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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중병 앓는 코스닥, 비방은 없나
[커버스토리] 중병 앓는 코스닥, 비방은 없나
  • 백우진 기자
  • 승인 2002.10.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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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이 신뢰를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코스닥시장을 버리고 거래소 등 다른 시장으로 떠났다.
등록 종목도 여건만 된다면 거래소로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거래가 바닥에 머물며 지수는 장중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코스닥은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다른 신흥 증권시장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벼랑에서 탈출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투자자들은 다시 코스닥에서 ‘재미’를 볼 수 있을까?

세계의 신흥 증권시장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면서 코스닥시장을 둘러싼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독일의 기술주 시장인 ‘노이어 마르크트’는 정보기술(IT)부문 부진의 충격에 회계부정 등 내부 문제까지 터지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노이어 마르크트의 네멕스지수는 IT의 흥분이 절정에 이르렀던 2000년 3월 최고치의 20분의 1에도 못미치는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코스닥시장이 처한 상황은 노이어 마르크트에 비해 결코 좋지 않다.
IT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코스닥시장은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회계부정과 주가조작, 그리고 정치권과의 스캔들로 얼룩졌다.
이로 인해 코스닥시장은 투자자들의 불신이라는 중병을 앓고 있다.


교보투신운용 펀드매니저 이한우 대리는 “등록기업과 시장 참여자들은 ‘묻지마 투자’를 벌였고, 이런 상황을 틈타 등록기업과 투자자들은 작전을 일삼았다”고 설명한다.



외국인 보유 비중 10.5%에 불과


코스닥지수는 10월2일 47.51에서 거래를 마감해, 3월22일 기록한 연중 최고치 94.30에 비해 49.6% 폭락했다.
거래소 종합주가지수가 648.10으로 4월18일 연중고점 937.61보다 30.9% 하락한 데 비해 훨씬 낙폭이 크다.
사상 최고치 283.44와 비교해서는 6분의 1토막이 났다.


투자자가 코스닥을 떠나고 있다.
코스닥시장의 거래대금은 코스닥지수가 284.44로 최고점에 오른 2000년 3월10일을 전후해서는 거래소를 앞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10월2일 코스닥시장에서는 고작 4999억원어치의 주식이 거래됐다.
거래소 거래대금 1조8453억원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코스닥시장은 투자주체별로도 개인만 치고받는 취약한 상태에 처해 있다.
“코스닥종목은 자사주신탁 외에는 한주도 편입하지 않았다.
” 한 은행에서 신탁자산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의 말이다.
외국계 자산운용사 관계자도 마찬가지로 답했다.
코스닥시장 관계자는 “기관의 보유 비중은 일년에 한번 정도 집계하기 때문에 최근 수치는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코스닥 시가총액 중 기관이 보유한 비중은 외국인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8월말 현재 코스닥시장에서 외국인 보유 비중은 10.5%에 불과하다.
반면 외국인은 시가총액 기준 거래소 주식의 34.7%를 갖고 있다.
10월2일 거래대금 비중은 개인이 92.3%, 기관은 5.8%, 외국인은 1.8%, 기타법인이 0.1%를 각각 차지했다.


기관이 뜬 장은 ‘사각지대’가 됐다.
증권사는 이제 더이상 코스닥시장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증권사 가운데 따로 코스닥 시황을 내는 곳은 한화증권뿐이다.
애널리스트들도 기관이 없는 시장에 별 흥미를 나타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은 개인투자자와 대주주 사이의 정보의 불균형을 심화하고, 주가를 조작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낳는다.
작전은 코스닥시장을 기관과 외국인으로부터 더욱더 소외시킨다.
악순환이 반복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등록기업들 사이에서는 ‘형편만 되면 이사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올해 들어 한국콜마, 우신시스템, 신세계건설, 교보증권, 세종공업 등 5개 기업이 거래소로 이전했다.
삼영은 9월18일 이사회를 열고 거래소로 이전을 결의하고 같은 날 거래소에 상장심사청구서를 냈다.
삼영은 10월 하순에 상장 예정이다.
우리증권에 따르면 이밖에 마니커, 푸른저축은행, 태경화학, 아이텍스필, 기업은행 등이 거래소로 옮기려 하고 있다.



건전성 높이는 종합감리시스템 갖춰야


코스닥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다양한 방안이 제시된다.
우선 불공정거래와 불성실공시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증시 관계자들은 이를 위해서는 증권업협회의 주가 감시, 매매심리와 감리, 금융감독원의 조사 및 제재조치, 그리고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판단까지 일련의 과정을 효율화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즉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종합감리 시스템이 필요하며, 자율규제기구인 협회는 효과적인 일차 조치를 통해 감리에서 수사에 이르는 과정이 장기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불법행위에 대한 제재를 더 강화하고, 증권선물위원회에 불공정거래 행위자에 대해 증권시장에서의 거래를 무기한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또 공모가에서 거품을 빼야 한다는 주장이다.
과거 벤처 붐이 최고조에 달한 2000년에는 본질가치 대비 공모가 프리미엄이 600%를 훌쩍 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적이 본질가치 산정 때 잡은 전망치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거품은 부서졌다.
증시 관계자들은 “발행시장의 거품은 유통시장에서 꺼지기 마련”이라며 “공모가격이 본질가치보다 많이 낮아야 유통시장이 활성화되고, 주가상승을 노리는 장기투자자가 많이 생긴다”고 말한다.


