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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카스피해, 국제적 갈등 ‘회오리’
[글로벌] 카스피해, 국제적 갈등 ‘회오리’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2.09.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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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차례 국제적 분쟁이 일어난다면 세계지도에서 그 무대는 어디일까? 아마도 그 답은 카스피해 지역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차차 높아지고 있다.
이 지역을 둘러싼 주요 강대국들의 갈등이 지역내 국가나 인종들 사이의 대리전쟁을 통해 폭발할 가능성마저 이야기되는 상황이다.
카스피해 지역이 국제무대에서 새롭게 전략지역으로 주목을 끄는 이유는 한가지다.
바로 이 지역에 상당한 규모의 석유와 가스가 묻혀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아제르바이잔은 단연 뉴스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1990년대 초 소련의 해체와 함께 시작된 힘의 ‘진공 상태’는 이권을 노린 서구자본과 이들과 깊숙이 연계된 각국 정부들의 이해관계와 맞물리면서 이제 이 일대를 국제적 갈등의 중심으로 밀어넣고 있는 중이다.


현재 코카서스산맥으로 둘러처진 카스피해 인근 지역에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석유량은 대략 500억에서 1100억배럴 규모다.
미국 에너지부는 이보다 많은 2천억배럴가량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매장량이 2620억배럴인 사실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임을 알 수 있다.
지난 2000년 여름에는 카스피해 인근에서 세계 5위 규모의 새로운 유전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이 지역이 국제적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파이프라인 건설 지역 둘러싸고 대립


물론 전문가들은 하루 평균 생산량을 500만배럴로 잡는다 하더라도 카스피해 지역이 세계 원유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8% 정도에 머물 것으로 전망한다.
어림잡아 현재 북해에서 생산되는 양과 엇비슷한 규모다.
카스피해 지역이 새롭게 세계 석유시장에 얼굴을 내밀더라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주도권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카스피해 지역이 뉴스의 초점으로 떠오른 것은 독특한 전략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탓이다.
특히 중동지역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려는 미국의 국가전략은 이 지역을 둘러싼 갈등을 이해하는 첫단추다.
이 지역에서 새롭게 불고 있는 ‘오일 붐’은 OPEC 이외의 지역으로 에너지 공급원을 다변화하려는 미국의 전략에 딱 들어맞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지역이 바로 옛 소련에 속했던 지역인데다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이후 한때 러시아 정부의 시야에서 벗어났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미국으로서는 바로 코앞에서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부수효과도 노릴 수 있는 셈이다.


이 지역에 일찍부터 눈독을 들인 건 바로 다국적 석유회사들이다.
현 미국 부통령인 딕 체니는 지난 98년 석유회사 핼리버튼의 사장으로 있을 당시, “카스피해 지역만큼 하루아침에 전략적으로 중요해진 지역은 일찍이 역사에서 없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적도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도 한때 텍사스 석유회사를 경영한 적이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국적 회사를 앞세운 현 미국 정부의 관심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미국을 위시한 서구의 다국적 석유회사들은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지역내 정치지도자 혹은 군벌세력들과 발빠르게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94년 계약을 통해 아제르바이잔 지역의 석유채굴권을 100년간 획득한 영국계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은 대표적이다.
BP는 별도의 컨소시엄을 만들어 이 지역의 석유채굴 사업을 독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300억달러가 아제르바이잔 정부에 제공됐고, 오는 2015년까지 투자액은 1천억달러로 늘어날 예정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가지 중요한 문제가 떠오른다.
바로 카스피해는 내륙에 있기 때문에 원거리 항해가 가능한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항구까지 석유를 어떤 방식을 통해서든지 옮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채굴된 석유를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항구지대로 옮기는 길은 당연히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 파이프라인이 과연 어느 지역을 통과해야 하는가가 결국 갈등의 핵심으로 등장한 건 당연한 수순이다.
카스피해에서 항구에 이르는 지역에는 수많은 국가들이 인종갈등과 정치적 대립관계 속에 한데 얽혀 있어 문제를 한층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국제무대에서 긴장이 차츰 고조되는 가운데 가장 먼저 목소리를 높이고 나선 건 러시아 정부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세계 1위 석유수출국 자리를 다투는 러시아는 코카서스산맥 인근의 이 지역이 바로 옛날 소비에트연방의 영토였음을 내세우며 우선권을 내세우고 나섰다.
우선 지난해 9·11 테러 이후 미국과 ‘반테러 동맹’이라는 이름 아래 형성된 우호 분위기를 십분 활용해 파이프라인이 코카서스산맥 이북의 러시아 영토를 통과하도록 분위기를 띄웠다.
특히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아제르바이잔을 방문하는 등, 이 지역에 대해 훨씬 많은 관심을 쏟는 제스처를 취하며 미국 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중이다.
특히 서구 국가들은 러시아 정부가 미국 주도의 파이프라인 계획을 수포로 돌리기 위해 몇년 전부터 아제르바이잔의 분쟁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기도 하다.



불안한 지역 정세에 강대국 이권까지 얽혀


물론 미국 정부의 생각은 다소 달랐다.
파이프라인이 러시아 영토를 통과할 경우,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해질 것이란 판단에서다.
그렇다고 파이프라인을 코카서스 남부지역을 통과하도록 할 수 없다는 데 미국 정부의 고민이 있다.
남부지역은 바로 미국과 오랜 대립관계에 놓인 이란의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의 해답은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이웃나라인 그루지야공화국을 거쳐 지중해에 자리한 터키 항구 Ceyhan에 이르는 1750km를 파이프라인으로 연결한다는 계획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들어 미국과 러시아 정부 사이에는 파이프라인 건설계획을 둘러싸고 모종의 타협이 이루어졌다는 루머도 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러시아 정부가 미국 정부의 계획을 인정하는 대신, 러시아의 에너지 회사 루코일이 이 프로젝트에 깊숙이 참여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여기에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최대한 실속을 챙기려는 아제르바이잔 정부까지 끼어들어 파이프라인 프로젝트의 향방을 가늠하기는 현재로서는 쉽지 않다.
다만 이 지역의 정세가 극도로 불안정한 상황인데다가, 난립한 정치세력들과 결탁해 이익을 챙기려는 다국적 회사들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한데 얽혀 있다는 점에서, 그 향방에 따라서는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무척 높다는 사실만은 분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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