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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1. 재무구조 일단 우량, 그러나...
관련기사1. 재무구조 일단 우량, 그러나...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2.08.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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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한 부채비율, 낮은 현금유동성, 빚을 내서 이자를 갚아나가는 악순환 구조…. 이 모두가 파산기업이라는 단어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그렇다면 재정난을 겪는 것으로 알려진 국내 사립대학들은 온통 ‘부실덩어리’일까? 정답은 일단 ‘아니다’라는 쪽에 매우 가깝다.
오히려 웬만한 중견기업 못지않게 튼튼한 대학들도 수두룩하다.


“말하자면 대학은 ‘현찰장사’라 할 수 있다.
상당한 양의 현금을 손에 쥐고 있는 대학도 많다.
” 한국대학교육연구소 김삼호 연구원의 말이다.
사학진흥재단 고위관계자의 생각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 운영하는 데 적어도 돈과 관련해서는 당장 별 어려움이 없다는 말이 맞을 게다.
” 자산가치가 4천억~5천억원을 넘는 대학들은 한해 동안 굴리는 여유자금만 해도 상당한 규모다.
문 닫는 대학이 나온다는 탄식과는 한참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실제로 문 닫는 대학이 나올지 모른다는 사립대학들의 탄식 속에는 등록금 인상을 합리화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은 편이다.



현찰 ‘장사’로 유동성 좋아


그간 국내 대학들의 경영성적표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알려진 바가 없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회계규정을 엄밀하게 준수하지 않는데다, 교육기관의 특성상 일반기업에서처럼 ‘수익성’이라는 잣대를 곧장 들이미는 걸 꺼려하는 분위기도 한몫 했다.
과연 우리나라 대학들의 재무구조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우선 부채비율을 살펴보자. 이 기준만을 놓고 본다면 국내 대학들은 ‘우량기업’ 수준이다.
물론 일반기업들의 회계방식과 교육기관의 회계방식이 다르다는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국내 사립대학 가운데 2001년 기준으로 부채비율이 100%가 넘는 대학은 단 두곳뿐이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이 비율이 30% 내외 수준을 맴돌고 있다.
여기에는 등록금 수입이 주 수입원인 데서 알 수 있듯이, 대학경영이라는 게 이른바 현찰수입이 많은 사업이라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
말하자면 현금유동성이 무척 높은 편이다.
실제로 금리가 높았을 때는 많은 대학들이 사학진흥재단 등에서 저리로 자금을 빌어 운영자금에 쓰고, 대신 등록금 수입은 금융기관에 맡겨 높은 이자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립대학들이 보유하고 있는 누적 이월적립금 규모가 상당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2000년 현재 그 총액은 3조7878억원에 이른다.
3천억원 이상을 쌓아두고 있는 대학도 한군데 있고, 1천억~3천억원을 적립한 대학도 7곳이나 된다.
게다가 97년 이후 연간 이월적립금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를 보인다.
이러다 보니 상당수의 대학들에서 이월적립금 증가액이 등록금 증가액을 앞서는 모습이 자주 나타난다.
이월적립금 증가액이 등록금 증가액을 넘는다는 말은 대학이 거둬들인 등록금을 교육여건 개선과 같은 직접교육비에 사용하지 않고 쌓아둔다는 걸 뜻한다.
이는 곧 등록금 대비 직접교육비(운영지출+기구매입비+도서구입비 등) 비율, 즉 ‘교육비 환원율’이 100%를 밑도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인상된 등록금 가운데 직접교육비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몫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이밖에도 대학법인이 소유하고 있는 수익용 기본재산 가운데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은 또 하나의 특징이다.
그 비중은 대략 50%를 넘는다.
김삼호 연구원은 “우리나라 사립대학 가운데 상당수가 해방 후 농지개혁 과정에서 비영리재단인 교육사업에 투자하는 조건으로 농지개혁 대상에서 제외된 사례라는 게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이들 수익용 자산으로부터 나오는 연간 수입액이 무척 낮다는 점이다.
재단측은 이처럼 자산평가액과 수입액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법인전입금 형태로 학교 경영에 보탬을 주기가 곤란하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재단이 학교를 도와줄 여력이 크지 않다는 주장을 펴는 것이다.


이런 모습들은 국내 사립대학들이 쉽사리 경영난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일반적 해석에 힘을 실어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방의 군소 사립대학만을 놓고 본다면 사정은 또 달라진다.
재단으로부터 뒷받침이 별로 없는데다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미등록 사태를 가장 먼저 겪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누적 이월적립금이 50억원이 채 안 되는 대학도 지방에는 상당수 있다.
앞으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추세가 이어질 경우, 기본 운영비 지출에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주 수입원인 등록금이 관건


지방 사립대학의 한 교직원은 “군소 사립대학들일수록 학교 규모를 성급히 키우기 위해 토지 매입이나 건물 신·증축 등 이른바 ‘자산적 지출’을 늘리는 데 치중했던 것도 머지않아 문제를 낳을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학교법인의 기본재산에 해당하는 자산을 매입하거나 확충하면서 재단전입금 대신 학교회계에서 돈을 끌어다 쓴 것은 학교 재정을 급속도로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게 분명하다.
재학생 수가 5천명 미만인 군소 대학일수록 자산적 지출 비율은 상대적으로 높으면서 동시에 미충원율은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장 먼저 경영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신용평가를 담당하는 한 애널리스트는 “사정이 상대적으로 나은 대학들이라도 무작정 안심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국내 대학들이 금융기관에 제공하는 담보는 대부분 토지다.
기준시가와 시가의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용도변경 등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금융기관으로서는 별로 매력이 없다.
” 그가 던진 말의 요점은 간단했다.
“가장 안정적이면서 커다란 수입원인 등록금 수입에서 만일 차질이 생기기 시작하면, 부채비율이 오르거나 일시적으로 자금난에 빠지는 건 순식간이다.


국내 사립대학들의 현재 성적표만으로는 대학들이 일시에 구조조정 물살에 빨려들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일부 군소 대학을 시작으로 이미 위기의 조짐이 보이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국내 대학들이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는 적립금을 밑바탕으로 교육경쟁력을 키우는 데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붓지 않는 한, 위기의 순간은 예상보다 더 빨리 우리 곁에 다가올 수 있음을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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