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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아들딸 여럿 낳아 잘 기르자?
[커버스토리] 아들딸 여럿 낳아 잘 기르자?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2.10.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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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강국(人口强國) 코리아’가 위험하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예상보다 가파른 곡선을 그리며 떨어짐에 따라, 인구정책의 근간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한층 힘이 실리고 있다.
여기서 출산율은 연간 출생아 수를 가임여성 인구(15-49살)로 나눈 수치에 1000을 곱해 계산한다.


보건사회연구원의 변용찬 사회정책연구실장은 “상반기 출생신고서 접수 건수를 기준으로 살펴본 올해 출산율 추정치는 지난해 수준(1.30)에도 미치지 못 한다”고 말했다.
2000년 1.47에서 지난해 1.30으로 떨어진 데 이어 하락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현재의 인구 규모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대체출산율(2.1)에 상당히 밑도는 수준이다.
2001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미국(2.13), 영국(1.63), 일본(1.33) 등 주요 국가들에 비해 훨씬 낮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맹국 가운데서도 최하위권에 속한다.
이쯤 되면 ‘출산파업’이란 단어가 자연스레 떠도는 것도 충분히 이해됨직한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국내 인구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기 위한 움직임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태세다.
보건복지부는 9월 중순 ‘저출산 대비 인구정책 개발 및 범정부적 추진체계 수립’을 위한 학술용역 사업을 내년 상반기까지 실시하기로 확정했다.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과 이원희 사무관은 “매년 어느 정도 출산율의 변동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제는 인구정책과 관련된 부서들의 종합적 검토기구가 필요한 시점으로 이 기구에서 출산장려 정책의 구체적 내용이나 그 도입 시기를 진지하게 논의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30년 이상 지속되어온 인구증가 억제 위주의 인구정책이 선진국형 출산장려 정책으로 급속하게 방향선회할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70년대식 인구정책은 이제 ‘둘은 낳아 잘 기르자’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는 중이다.



저출산율이 경제 발목 잡을까?


최근 들어 이런 움직임이 부쩍 활발해진 것은 국내 출산율 하락 속도가 지난해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추계> 작성 당시의 예상마저도 뛰어넘을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96년 장래인구를 추정할 당시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낮은 수준을 기록한 90년대 말의 출산율은 지난해 새롭게 추계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그대로 반영됐지만, 이제는 지난해의 예상치도 낡은 것이 되어가는 셈이다.
지난해에 발표된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00년 말 현재 4700만명인 우리나라의 인구는 2013년 5000만명을 돌파해 2023년 정점(5068만명)에 이른 후 차차 줄어들기 시작해 2050년에는 4433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는 가정 아래, 2100년 우리나라(남한 기준)의 인구는 2300만명으로 줄어든다.
인구가 정점에 도달하는 시기도 96년 당시에는 2028년으로 예상됐지만, 지난해 작업에서는 2023년으로 5년이나 앞당겨졌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출산율 하락세가 이어진다면 우리나라의 총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서는 시기 역시 좀더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국내 인구구조에서 나타나는 이런 특징들은 여전히 높은 인구밀도와 수도권 집중 등 일반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현실에 가려져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저출산에 따른 인구문제가 머지않아 매우 중요한 사회문제로 등장할 것이라는 경고를 빼놓지 않는다.
저출산을 특징으로 하는 국내 인구구조가 장기적으로는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할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여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고령화’다.
저출산이 지속된다는 건 곧 한 사회 안에서 노인(65살 이상) 인구의 비중이 급속도로 확대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고령화 사회 진입 원년인 2000년에 7.2%였던 국내 노인인구는 2019년에는 14%에 이를 전망이다.
고령화 사회(7% 이상)에서 고령사회(14% 이상)로 진입하는 데 겨우 19년 밖에 걸리지 않는 셈이다.
이는 프랑스(115년), 스웨덴(85년), 미국(71년), 일본(24년)의 경험에 견주어 볼 때, 매우 놀라운 속도이다.
현재의 추세라면 그 기간이 더욱 단축될 수 있는 건 물론이다.


고령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다양하다.
우선 생산연령 인구의 감소는 경제성장을 둔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특히 생산과정에 참여하는 노동인구의 연령 자체가 높아지면서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물론 조금 다른 의견도 있다.
서강대 사회학과 박상태 교수는 “옛날에는 젊은 인구의 노동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는 견해가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업종이나 업무내용에 따라 그 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국내 주요 주력산업의 평균연령이 높아지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꽤 높은 편이다.
현재 산업별 취업인구의 평균연령은 조선 38.8살, 가죽/신발 39.2살, 철강 37.6살, 섬유 37.7살 등으로 나타나고 있고, 해마다 더 높아지는 중이다.
SK경제연구소의 이우성 연구위원은 “당분간 우리나라 경제의 주력산업 역할을 계속 맡아야 할 조선, 철강 등에서 평균연령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며 “이들 산업에서 기술이전이나 생산성 하락의 문제를 일으켜 궁극적으로는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인구문제연구소의 박은태 소장은 “한때 세계 조선산업을 지배하던 북유럽 국가들의 경쟁력이 급속히 떨어진 시기는 이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평균연령이 40세를 넘어선 때와 겹친다는 사실을 되새겨 봐야 한다”는 말을 던지기도 했다.



