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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케이스스터디] 현지문화를 적극 반영하라
[경영 케이스스터디] 현지문화를 적극 반영하라
  • 양우성/ 공공정책 및 경영전
  • 승인 2002.10.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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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헌(53) 사장. 그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한국식당 ‘이스타나 코리아’ 주인이다.
와히드 전 대통령도 식사를 하기 위해 이 식당에 들렀다가 자리가 없어서 되돌아 간 적이 있다.
이스타나 코리아는 어느덧 인도네시아의 정부 고위관료, 정치인, 기업인들이 즐겨 찾을 정도로 명소가 됐다.
한국을 떠나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시작한 지 13년 만에 한국의 문화와 이미지를 상품화하는 사업가로 크게 성공한 그의 비결은 무엇일까? 윤 사장은 처음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벌일 준비를 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 여행을 좋아하던 그는 제과회사 영업 담당자로 외근을 하던 어느날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하러 다방에 들어갔다.
문득 “이렇게 사는 게 아닌데”라는 회의가 든 그는 주저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의 나이 37살 때였다.
그러고는 배낭여행을 준비해 훌쩍 한국 땅을 떠났다.
대부분 교민식당, 현지인 홀대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을 엄격하게 규제하던 시절이라 일본에 사는 먼 친척의 초청장을 간신히 마련하여 여행에 나설 수 있었다.
그는 인도와 일본,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삶의 여유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세를 갖게 됐다.
이때 알게 된 인도네시아의 한 교민으로부터 한국식당이 매물로 나왔으니 한번 인수해서 경영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이 왔다.
그가 현지에 도착해 이리저리 살펴보니 식당이 자카르타 중심가에 자리잡은 터라 입지조건은 양호한 편이었다.
주변에 특급호텔이 밀집해 있는데도 예전에 장사가 잘 안 된 걸 보면, 그 원인은 분명 경영전략에 있을 거라는 데 생각에 미쳤다.
하지만 그는 인도네시아에 대해 아는 게 없었을 뿐 아니라 사업을 해본 적도 없었다.
때마침 또다시 아프리카 횡단여행을 떠나려 준비중이던 그를 불안하게 지켜보던 가족들은 그나마 좋은 기회라며 인수를 독려했다.
식당을 인수하고 나서 제일 먼저 마케팅 전략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식당이라고는 인도네시아 전체에 고작 12개가 있었다.
하지만 그 수는 2년 만에 40개를 넘어섰다.
그는 이 대목에서 다른 한국식당들처럼 한국인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현지인과 다른 외국인들을 타깃으로 하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다.
다른 한국식당들은 현지교포와 상사주재원, 유학생, 한국관광객 등을 주 고객층으로 삼았기 때문에 현지인이나 외국인들은 홀대하기까지 했다.
한국식당을 경영하는 교민들은 대부분 인도네시아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거나, 현지인 고객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상류층 외에는 현지인이 한국식당에 올 형편이 못 된다고 단정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교민들이 운영하는 식당간에 경쟁이 치열해지자 그는 한국의 인심을 보여주자는 전략을 택했다.
가능한 한 푸짐하게 상을 차려냈다.
일부 경쟁업소들이 무분별하게 가격을 내리는 데 급급하던 것과는 달리 그는 더 높은 가격에 파격적인 양과 질로 승부한 것이다.
결과는 그의 예상대로 큰 성공이었다.
한국인 고객은 물론 현지 상류층과 다른 외국인 거주자들도 한국음식의 다양함과 풍부함에 감탄했다.
예컨대 이스타나 코리아에서는 설렁탕 한그릇만 주문해도 김치나 조림반찬, 나물 따위의 것들이 마치 한국의 한정식집에서처럼 푸짐하게 나온다.
현지 신문에서 ‘한개를 주문하면 열개를 준다’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로 소개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스타나 코리아가 성공할 수 있었던 진짜 핵심요인은 그가 문화적 감성과 이해력을 갖추었다는 데 있다.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한 그는 타고난 감수성을 무기로 인도네시아 문화를 빠르고 적극적으로 이해하려 들었다.
그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때도 현지 이슬람 문화를 적극적으로 고려했다.
가령 한국인이 즐기는 선지해장국을 메뉴로 내놓았다.
선지해장국은 대다수 한국식당들이 피를 싫어하고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현지인을 두려워해 절대로 팔지 않는 메뉴였다.
그럼에도 그는 오히려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를 넣은 선지해장국을 선보였다.
그러자 한국인 고객은 물론 현지인들까지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각종 찌개나 국물요리에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를 사용한 것도 주효했다.
종업원들과 한방 쓰며 이직률 낮춰 문제는 종업원이었다.
현지인 종업원들은 한국인이나 일본인에 비해 직장에 대한 소속감이 약한 편이었다.
보수를 조금만 더 준다고 하면 직장을 옮기기 일쑤였다.
그는 종업원들의 잦은 이직을 막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정규 보수 이외에 별도 보수를 책정했다.
대신 그것을 직접 지불하지 않고 은행구좌에 5년간 묶어두는 묘수를 짜냈다.
그러자 시간이 지날수록 현지 직원들의 소속감이 강해지고 생산성이 높아졌다.
매달 모범사원을 선정해서 그 사진을 크게 확대해 매장에 걸어놓기도 했다.
자부심을 느끼고 포상도 받을 수 있어 자연스레 종업원간에 서비스 경쟁이 불붙었다.
좋은 서비스는 고객들을 더욱 끌어들였다.
그는 지금도 종업원 대여섯 명과 자신의 숙소에서 함께 숙식한다.
대부분 지방의 극빈가정 출신인 그들에게 가족 같은 연대감을 느끼게 해주고, 생활비를 줄여주자는 뜻이다.
그 자신이 가족을 서울에 남겨두고 현지에 혼자 거주하기 때문에 그들의 외로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윤 사장은 많은 한국인들이 ‘인도네시아에서 빨리 큰 돈을 벌어서 하루 빨리 인도네시아를 떠나려고만 한다’고 비판한다.
윤 사장은 자신이 번 돈(비록 큰 돈은 아니지만)을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다시 돌려줄 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 일하기를 원하거나 한국에 관심이 있는 현지인들에게 한국어를 무료로 가르쳐주는 기관을 설립, 운영할 계획도 세웠다.
그의 머릿속에는 자신을 낳아준 한국과 자신에게 삶의 기쁨과 성공을 안겨준 인도네시아에 동시에 보답할 계획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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