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비즈니스] 민영 의료보험 '쑥쑥'
[비즈니스] 민영 의료보험 '쑥쑥'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2.08.3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부 이모(46)씨는 지난 5월18일 갑자기 쓰러져 가까운 경희의료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뇌동맥류 파열에 의한 뇌출혈이었다.
곧바로 서울대학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았고, 결과가 좋아 6월3일 퇴원했다.
그뒤 다섯차례 정도 통원치료를 더 받았다.
이씨는 이번 일을 겪으며 2년 전 가입해둔 민영 건강보험의 덕을 톡톡히 봤다.
본인 부담금으로 나온 672만원을 거의 전부 보상받았다.
이씨가 가입한 삼성화재의 ‘삼성의료보험Ⅱ’ 등 대부분의 민영 건강보험 상품은 입원의료비는 3천만원 한도 안에서, 통원의료비는 1일 10만원 한도 안에서 전액 보장해준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MRI, 초음파 등 고가진료와 상급 병실 이용료도 예외없이 보장대상에 포함돼 있다.




의료보험’ 건강보험 보완한다


사보험인 민영 건강보험의 본격 도입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미 다양한 민영 건강보험 상품을 내놓고 있는 보험사들은 재정난에 허덕이는 건강보험의 한계를 파고들며 빠르게 시장을 키워가고 있다.
1999년 민영 건강보험 상품으로 처음 선보인 ‘삼성의료보험Ⅱ’는 6월 현재 보험계약 건수가 58만건, 수입보험료는 3340억원에 이른다.
보험개발원은 2005년께가 되면 민영 건강보험 시장규모가 11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이강희 LG화재 상품개발팀장은 “현재 남아 있는 보험시장 중 의료비 시장이 가장 크다”며 “관련 신상품을 계속 만들어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기존 건강보험의 문제점을 보완한다는 차원에서 민영 건강보험의 ‘활성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지키고 있다.
정부는 현재 건강보험의 강화를 주장하는 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잠시 주춤해 있지만, 민영 건강보험 활성화를 위한 후속조처를 조만간 단행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얼마 전 최종안이 나온 보험업법 개정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유사 보험 규제나 보험판매인의 교차 판매 허용 등 큰 이슈에 묻혀 별로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7월 재정경제부가 처음 제출한 개정안에는 “민영 건강보험의 활성화를 위해 보험개발원이 보험가입자의 사전동의를 받아 건강보험관리공단에 개인 질병정보 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사실 민영 건강보험 시장은 일반 보험사들이 손쉽게 뛰어들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민간 기업이 영위하기에는 위험요인이 너무나 많은 분야기 때문이다.
먼저 적정 보험료 산출에 필수적인 통계자료 확보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풍부한 의료관련 기초 자료를 갖고 있는 곳이 건강보험공단이다.
그러나 민간 보험사가 이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지금까지는 전혀 없었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사들이 비록 보험개발원을 통해서긴 하지만 건강보험공단의 풍부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터 줬다는 의미가 있다.


