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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A&O인터내셔널 ‘무럭무럭’
[비즈니스] A&O인터내셔널 ‘무럭무럭’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2.08.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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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장 안에 은은하게 재즈 음악이 흐른다.
창구 위 TV에선 MTV의 감각적 영상이 떠돈다.
창구엔 독서실처럼 칸막이가 세워져 있다.
한 20대 초반 여자가 직원한테 신신당부한다.
“엄마 아빠는 모르시거든요. 집으로 전화하실 땐 조심해주세요.” 직원은 서류 상단에 ‘가족 비밀’이라고 적는다.
여자의 서류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직업은 텔레마케터, 나이는 21살, 대출 용도는 신용카드 대금.’ 그는 들어선 지 채 한시간도 되지 않아 500만원을 받아들고 문을 나선다.


8월14일 오후 2시, 일본계 대금업체 A&O인터내셔날 강남지점 창구 앞엔 빈자리가 없었다.
10개 창구가 있는 객장에 열대여섯명의 손님이 북적거렸다.
황홍식 지점장은 “점심시간 이후에 가장 손님이 많다”고 말했다.
이곳에선 지점장도 직접 고객상담을 하기 때문에 그 역시 바쁘긴 마찬가지였다.
“하루에 대출신청 서류를 내시는 고객이 서른명 정도 됩니다.
그 가운데 40%가 대출을 받아 가시고요.”

이렇게 돈을 빌려간 고객 100명 중 85명은 월 7.2%의 이자를 꼬박꼬박 내고 원금까지 다 갚는다.
연 86.4%에 이른다.
그나마 지난해 10월보다는 낮아진 금리다.
2001년 10월만 해도 금리는 월 8.1%, 연 97.2%에 달했다.
1999년 3월 금리는 월 4%, 연 48%였다.
금리는 수요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한다.



하루 30여명 대출신청 서류 제출


A&O인터내셔날은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형 소비자금융 업체다.
이 회사는 설립 4년 만에 대출잔액 2500억원, 직원 360여명, 지점 28개로 성장했다.
국내 최대 규모다.
지난해 말 대출잔액이 1900억여원, 직원이 230여명이었던 데 비하면 눈이 번쩍 뜨이는 성장세다.
지난해엔 순이익만 300억여원을 남겼다.
세금 160억원을 떼고 계산한 금액이다.


A&O측은 같은 규모의 다른 저축은행보다 직원이 많아 대출과정이 한시간 안에 끝난다는 점, 어떤 고객한테든 친절하게 응대한다는 점이 영업비결이라고 밝힌다.
대주주인 일본 히타치신판 계열 후지기획에서 파견된 10여명의 지점장이 그런 노하우를 직접 가르친다고 한다.


올해 5월 한국신용평가(한신평)는 A&O에 중견기업 수준의 신용등급을 부여했다.
회사채 신용등급은 BBB-, 기업어음등급은 A3-다.
이런 회사채 신용등급은 하나로통신이나 동일토건과 같다.
한신평은 당시 “A&O는 신용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수익성과 재무건전성이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대부업법이 통과되지 않았고 대금업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시각이 만연해 있다는 점” 때문에 투자적격 등급 중 가장 낮은 BBB-를 부여했다.


한신평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말 현재 A&O의 총자산은 2349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일본에서 들여온 자기자본이 683억원, 일본 금융회사에서 차입한 게 598억원이며, 나머지는 국내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이다.
국내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의 금리는 연 14~18%인데, 연체 없이 기간을 연장하고 있어 적용이자가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A&O의 자금조달 조건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
8월1일엔 연 12.8%짜리 회사채를 100억원어치 발행했다.
7월2일 발행한 회사채 100억원보다 조달금리가 0.2%포인트 낮아졌다.
한 증권 관계자는 “대금업법 시행 이후 선두업체인 A&O의 시장 지위가 안정되면 회사채 발행조건은 더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7월31일 대부업법(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대금업자들은 이 법이 10월부터 시행되면 A&O 등 대형 업체의 시장점유율이 더 높아질 것이다고 말한다.
조달금리가 연 20~30%에 달하는 소형 대금업자들은 법정 금리 연 70%로는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다는 것이다.
2000년 6월 금리인하를 단행한 일본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 많은 소형 대금업체들이 문을 닫았다.


시장 경쟁은 줄어들고 조달금리는 낮아지니 A&O한테는 호시절이 따로 없다.
기업 내용이 더 좋아지면 일본 최대의 대금업체인 다케후지처럼 기업공개를 해 제도권 자금을 더 싸게 끌어올 수 있다.
지금도 코스닥 등록여건은 충족시키고 있다.



10월이후 시장점유율 더 커질듯


그런데 A&O인터내셔날 박진욱 대표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소비자금융 시장이 양성화돼야 일하기가 편해집니다.
대부업법 시행으로 모처럼 물 위로 떠올랐던 대금업체들이 다시 음성화하면 우리도 좋을 게 없어요.” 대금업의 음침한 이미지 때문에 A&O은 영업에 불편한 점이 많다.
일본 대금업체들은 일찌감치 시작한 현금입출금기(ATM) 서비스도 하지 못하고 자산유동화증권(ABS)도 발행하지 못한다.


A&O이 부닥친 벽은 또하나 있다.
‘일본계’라는 딱지다.
한국 진출 일본업체들 사이에선 “한국에선 헌법보다 높은 법이 국민정서법”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로 정서의 벽은 높고 두텁다.
일본 대금업체는 돈 갚지 않는 사람의 자녀 책가방에 독촉장을 넣어 보낸다는 둥, 애완견 귀에 독촉장을 꽂아 보낸다는 둥 근거없는 소문이 루머 차원을 넘어 언론보도에서까지 거론된다.
70~80년대 일본에서는 그런 일들이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일본에서도 그런 일은 극히 드물다.


여하간 184억원의 자본금을 전액 일본 주주가 출자한 A&O으로선 그런 소문이 반가울 리 없다.
그런데 나쁜 보도가 나가면 되레 손님이 늘어난단다.
언론보도를 보고 찾아오는 것이다.
그만큼 사채 수요가 많다는 뜻도 된다.


박 대표는 “법 시행 뒤 이자를 낮추면 대손을 줄이기 위해 우리도 대출 기준을 강화하게 될 것”이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제도권 업체에서 돈을 빌리지 못한 사람들은 비제도권의 고리대 자금을 쓸 것이 뻔하다.


금융감독원 조사에 따르면 사채 이용자 중 44.2%가 병원비 등 급전을 조달하기 위해, 또는 실직이나 사업실패로 부족해진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채를 쓴다.
72년의 8·3 사채 동결조처, 이자제한법, 금융실명제 등 갖가지 정부 규제에도 불구하고 사채 수요는 살아 있다.
수요가 있는 한 시장은 죽지 않는다.
문제는 그 시장이 얼마나 건강하게, 건전하게 돌아가는가 하는 것이다.


A&O는 최근 10억원의 기금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올해엔 고객 자녀 일부와 성지고 등 실업·기술계 고등학생들한테 모두 6천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한다.
앞으로도 회사가 계속 돈을 잘 벌면 기금 규모를 100억원 정도로 키울 계획이다.
박 대표는 겸연쩍게 말한다.
“고리로 벌어들인 돈인데요. 자랑할 게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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