고령화로 인한 재정압박 우려도


고령화가 국가재정을 어렵게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빠지지 않는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바로 부양비(比)의 변동 추세다.
2000년 현재 10.1%인 노인부양비는 오는 2050년에는 62.5%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 말은 곧 노인인구 한 명을 부양하는 부담을 현재는 15~64살의 경제활동인구 10명이 나누어 맡는 데 비해, 2050년에는 그 짐을 1.6명이 떠안아야 한다는 걸 뜻한다.
국가재정이 담당해야 할 몫이 그만큼 커질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생산연령 인구가 줄어들면서 조세수입 역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재정압박은 한층 심해질 전망이다.
SK경제연구소 이우성 연구위원은 “실제로 90년대 일본경제 불황에는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재정압박이 크게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90년대 들어 일본경제가 침체의 길에 접어선 데는 이미 70~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 이른바 ‘소자화(少子化)’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경제성장의 동력을 잃어버린 탓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구체적인 출산장려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대략 한 세대 후인 2030년께부터는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가 피부에 와 닿을 만큼 뚜렷해질 것이란 게 그 논거다.
서구 사회에서 선보였던 ‘출산장려금’ 카드가 본격적으로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서강대 박상태 교수는 “출산율이 급속도로 떨어지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출산장려금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해 볼 만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모자보건심의회’에서도 출산장려금 도입을 주장하는 의견이 점점 더 빈번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보건사회연구원의 변용찬 사회정책연구실장은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 노동생산성 하락을 상쇄한다 하더라도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국가존립의 문제”라며 인구억제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럼에도 설령 현재와 같은 저출산 추세가 계속된다고 하더라도 과연 인구정책의 기조를 바꿀 필요가 있을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 또한 여전히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남북한을 합쳐 7000만 명이 넘는 인구 규모는 우리보다도 훨씬 넓은 영토를 가진 프랑스(6000만명), 영국(5900만명), 이탈리아(5800만명)를 능가하는 데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탓이다.
경제성장률과 같은 양적 지표에 매달려 인구의 절대적 규모만을 문제삼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논리다.
현재의 인구밀도나 ‘삶의 질’ 여건을 고려했을 때 어느 정도의 인구 감소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주장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게다가 서구사회에서 출산장려금을 도입한 게 단순히 절대적인 인구규모를 늘리려는 의도보다는 복지제도의 저변을 넓힌다는 의미를 동시에 지녔다는 사실도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보건사회연구원 변용찬 사회정책연구실장 역시 “단순히 물질적인 유인을 제공하는 차원의 출산장려금은 서구 사회에서도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박복영 전문위원은 중요한 것은 “왜 출산율이 떨어지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라며, “현재 삶의 질에 대한 불만이 가장 커다란 원인일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실제로 90년대 이후 미국의 출산율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것은 삶의 질에 대한 이른바 ‘심리적 확신’이 큰 작용을 했다는 평가가 잇따라 나오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한 하다.



복지망 확충이 장기적으론 효율적


이런 사실들은 단순히 경제성장률과 같은 양적인 잣대에 매달려 인구의 절대적 규모를 늘리려는 방안만으로는 매우 낮은 상태로 떨어진 출산율을 적정수준으로 올리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짐작케 해준다.
기존 인구정책의 틀을 인위적으로 바꾸기보다는 사회 내 복지망을 확충하는 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욱 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지니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이쯤에서 부양비의 증가가 곧 재정압박을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한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할 위험을 담고 있는 탓이다.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박복영 전문위원은 “국민연금처럼 일종의 ‘세대간 계약’에 의한 복지망이 확고하게 갖추어진 상태에서 출산율 문제와 맞닥뜨린 서구사회의 경험을 곧바로 우리 사회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를 밝혔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후생활은 아직껏 ‘사회적’인 메카니즘에 의해 보호받기보다는 가족이라는 틀 내에서 해결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도 눈여겨봄직하다.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단순히 부양비(比)뿐 아니라, 부양비(費)가 큰 의미를 지닌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여기에서 출산율 저하를 염려하는 인구전문가들의 추계를 받아들이더라도 대략 2010년까지 우리나라의 인구구조가 한국경제에 상당히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주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소인구(14살 이하)의 절대수가 감소해 전체 부양비는 2000년의 39.5%에서 2010년에는 38.8%로 줄어든다.
국가재정 압박이 당장 현실화할 가능성도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이 말은 곧 오는 2010년까지가 한국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소중한 시기가 될 수도 있음을 암시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울산대 사회학과 강미화 교수는 “이 시기 동안 단순히 인위적인 출산장려 정책에 시야를 붙들어두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복지 펀더멘털’을 갖추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 교수는 특히 “앞으로 노동력이 부족해진다는 얘기도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노동하는 ‘젊은 남성인구’가 부족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 않냐”며 조심스레 되묻는다.
인구구조와 경제발전 사이의 상관관계를 온전하게 인정한다는 전제 아래, 앞으로 남은 10여 년 동안 우리사회의 초점이 어디를 향해야 할지 한번쯤 생각하게 해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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