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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우의 책읽기] 여성의 숨겨진 열정·꿈·악몽
[이권우의 책읽기] 여성의 숨겨진 열정·꿈·악몽
  • 도서평론가
  • 승인 2002.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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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윤리적 금기를 어기기란 녹록한 일이 아니다.
굳이 이탈하고자 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만, 일단 세상의 눈총이 무섭기도 하거니와 반드시 응징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함부로 범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사를 살펴보면 이런 금기에 도전한 이들이 즐비하다.
소저너 트루스도 이 대열에 들어 있는 문제적 인물이다.
18세기 말에 활동한 흑인 노예여자인 트루스는, 한 강연장에서 남자일지도 모른다는 악성 유언비어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가 펼치는 노예해방 운동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공작이었지만, 트루스는 정면으로 맞섰다.
트루스는 젠체하는 무리에게 일갈한 다음 자신의 젖가슴을 당당히 드러냈다.
그리고 물었다.
“댁들도 내 젖을 먹고 싶으시오?” 전혜성의 장편소설 '트루스의 젖가슴'은 겉으로는 금기를 어김으로써 사회적 억압의 사슬을 떨쳐낸 여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헌데, 소설을 이끌어가는 힘은 이 이야기를 모노드라마로 만드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노배우와 젊은 연출자의 갈등이다.
제작자 예국희와 연출자 이실이 서로 마음이 맞아 뽑은 배우는 오데레사였다.
20여년 전 오데레사는 그리스 비극 '아가멤논'에서 클리타임네스트라 왕비 역을 맡았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딸을 희생양으로 삼은 아가멤논을 살해한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자신을 비난하는 코러스에게 항변하며 옷을 찢고 자신의 젖가슴을 드러냈다.
이 장면 덕에 왕비는 남편을 죽인 간부(姦婦)에서 딸을 죽인 자의 죄값을 물은 정의의 응징자로 승화했다.
오데레사라는 빼어낸 배우가 아니였다면 그것은 한낱 외설적 장면으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연극 연습을 하면서 이실과 오데레사는 사사건건 갈등을 겪게 된다.
연극의 예술성에 집착하는 노배우가 보기에 패기만만한 연출자는 연극의 메시지가 주는 충격에 지나치게 편향돼 있었다.
드디어 파국이 임박해왔다.
오데레사는 젖가슴을 드러낼 수 없다고 선언해버린다(그러나 안심해도 좋다.
소설로 쓴 이 연극에 반전은 준비되어 있다). 극단적인 대립 끝에 오데레사가 “나의 트루스에겐 젖가슴이 없어”라고 실토한 것이다.
그가 젖가슴을 노출하는 장면을 거부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으니, 세월이 이 노배우의 젖가슴을 거두어 가버린 것이다.
세상의 통념에 맞섬으로써 노예는 자유인이 되고 간부는 정의의 화신이 된다.
그러나 오데레사로 대표되는 우리는 자신을 변화시켜줄 젖가슴 자체를 거세당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두 “일그러지고 지쳐 빠진 늙은 여인”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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