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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농부에게 금을 먹으라니"
[페루] "농부에게 금을 먹으라니"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2.09.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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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의 산로렌조주에 길게 뻗은 계곡. 페루 레몬 생산량의 90%를 담당하는 이 지역은 일찍부터 과일이 풍부하기로 이름난 곳이다.
대표산물인 레몬 외에도 망고, 파파야, 아보카도스 등 독특한 맛을 내는 이 지역의 과일들은 미국이나 유럽 소비자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주 수도인 피우라 시내 곳곳은 해외로 떠나는 배편을 기다리는 과일상자들이 언제나 그득하다.


산로렌조 지역 안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곳은 인구 2만7천명의 작은 도시 탐보그란데(Tambogrande)다.
이 도시는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7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고, 지난 몇년 동안 과일 수출로 1억달러가량을 벌어들일 만큼 페루 과일농업에서는 손꼽히는 곳이다.
이처럼 페루 과일농업을 상징하던 탐보그란데가 요즘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바로 캐나다의 대표적 광산기업인 맨해튼미네랄이 도시 한가운데에 상당한 양의 금과 은이 매장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탓이다.


맨하탄미네랄은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사업계획을 통해 이름난 농업도시인 이곳을 광산도시로 탈바꿈시키려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알레한드로 톨레도 대통령이 이끄는 페루 중앙정부 역시 맨해튼 프로젝트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떠맡고 나섰다.
이처럼 페루 정부가 덩달아 몸이 단 배경에는 이 프로젝트가 성사될 경우 3억1500만달러의 해외자본이 페루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라는 예상이 깔려 있다.
이 정도 금액만으로도 지난해 0.2% 성장하는 데 그친 페루 경제 전체에 큰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다.



주민 70% 농사… 1만8천명 일자리 위험


하지만 지역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전통적인 과일농장과 광산이 공존할 수 있느냐는 데 이들은 회의적이다.
지난 6월 실시한 주민투표에서는 전체 주민의 94%가 맨해튼 프로젝트에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탐보그란데에서 광산개발이 시작되면 최소한 1만6천명의 주민이 지금까지 살던 주거지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강제이주해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게다가 국내외 시민운동 단체들은 수질오염이나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는다.
광산개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용수를 인근에서 끌어댈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도 한몫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빼놓을 수 없는 건 그간 과일농업에 종사했던 1만8천명분의 일자리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것이라는 데 대한 두려움이다.
지역주민들은 광산개발이 시작되더라도 페루 정부와 맨해튼미네랄이 주장하는 것처럼 일자리가 크게 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맨해튼미네랄은 1850명분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날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 1500명은 단지 광산개발 초기에만 투입되는 인력일 뿐이다.
결국 새로 늘어나는 일자리라고 해야 고작 350명분 정도인 셈이다.


한편에서는 탐보그란데를 광산도시로 개발하는 일이 페루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현행 페루 헌법에는 “국경에서 50km 이내에 있는 지역의 토지는 외국인에게 양도할 수 없다”는 규정이 들어 있는데, 탐보그란데가 바로 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맨해튼미네랄은 내년까지 구체적 환경영향평가서와 사업계획서를 페루 정부에 제출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어 앞으로 공방이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물론 전통적 농업도시가 하루아침에 환경이 파괴된 광산도시로 탈바꿈한 선례를 지켜본 탐보그란데 주민들의 태도는 여전히 단호한 편이다.
그들이 오늘도 어김없이 내건 플래카드에는 이렇게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금을 먹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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