민영 건강보험 활성화의 또 다른 관건은 보험사의 계약심사 능력이다.
김회균 삼성화재 상품개발파트장은 “보험금 액수로만 본다면 민영 건강보험 상품이 크게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질병을 갖고 있는 환자(기왕증 환자)들이 대거 가입한다면 상당한 부담이 발생한다”며 “그동안 섣불리 상품을 내놓지 못한 가장 큰 이유도 이들 기왕증 환자들을 걸러내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험상품을 악용하는 ‘역선택’의 가능성은 보험사들을 괴롭히는 가장 큰 골칫거리다.
삼성생명은 지난해 ‘여성시대 건강보험’ 때문에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요실금 수술비 50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보고 특정지역의 ‘아줌마’들이 대규모로 ‘이쁜이 수술’(질 축소수술)을 한 뒤 보험금을 청구한 것이다.
의학적으로 요실금 수술과 ‘이쁜이 수술’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는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결국 삼성생명은 ‘여성시대 건강보험’의 판매를 전격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박홍민 보험개발원 산업연구팀장은 “건강관련 보험 상품은 합병증, 재발확률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다”며 “일정한 의료지식을 지닌 전문인력이 상품개발이나 계약심사에 참여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은 그럴 만한 전문인력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처음 제출된 보험업법 개정안대로 보험사들이 건강보험공단이 갖고 있는 개인 질병정보를 이용할 수 있다면 계약심사라는 난제는 손쉽게 해결된다.
질병 경력을 바로 확인해 건강한 사람만 받아들이면 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이 문제삼은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국민의 개인정보를 사기업인 보험사에 제공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박홍민 팀장은 “전체 통계를 바탕으로 보험료를 산출하고, 병에 걸릴 사람은 다 빼면 보험사는 땅 짚고 헤엄치는 것과 같다”며 “계약심사는 보험사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결국 보험업법 개정안 최종안에서는 개인 질병정보 제공 규정이 삭제되고 “질병 및 질병치료에 소요된 비용에 관한 통계”만 줄 수 있도록 바뀌었다.


정부는 민영 건강보험의 활성화 필요성을 여러차례 강조했지만, 정작 ‘민영 건강보험’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아직까지 뚜렷한 정의가 없는 실정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건강보험과 민영 건강보험의 관계 설정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 민영 건강보험이 어디까지 보장해 줘야 하는지 전혀 정해진 것이 없는 어정쩡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며 “정부에서 먼저 구체적 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생명보험사가 판매하고 있는 암이나 주요 성인병 등 특정 질병 대상 ‘정액형 상품’과, 모든 질병·상해를 담보하는 내용으로 손해보험사가 내놓은 ‘실손보상형 상품’이 민영 건강보험 상품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종신보험, 장기손해보험 등에도 의료비 보장이 특약의 형태로 포함돼 있는 경우가 많다.
상품 성격이 섞여 있다 보니 중복가입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현재 나와 있는 관련 상품을 민영 건강보험으로 보기에는 보장 내용이 너무 빈약하다는 비판도 많다.
대부분 건강보험 처리를 전제로 하고 있어, 보험 처리를 받지 못한 경우엔 전체 치료비의 40% 정도만 보상해준다.
손해율이 갑자기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보험사가 약관 속에 끼워넣은 ‘숨겨진 예외조항’도 적지 않다.



금 타고 양질의 의료 서비스 혜택


보험업계는 민영 건강보험 시장의 확대 가능성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건강보험의 급여수준이 낮고, 비급여 대상이 많은 현실에서 이를 보완해주는 상품의 등장은 필연적이라는 판단이다.
무엇보다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민영 건강보험 상품이 꾸준히 잘 팔리고 있다는 사실이 시장 전망을 밝게 해주는 가장 확실한 근거다.
일부에서는 차별화된 고급 서비스에 주목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조연행 교보생명 상품개발팀 과장은 “경제적 여유와 함께 차별화된 서비스를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나타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의료서비스 시장이 개방되면 고급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더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교보생명은 2001년 8월 최고급 서비스를 내세운 ‘톱클래스 암보험’을 출시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상품은 주기적인 건강검진과 함께 주치의 서비스, 진료예약 서비스, 2차 소견 서비스, 전문 간호사의 개인전담 서비스, 그리고 해외 유명병원 치료 서비스를 패키지로 묶어 제공한다.
이를 위해 교보생명은 건강관리 서비스 업체인 에버케어와 제휴를 맺었다.
올해 1월부터는 가입금액 1억원 이상인 종신보험 가입자에게도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8월 현재 톱클래스 암보험과 종신보험을 합쳐 7만명의 고객이 에버케어의 서비스를 받고 있다.
조연행 과장은 “다른 건강보험 상품에도 이러한 서비스를 폭넓게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LG화재도 2001년 8월 선보인 ‘365의료건강보험’에 전문의 콜센터 서비스를 넣어 판매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