이런 가운데 코스닥시장을 거래소와 통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 증시 관계자는 “현재 코스닥시장과 거래소시장이 나뉘어 있어 경쟁하는 것은 좋지만, 지금은 배타적 성격이 너무 강해졌다”며 “거래소를 시장1부, 코스닥을 시장2부로 나눠 관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코스닥시장 등록기업, 즉 시장2부 기업이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시장1부로 승격하는 제도를 운영하면 기업들도 매출이나 수익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안 좋은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좋은 시장과 합치는 것은 문제를 희석하는 데 그칠 뿐이다.


무엇보다 많이 논의되는 방안은 퇴출이다.
코스닥시장은 닷컴 열풍을 타고 급성장하면서 무더기로 신규등록을 받았지만 퇴출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수급 불균형이 심화됐고, 시장이 침체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코스닥시장에는 167개 기업이 새로 등록된 반면 퇴출은 9개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거래소 이전이나 합병이 아니라 부실 사유로 퇴출된 기업은 고작 5개였다.


코스닥위원회는 시장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등록취소 기준을 강화해,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도 부실기업은 별로 솎아내지지 않았다.
올해 부실로 퇴출됐거나 퇴출 예정인 기업은 10월2일 현재 9개뿐이다.


신설한 기준 가운데 ‘최저주가’ 규정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저주가 규정은 주가가 30거래일 연속 액면가의 20% 미만에 머문 뒤, 이후 60일 중 10일 연속 또는 30일 이상 액면가의 20%를 밑돌 경우 등록을 취소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주가가 낮아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기업은 신원종합개발, 국제종합건설, 신보캐피탈 등 3개에 불과하다.
주가가 낮아도 감자를 통해 최저주가 규정을 피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관리종목에 편입된 이들 기업도 감자 또는 감자에 이은 피인수 합병을 추진중이어서, 퇴출은 모면할 것으로 보인다.
신원종합개발은 이미 감자를 통해 등록취소 기준을 벗어났다.



1·2부 나눠 우량기업 분리도 검토


이런 문제점이 지적되자 코스닥위원회는 최저주가를 액면가의 20% 미만에서 더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감자를 통한 회피를 막는 방안은 아니다.
코스닥위원회는 “기준시세에 못미치는 기업이 감자를 하는 것은 주주의 희생을 통해 재무건전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퇴출을 면하기 위한 편법이라기보다는 시장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한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퇴출 규정을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등록취소 기업이 적은 이유에 대해 코스닥위원회 김병제 등록관리팀장은 “부실기업은 등록 후 어느 정도 시일이 걸려서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거래소의 경우 1980년대 말 공개 붐 이후 91~93년에 부도가 잇따랐는데, 상장한 지 2~4년인 기업이 많았다는 것이다.


올해 코스닥시장에서 퇴출된 기업 수는 증권거래소의 30개사보다도 적다.
김 팀장은 “거래소는 그동안 퇴출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관리종목이 상장기업의 25%에 이르는 등 부실이 현재화된 기업을 많이 갖고 있었다”고 답변했다.


코스닥위원회는 미국 나스닥시장의 상장유지조건제도를 도입해 퇴출을 원활하게 한다는 방침이다.
등록유지조건 제도는 표현만 다를 뿐 퇴출조건이며, 등록조건보다는 느슨하지만 기존 퇴출조건보다는 까다롭게 규정된다.
코스닥위원회 관계자는 “등록유지조건 제도는 연말쯤 마련해 준비과정을 거쳐 2004년경부터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일정은 불신이 깊어지는 현재의 상황을 타개해나가기엔 때늦을 것으로 보인다.
코스닥위원회는 이와 함께 등록 기업을 1부와 2부로 나눠 우량 기업은 코스닥 디스카운트를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코스닥시장이 투전판과 다름없다는 이미지를 불식한다고 하더라도, 투자자 입장에서 여전히 남는 문제가 있다.
코스닥시장은 불건전성 이외에 다른 ‘중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수익모델 부재 또는 고갈이라는 중병이다.
적지 않은 코스닥기업들은 경기가 회복될지라도 투자된 자본이 원하는 만큼 수익을 낼 수 없다.
또 한번 터진 거품은 같은 자리에서는 결코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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