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비즈니스] DIY, 문화에서 산업으로
[비즈니스] DIY, 문화에서 산업으로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2.10.0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5일 근무제 확산과 함께 DIY산업이 주목받고 있다.
자기 손으로 집안을 수리하고 가꾸는 DIY 문화가 여가활용의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DIY 시장이 엄청난 규모로 성장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5일 근무제가 DIY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관련 업계에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가시간의 증가가 DIY산업의 성장을 무조건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관련 업체들이 발빠른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은 일부 외국계 공구업체들만 매출 증가로 그 과실을 거두고 있을 뿐이다.
DIY문화운동협의회 전영일 회장은 “올해 DIY 시장 규모는 75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며 “일본과 비교하면 2조원 규모까지는 성장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생활에 실제로 쓰는 물건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좋아요”. 안양 ‘반쪽이공방’에서 만난 주부 정종순(52)씨는 DIY의 매력을 이렇게 말한다.
4주차 교육을 받고 있는 정씨는 처음 작은 나무상자를 만들어 집에 가져갔을 때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놀라더라고 말한다.
그는 집에 있는 가구를 모두 자신의 ‘작품’으로 바꾼다는 계획을 세웠다.
다양한 공구가 나와 있어 나무를 자르고, 가구를 만드는 데 여성이라고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다.



올 750억원규모, 2조원까지 성장 예상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이모(41)씨는 “힘이 필요한 일은 별로 없다”며 “오히려 디자인을 구상하고 도면을 그리는 작업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이씨는 7주차 교육을 받고 있다.
그는 이미 책상을 만들어 작은 아들에게 줬고, 지금은 TV를 올려놓는 받침대를 제작하고 있다.
한의사인 그는 집에 필요한 공구 세트도 장만해뒀다.
필명 ‘반쪽이’로 알려진 만화가이자 반쪽이공방의 이사인 최정현(42)씨가 쓴 책을 보고 처음으로 DIY에 관심을 가졌고, 막상 시작해 보니 생각보다 쉬워 웬만한 건 모두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의 다음 작업목록에는 큰아들 책상과 침대가 올라 있다.


반쪽이공방은 DIY 목공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곳이다.
안양과 부산의 직영점을 비롯해 전주, 분당, 시흥, 광주, 부천, 대전, 김해, 일산 등에 10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최정현씨는 “주5일 근무제 실시로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며 “특히 비교적 문화 수준이 높은 일산, 분당 지역에서 참가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말한다.
매달 안양점에서만 20여명, 전국적으로는 100여명이 반쪽이공방의 목공교실을 거쳐 간다.
그 가운데 직장인이 60~70%를 차지하며, 전체의 절반 정도가 여성이다.
최씨는 “아직 큰 수익을 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DIY 시장이 커질 것은 분명하다”며 “내년에 두곳 정도 지점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한다.


반쪽이공방이 문화운동 차원에서 출발해 DIY 문화 전파에 주력하고 있다면,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제페토가구교실은 교육을 비즈니스화해 성공한 경우다.
제페토가구교실의 정완조 대표는 백화점 문화센터들에 가구교실 개설 붐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현재 10여명의 전문 강사진이 전국의 백화점과 할인점의 문화센터, 사회복지회관 등에 강의하러 나가고 있다.
수강생 중 주부 회원이 95%를 차지한다.
정 대표는 “처음엔 주부들을 대상으로 뭘 하겠느냐고 우습게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며 “그러나 오랜 강의를 통해 상당한 교육 노하우를 갖추었다”고 말한다.
회원 확보가 유리해 수익기반도 비교적 탄탄한 편이다.
지난 5월부터는 방배동 공방에서 수요일 야간과 토요일에 직장인반을 운영하고 있다.
주5일 근무제의 영향으로 직장인들의 문의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DIY 전문인력 양성이 시급하다”며 “제대로 된 교육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면 초보자들은 금세 싫증을 내고 돌아서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DIY산업은 특성상 교육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재료와 공구만 판매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용방법을 알려줘야 하고 새로운 활용 아이템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전국 10~20개 업체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DIY 공방들이 주목받고 있다.
물론 아직은 DIY 문화의 전파나 교육보다는 맞춤형 주문가구 제작에 치중하는 곳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수지를 맞추기가 어려운 탓이다.



