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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은행권 합종연횡, 빅3의 고민
[비즈니스] 은행권 합종연횡, 빅3의 고민
  • 이현호 기자
  • 승인 2002.10.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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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말 당시 33개였던 국내 은행은 외환위기 이후, 부실은행 퇴출과 합병 등으로 20개로 줄어들었다.
부실금융기관 정리차원에서 시작됐던 은행간 합병이 이제는 은행의 경쟁력 강화라는 자율적 목표 아래 전개되고 있다.
마치 정글의 세계에서처럼, 덩치를 키워 초대형 은행이 되지 않으면 소리없이 사라진다는 논리가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 되고 있다.


하나은행도 이에 뒤질세라 영역확장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하나은행은 9월27일 서울은행을 인수하는 합병 본계약을 체결했다.
10월1일에는 합병추진위원회를 발족됐고, 10월21일부터는 인터넷뱅킹이 통합운영된다.
하나은행은 11월1일 주주총회를 거쳐 12월1일 국내 3위의 초대형 은행으로 출범한다.
내년 5월5일까지는 전산통합도 완료할 예정이다.
이렇게 착착 합병이 완료되면 하나은행은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에 이어 자산 순위 84조원의 ‘빅3’ 은행에 들게 된다.


두 은행의 통합 일정은 그러나 갖가지 난관을 앞에 두고 있다.
여러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조직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낼지는 의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먼저 통합 은행의 인원감축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서울은행 최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는 2000년 서울은행과 맺은 경영개선약정(MOU)을 근거로 인력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김승유 하나은행장은 10월1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명확하게 인력감축을 꼽지는 않았지만 구조조정 의욕을 내비쳤다.
전문가들도 합병 문제로 인력을 가장 먼저 꼽는다.
합병 은행은 인원이 7천명을 넘어서게 된다.



인원감축·영업방식 차이로 마찰음 우려


인원감축에 노조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서울은행 노조는 99.1%의 찬성으로 구조조정을 막기 위한 파업을 결의했다.
노동조합은 또 예보와 맺은 경영개선 MOU도 강압적 분위기에서 노조의 동의를 얻은 것이기 때문에 원인무효라며 10월14일 법원에 소장을 내놓은 상태다.


두 은행이 합치면 기존 작은 조직의 장점이던 역동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기에 두 은행 직원간에 파벌화가 빚어질 가능성도 고민거리다.
두 은행의 팀장급은 연령이 6~7살 차이가 난다.
하나은행이 서울은행보다 더 젊다.
직원들이 융합하지 못할 경우 우수 인력이 이탈할 우려가 높다.


이 문제에 대해 김승유 하나은행장은 “하나은행은 1999년 충청은행, 2000년 보람은행을 인수한 바 있으며, 두 은행과 합병이 성공적이었다”며 “인원감축 문제는 우려할 사안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또한 “직원들의 융화를 위해 합병은행은 인사기록카드에서 학력과 본적, 출신지를 삭제하고 능력 위주의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며 합병 은행의 인력문제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외적 지표뿐 아니라 내적 지표에서도 두 은행은 문제가 된다.
두 은행의 영업방식이 눈에 띄게 다르기 때문이다.
가계대출에서 하나은행은 72%가 보증·담보 대출이지만 서울은행은 48%가 신용대출이다.
기업대출에서는 하나은행이 서울은행보다 월등히 많은 신용거래(63.2%)를 하고 있다.
경제의 규모보다는 극단적 영업방식의 차이로 융합에 금이 갈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합병 은행은 자산규모가 국내 ‘빅3’에 들어가도 세계 기준으로는 171위에서 겨우 124로 올라서는 정도로 초대형 은행 창출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시장지배력과 시너지 효과는 미지수라는 말이다.


정부가 약 25%의 지분으로 합병 은행의 대주주가 되는 것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앞으로 대량 물량의 정부보유 주식이 시장에 나왔을 때 어떤 식으로든 부정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의 자율경영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이다.
결국 정부지분은 자사주 매입 내지는 소각 등 방법으로 시장부담을 헤쳐나갈 수밖에 없다.



점포수 확대·고정비 절감 등 장점도


물론 눈에 띄는 시너지 효과도 있다.
당장 합병 은행의 내년 당기순이익은 7천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법인세 감면 효과가 2006년까지 유지되는 것도 주가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합병 은행의 시장지배력 확대로 서울은행의 강점인 소비자금융·신용카드·신탁 등 영업력이 늘어난다.
이에 대해 김 행장도 “이번 합병이 금융종합그룹으로 덩치를 키우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합병은행은 점포 수도 600개로 늘어나며, 전산통합에 따라 업무 효율성도 높아진다.
규모의 경제를 따져도 고정비용이 상당히 절감된다.
두 은행간 직원의 노하우를 공유함으로써 인력풀이 커지고, 새 기술 개발도 쉬워진다.
또 은행 내부의 체제와 의식개혁을 주도하는 매개체 역할도 기대된다

KGI증권 심영섭 연구원은 “급변하는 환경에 금융산업이 남아남기 위한 대형화 논리는 시장경쟁에 의해 자생적으로 촉발됐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 “최근에 외국인 투자자들은 은행권 통합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합병은행 지분을 늘려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하나은행과 서울은행 통합으로 은행권 과점이 심해져 이용자의 부담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소기업부문 여신공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상위 5개 대형 은행의 자산집중도는 97년 말 46.7%에서 지난해 말에는 67.9%로 높아졌다.
은행의 지난해 말 평균 총자산규모는 97년 말보다 83.3%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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