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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마이너리티 리포트 / 필립 K. 딕 지음 / 집사재 펴냄
[서평] 마이너리티 리포트 / 필립 K. 딕 지음 / 집사재 펴냄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2.08.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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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1 도나의 예언: 국제퇴역장교연맹 총사령관 캐프랜은 경찰국장 앤더턴을 납치해 범죄예방 시스템을 해체하라고 위협한다.
앤더턴은 거부하고 상원에 범죄예방 시스템을 지켜달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내전을 우려한 상원은 범죄예방 시스템을 해체하기로 결정한다.
앤더턴은 캐프랜을 습격해 쏴 죽인다.


리포트2 제리의 예언: 경찰국장 앤더턴은 자신이 캐프랜을 죽일 것이라는 예언을 범죄예방 시스템이 발동하기 전에 미리 보게 된다.
살인자가 되면 경찰국장으로서 명예와 가정의 행복은 산산조각나버릴 터. 그는 마음을 바꿔 살인을 포기한다.


리포트3 마이크의 예언: 앤더턴이 살인을 포기함으로써 범죄예방 시스템의 예언이 빗나갔다는 것이 입증된다.
범죄예방 시스템은 다시 존폐 위기에 처한다.
범죄예방 시스템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고 경찰의 권위를 유지하려면 범죄예방 시스템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앤더턴은 캐프랜을 쏜다.



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앤더턴은 세 예언자의 리포트를 모두 읽는다.
그런데 이런! 세 예언자의 예언은 모두 달랐다.
컴퓨터 시스템은 서로 다른 예언의 결론들을 취합해 ‘앤더턴은 캐프랜을 죽인다’는 내용의 메이저 리포트를 만든다.
메이저로 채택되지 않은 리포트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로 폐기된다.
메이저를 만든 건 시스템 그 자체였던 것이다.


앤더턴은 경찰의 범죄예방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는 미래를 ‘선택’한다.
그의 선택은 메이저 리포트를 만드는 시스템을 지켰을까? 소설은 그가 캐프랜을 죽이고 돌아올 기약 없이 도피길에 오르는 데서 끝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원작자 필립 K. 딕은 마이너리티로 살았다.
그가 다섯살 때 푸줏간을 운영하던 아버지와 세금검열관인 어머니는 이혼했다.
캘리포니아 버클리고등학교 졸업장이 학력의 전부다.
버클리대에 입학하긴 했지만 이내 학교를 그만두고 텔레비전 수리공, 레코드 상점 직원, 라디오 아나운서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한다.



영화로 인해 사후에 빛보다


작가가 된 뒤에도 삶은 평탄치 않았다.
그는 각성제 과다복용으로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네번째 아내는 가난에 지쳐 그를 떠난다.
그는 지구 둘레를 돌고 있는 외계인의 인공위성으로부터 어떤 신호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살아 있는 동안 그는 장편소설 48편, 단편소설 100여편 등 무척 많은 소설을 썼다.
그러나 그중 어느 하나도 뚜렷하게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단적인 예로, 그는 기성문단에서 주는 상은 하나도 받은 적이 없다.
물론 휴고상 등 SF문학상은 많이 받았다.


그의 작품은 죽은 다음 메이저로 떠오른다.
그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원작으로 삼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개봉된 1982년 이후 그의 문학은 SF팬 바깥에서도 호응을 얻기 시작한다.
그의 소설은 할리우드에서 '토탈리콜', '스크리머스' 등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미국 작가 어슐러 르귄은 그를 “미국의 보르헤스”라고 치켜세웠다.
90년대 들어서는 노벨상 후보로까지 거론됐다.
하지만 이 모두 '블레이드 러너'가 개봉되기 직전에 그가 심장마비로 죽은 뒤에 일어난 일들이다.


딕을 메이저로 띄워올린 일등공신인 할리우드는 이 ‘마이너’적 작가의 작품을 ‘메이저’적으로 바꾼다.
할리우드판 딕의 SF들은 원작과 구성도, 결말도 완전히 다르다.
할리우드가 사용한 것은 원작의 아이디어뿐이었다.
딕의 팬들이 “원작을 훼손했다”며 아우성칠 만하다.


그런들 어떠하리. 막대한 자금이 투자된 상품의 미덕은 일단 잘 팔리는 것이다.
흥행의 귀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미션 임파서블'의 주인공 톰 크루즈는 변두리 SF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메이저 할리우드 영화의 교과서로 변신시킨다.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는 3주째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전국 관객 200만명을 끌어모았다.
무엇의 힘일까?

원작에서 주인공 앤더턴은 뚱보에 대머리이고 젊은 아내를 의심하는 멋없는 중년남자다.
영화에서 앤더턴은 젊고 매력적이며 아이를 잃은 고통에 시달리는 아버지로 바뀌었다.
원작에서 세 예언자는 기형적인 큰 머리통에 쓸모 없어진 몸뚱아리를 가진 백치이며 나이는 40대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이들은 늘씬하고 젊은 신적 존재로 설정된다.
꿈을 투사시키는 영상시스템, 지나는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달라지는 거리 광고판, 예언자가 둥둥 떠 있는 엔돌핀 풀장, 누에고치 모양으로 사람을 가둔 미래감옥 같은 장면은 영화에서만 나온다.



메이저를 만드는 건 시스템?


공통점이라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도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설정은 원작과 다르다.
영화에선 예언자 셋의 예언이 모두 같다.
즉 모두가 메이저 리포터다.
‘앤더턴은 살인을 저지른다.
’ 앤더턴의 상관인 경찰국장 버기스가 앤더턴으로 하여금 살해를 하도록 함정을 파놨기 때문이다.


버기스 국장? 원작엔 없는 인물이다.
굳이 따지자면 원작의 앤더턴이 영화의 버기스에 해당한다.
원작의 앤더턴은 선과 악, 모호한 현실과 미래, 착각과 오해 속에 떠도는 인물이다.
영화는 이 둘을 쪼개놨다.
영화의 앤더턴은 궁지에 몰린 선한 편, 버기스는 음모를 꾸미는 악한 편이다.


성적 매력이 넘치는 주인공들, 선과 악의 대립구도, 화려한 영상적 상상력, 여러명의 시나리오 집필진, 할리우드 최강의 그래픽팀…. 이렇게 쪼개놓고 보니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장치들은 어디서 많이 보던 것이다.
스필버그의 영화제작 시스템을 거쳐 나온 SF 대작들에서 말이다.
영화에서 딕의 아이디어는 자기 소설 속 예언자의 예언처럼 메이저를 구성하는 데 ‘선택’됐을 뿐이다.
역시 메이저를 만드는 건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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