내년엔 영국 전문 유통업체 상륙


이 때문에 DIY는 ‘값싸게 가구를 만드는 것’이라는 오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목공만이 DIY는 아니다.
DIY는 물건의 명칭이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 자체를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주문제작은 DIY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주문제작을 불가피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DIY 용품 유통업체인 핸드피아 이광우 대표는 “DIY가 발전하려면 일정한 수준의 제작기술이 있어야 한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집안을 손보는 기술이 한세대 동안 단절됐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아버지들이 웬만한 것은 직접 만들었지만, 지금은 가정에서 이런 아버지의 역할을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DIY에 필요한 기술이라는 것이 고급 기술은 아니다.
한번 시도해보면 누구나 익힐 수 있는 간단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단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업계 전문가들은 DIY의 문화와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학교교육의 변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최정현씨는 “독일은 초등학생 때 각종 수도꼭지를 분해, 조립해보도록 가르친다”며 “그렇게 한번만 해보면 물이 샐 때 원인을 찾아 바킹을 갈 수 있지만, 모르면 사람을 불러 수도꼭지 전체를 바꿀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밖에도 우리나라에서 DIY 문화의 정착을 더디게 하는 요인이 몇가지 더 있다.
우선 아파트 중심으로 주거환경이 구성돼 있어 따로 손볼 곳이 적다.
단독주택이 많은 미국과는 사정이 다른 것이다.
더구나 소득수준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화가 더 철저하게 진행돼 있다.
완벽성에 지나지게 집착하는 우리 문화도 걸림돌이다.
외국 주택은 대부분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술하고 엉성한 곳이 많다.
그들은 그걸 크게 문제삼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허술하고 엉성한 것을 잘 용납하지 않는다.
아직은 전문 기능공을 부를 때 지불하는 인건비가 큰 부담으로 느껴질 만큼 비싸지 않은 것도 문제다.
인건비가 10만원 이상으로 치솟는다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지난 8월30일 DIY 전문 케이블TV ‘DIY 채널’ 주최로 20여개 관련 업체가 참가한 ‘제1회 DIY 문화 간담회’가 열렸다.
은행권의 주5일 근무제 실시와 함께 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구체적 발전방안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였다.
박신영 DIY 채널 방송기획팀장은 “DIY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데는 모두 공감했지만, 그 시기가 언제쯤이 될지는 의견이 분분했다”며 “업체들이 대부분 중소기업이어서 어느 업체도 쉽게 주도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여가시간이 늘어나면 초기에는 여행, 레저 등 집밖에서 즐기는 활동이 인기를 끌지만, 곧 집안에서의 활동으로 초점이 옮겨갈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일부 전문가들은 최소 3년은 지나야 할 것으로 보기도 한다.
또 DIY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DIY 문화가 소수 마니아 중심에서 벗어나 일반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역시 아직은 만족할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그러나 박신영 팀장은 “DIY 문화가 확산될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며 “대대적 DIY 캠페인을 내년부터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DIY 채널이 미디어로서의 지닌 장점을 활용해 DIY 시장 형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미다.


내년으로 예상되는 영국 최대의 DIY 용품 유통업체 비엔큐(B&Q)가 한국에 진출하면 시장 상황이 크게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대규모 전문 매장이 등장하면서 DIY 문화가 폭넓게 확산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형 DIY 매장이 몇차례 시도됐지만 시장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아 성공하지 못했다.
현재는 백화점과 할인점, 전문업체, 인터넷 쇼핑몰이 주요한 유통채널로 이용되고 있다.
백화점의 DIY 매장은 평당 매출 등 영업효율이 크게 떨어져 매장 규모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할인점은 점포 수가 늘어나면서 점차 DIY 용품 유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대부분의 할인점들이 DIY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업체로는 삼성물산에서 떨어져나온 ‘핸드피아’가 대표적이다.
핸드피아는 삼성플라자 등 백화점과 할인점에 임대매장운영 및 납품을 하고 있다.
10월26일에는 부산의 대형 쇼핑몰인 스폰지에 120평 규모의 신규 매장을 열 계획이다.
이광우 핸드피아 사장은 “DIY 매장만으로는 운영이 어렵다”며 “대부분의 매장이 문구를 끼고 있다”고 말한다.
인터넷 쇼핑몰은 아직은 크게 활성화하지 못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도 조만간 ‘홈센터’가 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일본 등은 수천평의 매장에 재료에서 공구까지 각종 DIY 관련 제품을 모아놓은 전문 매장인 홈센터를 중심으로 DIY산업이 움직인다.
미국 최대의 홈센터인 홈데포(Home Depot)는 제너럴일렉트릭(GE)이 눈치를 볼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일본의 홈센터에는 ‘DIY 어드바이저’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들이 배치돼 자세한 사용방법을 알려준다.
물건만 달랑 진열해놓는 할인점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시장 활성화, 전문인력 양성이 가장 시급


DIY 용품 중에서 단일품목으로 가장 규모가 큰 것이 가정용 공구다.
국내 업체인 계양전기와 LG산전, 외국계 회사인 보쉬(Bosch)와 블랙앤드데커(Black&Decker), 그리고 중국 업체들이 이 시장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이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곳이 블랙앤드데커다.
블랙앤드데커는 98년 첫 진출 이후 매년 매출액을 두배 이상씩 키우며 급성장했다.
다른 공구 업체들이 DIY용 가정용 공구시장에 크게 주목하지 않는 사이에 공격적 마케팅으로 할인점을 집중 공략한 것이 성공했다.
DIY문화운동협의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전영일 블랙앤드데커 이사는 “DIY 시장이 공구만 잘 팔리고 다른 것은 안 팔리는 시장은 아니다”며 “다른 분야 업체들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결과”라고 말한다.
현재 할인점에서 가정용 공구의 매출 비중은 블랙앤드데커 60%, 보쉬 20%, 기타 중국제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외국계 업체들에 비해 국내 업체들은 여전히 재래시장에 공구를 내다 파는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가정용 공구는 소비자가 쉽게 살 수 있도록 포장방법에서부터 새로운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보쉬가 가정용 공구시장의 탈환을 선언하고 나섰다.
전영일 이사는 “DIY 시장이 커지려면 결국은 콘텐츠가 문제”라며 “공구를 산다 해도 제대로 할 만한 게 없고, 또 있다 해도 배울 기회가 없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우리의 경우 초중급자를 위한 DIY 콘텐츠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