 모여 있다.
이들 사이로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의 자원봉사자가 강제출국 반대 전단을 나눠준다.
전단을 받아든 외국인 노동자들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내년 3월 출국해야 한다는 사실이 이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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