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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은행업계 ‘RM 별동대’ 떴다
[비즈니스] 은행업계 ‘RM 별동대’ 떴다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2.10.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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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초반부터 등장한 기업금융점포(RM점포)가 최근 은행간 대출경쟁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계대출이 포화상태에 근접했다는 우려가 높아지자 시중은행들이 일제히 기업금융쪽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7월1일 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이 150개의 RM점포를 개점했다.
RM은 Relationship Manager를 줄인 말. 업계에서는 9월말 전산통합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신용평가시스템으로 무장한 국민은행이 조만간 기업대출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송요훈 국민은행 광화문기업금융지점장은 하루에 평균 서너 군데의 중소기업을 방문한다.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업체를 골라 미리 대출 제안서를 넣고, 타행 대출이 있는 곳에는 좀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해 대출전환을 유도하기도 한다.
사후관리를 위한 고객 업체 방문도 빼놓지 않는다.
은행들이 담보 중심의 대출관행을 버리고 신용평가시스템에 기반한 신용대출의 비중을 늘리면서 기업금융 전문가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담보 대출이 주류일 때는 기업에 별로 관심을 둘 필요가 없었다.
기업이 망해도 담보물은 남는다.
그러나 신용대출은 해당 업체의 상황을 정확히 모르면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돈을 떼이지 않으려면 업체의 속사정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난 재무제표 분석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송 지점장은 지난 8월 일본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의 판권을 갖고 있는 한길사에 20억원을 신용대출해줬다.
한길사의 지난해 매출액 47억원의 절반이 넘는 거액을 물적 담보 없이 빌려준 것이다.
기존의 대출관행으로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송 지점장은 “업체를 방문해 필요한 것을 물으면 이미 늦는다”며 “앞으로의 사업전망 타행 거래현황 등을 미리 파악해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제안서를 내놓으면 업체에서도 놀란다”고 말했다.
광화문기업금융지점은 세검정, 태평로1가, 광화문, 청운동, 광화문역, 평창동, 구기동 등 7개의 연계 점포를 두고 있다.
이들 일반점포에서도 기업여신을 취급하지만 5억원 이상 대출이나, 매출액 20억원 이상인 기업의 대출은 RM점포에서 전담한다.



국민은행 150개 RM점포 개점


광화문지역에는 해운과 무역, 출판 관련 중소기업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은행들은 신용등급 1~5등급에 해당하는 우량 중소기업을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데 사활을 건다.
안심하고 돈을 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량 업체들은 대출보다 오히려 부채비율을 줄이는 데 관심이 많다.
송 지점장은 “5개월 동안 공들인 업체에 30억원을 최저 금리로 대출해줬지만 고맙다는 말도 못 들었다”며 “은행 문턱이 높다는 것은 이제 옛말”이라고 말했다.
\신용등급 1~5등급에 속하는 업체는 실제로 소수에 불과하다.
얼마 되지 않는 이들을 놓고 은행들이 대출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망 중소기업의 발굴에도 관심을 두고 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송 지점장은 건축자재를 생산하는 한 철강업체를 공략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이 업체는 지난해 38억15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대표이사도 비교적 업계 사정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용등급은 BB(5등급)에 속하며, 지점장 전결로 20억원까지 대출 가능한 것으로 판정됐다.
그러나 최종 대출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대출심사역과 협의가 필요하다.
대출심사역이 반대하면 아무리 지점장이라도 대출해줄 수 없다.
광화문기업금융지점에는 4명의 대출심사역이 있다.


국민은행은 기업 대출시장 개척을 위해 김정태 행장이 직접 나서고 있다.
김정태 행장은 9월부터 매주 목요일 네댓 군데의 중소기업을 돌며 하루종일 마케팅 활동을 벌인다.
10월10일에는 서울 구로지역의 중소기업을 방문했다.
김 행장은 기업투명성과 대출을 연계시키도록 했다.
국민은행은 외부감사 대상기업이 아닌 업체가 외부감사를 받으면 감사비용의 30~70%를 3년간 지원해준다.
현재 대상 업체를 선정하고 있다.
부행장들도 기업대출 마케팅에 적극적이다.
각 RM점포는 자체적으로 서너 개의 CEO커뮤니티를 운영한다.
이들 CEO커뮤니티에서 여는 조찬 모임에 부행장들이 참석한다.


다른 시중은행들은 국민은행의 공격적 행보에 잔뜩 긴장해 있다.
대부분의 은행들도 이미 RM점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앞으로 노마진 대출 등 출혈경쟁을 피할 수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윤영춘 국민은행 여신정책팀 차장은 “국민은행이 공격적 대출에 나섰다는 일부 보도는 너무 앞서간 것”이라며 “기업 대출은 여전히 리스크가 높기 때문에 이를 소화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새로 개발된 신용평가시스템과 RM점포 체계를 안정화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국민은행으로서는 사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9월30일 현재 국민은행의 가계여신 총액은 70조2512억원이고, 기업여신 총액은 41조7068억원이다.
국민은행이 가계대출부문에서 강하다고만 알려져 있으나 기업대출쪽에서 이미 사실상 ‘리딩뱅크’다.
기업금융에서 여신총액 기준으로 국민은행이 1위, 기업은행이 2위다.
경쟁이 심한 가계대출 시장에서는 담보설정비용을 은행측에서 모두 부담한다.
그러나 기업대출에서는 아직까지 고객의 담보설정비를 면제해주는 곳이 없다.
그만큼 아직은 경쟁이 심하지 않다는 증거다.
기업대출 시장의 전통적 강자는 기업은행이다.
기업은행은 금리가 낮은 장기 시설자금과 정책자금을 많이 취급한다.
시중은행들이 섣불리 끼어들기 어려운 것이다.
또 대부분의 중소기업 사장들은 여전히 금리보다 의리와 관행을 중시한다.
쉽게 거래은행을 옮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기업들의 자금수요도 한정돼 있다.


국민은행은 9월23일부터 새로운 신용평가시스템을 도입했다.
허인 국민은행 여신정택팀 차장은 “새 평가시스템은 기존 국민은행, 주택은행 거래 기업들을 기본 모델로 개발해 외국에서 도입한 모델보다 현실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신용등급도 일반 신용평가회사의 10등급 체계보다 더 세분화된 12등급 체계를 쓴다.
국민은행의 신용등급에는 BB와 B 사이에 BB-, B와 CCC 사이에 B-가 더 있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이 구간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신용평가모델은 업종에 따라 8가지, 규모에 따라 3가지로 나뉘어 있다.
업종과 규모에 따라 가장 적합한 모델을 골라 적용할 수 있다.


그동안 RM점포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아직은 시스템 자체가 완전하게 정착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순한 대출 세일에 치중해 있는 경우가 많다.
RM점포는 기업의 모든 거래에 종합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전통적 기업금융 서비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외환거래, 자금조달, 투자자문 등은 엄두도 못 내는 실정이다.



신용평가시스템과 연계, 안정화 급선무


국민은행은 최근 자영업자 대상 서비스도 강화하고 나섰다.
11월15일부터 307개의 ‘소호전담팀’을 발족하기로 하고, 강남대로 지점 등 6군데에서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통합 이전의 국민은행은 전체 고객 중 95% 이상이 자영업자였다.
윤영춘 국민은행 여신정책팀 차장은 “자영업자에 대한 영업 노하우가 상당히 축적되어 있다”며 “국민은행의 장점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소호전담팀은 별도 점포를 마련하지 않고 기존 일반 점포내에서 활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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