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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높아지는 ‘파고’ 철강업계 비상
[비즈니스] 높아지는 ‘파고’ 철강업계 비상
  • 이승철 기자
  • 승인 2002.10.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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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초 미국 정부가 수입철강에 대해 통상법 201조(긴급수입제한조치)를 시행하면서 비롯한 각국의 철강 수입규제조치가 꼬리를 물며 점점 확산일로를 걷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3월말 미국 201조에 대한 대응책으로 잠정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6개월간 발동했던 유럽연합(EU)은 9월28일부터 2년반 동안 이를 연장하는 확정조치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국내 철강업체의 주력 수출품목인 냉연강판은 관세할당쿼터(TRQ)를 적용받아, 수출량이 16만~17만톤인 할당량을 초과하면 최고 26%의 추가관세를 물게 됐다.


우리나라 철강수출의 27.2%를 차지하는 최대시장인 중국도 지난 5월부터 6개월 동안 잠정 세이프가드를 시행중이며, 11월20일경 EU와 비슷한 형태로 향후 2년반 동안 연장하는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돼, 정부와 업계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향후 몇년간 수출전선 ‘빨간불’


미국 상무부는 9월24일 냉연제품 반덤핑 및 상계관세건에서 국내업체에 대해 포스코 5.15%, 동부제강 11.13% 등 덤핑 마진율을 5~11%대로 결정했으며, 미 무역위원회(ITC)가 11월7일 최종피해판정을 내릴 예정이다.
여기서 한국 수출품으로 인한 미국 업체의 피해가 인정되면 덤핑 마진율만큼의 추가관세를 물게 되나, 우리 정부와 업계에서는 무피해 판정으로 종료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U의 나라별 쿼터량은 지난 3년간 평균 수출물량에 10%를 더한 것이어서 당장 우리 업체가 피해를 겪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게다가 대EU 수출비중은 전체의 5.1%에 불과하다.
포스코 이병우 통상팀장은 “우리나라가 확보한 냉연강판 물량 약 16만톤 중 포스코가 약 12만톤을 얻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올해 포스코의 대EU 수출물량이 10만톤을 넘지 않을 전망이어서 수출에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한국철강협회 김성우 통상협력팀장은 “세이프가드를 통해 적정량의 쿼터를 할당받아 수출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상대적으로 피해가 훨씬 큰 반덤핑 제소의 위험을 줄이는 게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도 “세이프가드에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조치가 따르게 마련이어서 어느 쪽이 우리에게 유리한가 이익형량을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장 내년의 경기를 예측하기 힘든 철강업계에서 앞으로 몇년간 수요가 늘어나더라도 쿼터량 이상으로 수출을 늘릴 수 없는 것은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중국의 경우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각종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철강 수요량이 매년 급증하고 있어, 우리 업체가 향후 몇년간 중국 시장을 확대할 기회를 잃는 것은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철강 업계는 지난해 20년 만에 최악의 수출가격 하락을 경험한 뒤, 올해 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감산합의와 중국 등 세계적 수요 증가세에 힘입어 완연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올 하반기에 경기호조에 힘입어 각국의 철강생산량이 증가하면서 수출가격이 다시 하향세로 돌아서고 있는 와중에, 양대 철강대국인 미국과 EU가 수입제한조치를 취했고 이것이 다시 중국, 동남아 등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이에 따라 세계 철강 시장이 세이프가드, 반덤핑관세, 상계관세 등을 남발하며 다시 무역전쟁과 같은 위기상황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최근 일련의 철강규제조치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미국 통상법 201조다.
미국은 3월5일부터 수입철강 14개 품목에 대해 8~30%의 추가관세를 부과했다.
이 조치의 여파로 미국의 연간 철강수입량 약 2500만톤 중 약 900만톤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우회수입량이 급증할 것을 우려한 EU와 중국이 연쇄적으로 6개월 시한부 잠정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했다.
올 상반기 우리나라의 대미국 수출량은 25~26%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세계적으로 철강 수요가 증가세임에도 미국이 201조를 발동한 것은 자국 철강업계의 취약한 경쟁력 때문이다.
1998년 이후 미국내 철강회사 30여개가 문을 닫았으며 생산 가능 물량이 4천만톤가량 줄었다.
포스코 이병우 팀장은 “미국의 냉연강판 가격이 톤당 최고 450달러인데 이는 여타 업체에 비하면 120~150달러나 비싼 것으로 도저히 경쟁이 되지 않는다”며 “위기의 본질은 수입증가가 아니라 내부경쟁력인데도 세이프가드를 발동하며 외부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외교통상부 철강대책반도 “미국내 1위 업체인 유에스스틸만이 99년 이후 처음으로 이익을 냈을 뿐, 기타 업체들은 노후설비와 취약한 가격경쟁력으로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으며 설비현대화를 추진할 여력도 없다”고 지적했다.
미 행정부는 “201조 조치를 통해 미국내 철강회사들이 통합, 설비합리화 등 구조조정을 할 수 있다”며 조치의 정당성을 주장했으나,오히려 철강가격이 오르면서 경쟁력이 없는 한계기업들마저 회생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문을 닫았던 몇몇 업체들이 재가동할 예정이다.



“미국의 위기는 경쟁력 약한 탓”


이처럼 설비를 줄이고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등 자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구조조정을 게을리하면서 201조에만 의존하는 미국의 행태에 각국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미국 철강업계가 잘 돌아가야 통상마찰이 없어지고 결국 우리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일침을 던졌다.
이미 한국, EU, 중국, 일본, 브라질 등 8개국이 공동으로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기구에 제소했으며, 내년 3월에 분쟁해결기구의 패널 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다.
특히 EU는 WTO 분쟁해결기구에서 미국 통상법 201조에 대해 위배판정을 할 것이 확실하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의 철강산업 구조조정이 워낙 미흡해서 갈등이 계속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EU는 근본 해결책으로 ‘철강다자간협정’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우리 정부는 수입규제조치를 취하거나 앞두고 있는 각국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1월7일에 열릴 미 무역위원회의 냉연강판 반덤핑판정에서 무혐의판정을 받고, 201조 적용대상인 품목 수를 줄이기 위해 교섭중이다.
EU에 대해서는 영국 등의 요구로 적용대상에 추가될 가능성이 많은 ‘틴밀’이 포함되지 않도록 계속 협의중이라고 밝혔다.


특히 다음달 세이프가드 확정조치를 앞두고 있는 중국이 최대 관심사다.
우리 정부는 중국 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확정조치를 취한다면 명백한 WTO협정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중국의 조치가 2년6개월 연장, 지난 3년 평균 기준 쿼터할당, 규제품목 축소 등 EU 방식을 그대로 옮겨놓을 것으로 예측하고, 좀더 유리한 조건을 얻으려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이 우리 제품을 가공해 재수출하는 경우나 중국의 기술력이 취약한 자동차용 강판 등은 중국내 산업에 전혀 피해가 생기지 않으므로 쿼터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용어설명]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특정 외국상품의 수입이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국내 관련 산업이 심각한 피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는 경우 그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다.
그 근거는 국내산업을 구조조정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구제조치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세이프가드는 덤핑, 보조금지급과 같은 불공정 무역행위에 대해 발동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수입에 대해 규제하는 것이므로 한시적이어야 한다.
규제국은 자국과 수출국간의 전체적 양허수준을 계속 유지해야 하므로, 피해를 입은 상대국에 대해 협의를 거쳐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
GATT 19조, 미 통상법 203조, 우리나라 관세법 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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