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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IMF를 수술대에 올리자”
[서평] “IMF를 수술대에 올리자”
  • 백우진 기자
  • 승인 2002.10.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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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금융자본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 신흥시장에 눈독을 들인다.
경제가 정치사회적 요인과 맞물려 혼란스러운 중남미나, 자산시장 거품이 꺼져 매력을 잃은 일본을 대체할 만한 투자처로 아시아, 특히 한국을 점찍었다.
대부분의 전망은 장밋빛으로 물들었고, 투자자금이 봇물 터진 듯 들어왔다.


1997년, 판이 뒤집어졌다.
금융시장 불안은 홍콩에서 태국을 거쳐 한국에 상륙했다.
만사휴의.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한테 구제금융을 받았다.
IMF 돈에는 이자 외에 조건이 따라붙는다.
IMF 조건은 가혹했다.
환율을 안정시켜야 한다며 콜금리를 25% 가까이로 올렸다.
멀쩡하던 기업도 부도를 맞았다.
우리나라의 정부 재정은 건전했음에도 불구하고, IMF는 정부의 재정지출도 억제하도록 했다.


한국 정부는 98년 하반기에야 콜금리를 낮추고 재정지출을 늘려나갈 수 있었다.
당시 IMF와 협상을 벌였던 한 관리는 “IMF는 한국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똑같은 처방전을 들이댔다”고 비판했다.
IMF의 ‘오만과 편견’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적을 만들었다.
'세계화와 그 불만'(Globalization and its Discontents)은 그 적들 가운데 IMF가 가장 껄끄러워하는 인물인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쓴 책이다.


스티글리츠는 가슴이 따뜻한 경제학자다.
세계은행에 있을 때부터 한국 등 외환위기 국가에 대한 IMF의 구제금융 처방이 적절치 않아 고통을 가중했다고 주장해왔다.
IMF와 세계은행, 그리고 미국 재무부의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용어설명 참조)에 반기를 든 것이다.
세계은행에서 나온 것도 이런 ‘불화’ 때문이었다.


다시 학계로 돌아온 뒤에는 비판의 강도를 더욱 높였다.
2000년 4월 '뉴 리퍼블릭'에 “IMF의 삼류 경제학자들이 세계경제를 망치고 있다”고 기고했다.
최근에는 '파이낸셜타임스' 9월23일치 기고를 통해 “중남미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따라) 자유화와 사유화, 그리고 안정적 정책을 펴왔지만 약속된 보상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며 “지금과 같은 국제경제질서 아래서의 세계화는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에서 그는 워싱턴 컨센서스에도 화살을 날린다.
“동아시아 경제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따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발전한 게 아니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했다.
” 이 지역 경제는 정부가 최소한의 기능만 하지 않고 산업정책 등을 적극적으로 편 덕분에 성장했다는 것이다.
또 무역자유화와 자본시장 개방, 민영화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지만 발전할 수 있었다고 반박한다.


IMF는 틀렸다.
IMF가 집도한 수술은 고통스럽고 ‘피’를 너무 많이 흘린다.
워싱턴 컨센서스도 정답은 아니다.
스티글리츠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외환위기의 가장 중요한 단일 요인은 자본시장 자유화”라며 “IMF와 미국 재무부는 이 지역을 압박해 자본시장 개방을 관철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IMF 병동’에 실려간 탓을 주로 IMF와 미국 재무부, 그리고 국제금융자본에 돌리는 스티글리츠의 접근은 온전하지 않다.
스티글리츠 말마따나 진실은 더 미묘하기 때문이다.


종이는 가위의 양 날로 잘린다.
수요와 공급이 함께 가격을 결정한다.
마찬가지로 해외자본도 한국을 원했지만, 한국 내부에서도 해외자본을 간절히 원했다.
90년대 의욕이 넘쳤던 재벌은 “다 풀어라, 내가 책임진다”며 값싼 해외자본을 더 많이 써야 한다고 외쳐댔다.
정부는 이를 수용했다.
또한 자본시장 개방이 저절로 외채 급증, 상환능력 저하, 그리고 외환위기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각각의 연결고리는 IMF와 미국 재무부가 아닌 우리나라 경제 주체의 잘못이었다.


IMF는 ‘회개’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IMF 수석연구원 케네스 로고프는 7월 IMF 웹사이트에 스티글리츠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글을 띄웠다.
그럼 무엇을 할 것인가? 스티글리츠는 몇가지 대안을 내놓는다.
먼저 세금을 물리는 등 수단으로 단기 자금이동을 막자고 주장한다.
토빈세는 아직 한번도 채택되지 않았다.
토빈세와 비슷한 제도인 가변예치의무제(VDR)도 칠레에서 시행하다가 사실상 폐지한 상태다.


구제금융이 해당 국가가 아니라 실제로는 투자자의 자본을 구제해주고, 이로 인해 자본이 조심성 없이 투자하는 측면이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스티글리츠는 미국의 법정관리 제도인 ‘챕터 11’과 비슷한 제도를 제안한다.
외채의 일부를 탕감하고 상환시기를 조정하자는 얘기인 듯하다.
IMF는 부채탕감에 나서지는 않지만 만기연장은 시행하고 있다.
IMF 구제금융의 극심한 고통을 덜 묘책은 없는 셈이다.
결국 각자 ‘세계화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길밖에 없다.







용어설명/ 워싱턴 컨센서스란?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정책에 대한 공감대를 가리킨다.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개념은 현재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에서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존 윌리엄슨이 1990년에 쓴 ‘워싱턴이 말하는 개혁이란 무엇인가’(What Washington Means by Policy Reform?)를 발표하면서 구체화했다.
윌리엄슨은 IMF 등 워싱턴의 국제기구가 바람직하다고 본 정책으로 절제된 재정, 금리 자유화, 무역 자유화, 외국인투자 자유화, 민영화, 규제완화 등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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