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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건희 회장의 흉상 건립
[기자수첩] 이건희 회장의 흉상 건립
  • 이용인 기자
  • 승인 2002.1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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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서 ‘흉상’(胸像)을 찾아보면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상반신을 다룬 조상(彫像)”이라고 정의돼 있다.
하지만 흉상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의 종교적 신념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후세계를 믿었던 이집트인들은 죽은 사람의 흉상을 만들어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고 싶어했다.
때문에 이집트에선 여러 선명한 색상을 입힌, 죽은 사람의 흉상을 만드는 게 유행이었다.
흉상을 쳐다보면서 죽은 사람과, 죽은 사람의 형상일 뿐인 흉상을 동일시한 것이다.
예술작품을 하나의 유기체로 본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체를 절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신체의 일부를 나타내는 흉상은 거의 제작하지 않았다.
로마시대에 이르러 흉상은 최전성기를 맞는다.
공화정 초기부터 정교하고 다양한 창의적 흉상이 많이 제작된 것이다.
초상미술을 금기시한 중세에는 흉상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 르네상스시대에 이르러는 다시 다양한 고전 흉상이 부활됐다.
어찌됐든 흉상에 대한 고대의 종교적 신념은 지금도 ‘사회적 통념’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꼭 사후세계를 믿기 때문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기리고 싶은 사람이 사망하면 흉상을 세우고 있다.
삼성그룹 창립자인 고 이병철 회장의 흉상도 그가 삶을 마감한 뒤 후손들 손으로 만들어졌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흉상도 1주기 추도식 때인 올해 3월에 세워졌다.
거꾸로 얘기하면 예로부터 내려온 뿌리깊은 종교적 선입관 때문에 이생에 남아 있을 때 스스로 자신의 흉상을 세우는 적은 거의 없었다.
삼성이 이건희 회장의 흉상을 제작해 삼성전자 수원 정보통신연구소 1층에 세웠다고 한다.
“이 회장이 기술개발을 독려하고 연구원의 사기앙양에 남다른 관심을 표해왔기 때문에”라는 삼성쪽 설명에 전혀 흠집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왠지 흉상에 대한 ‘사회적 통념’과 거리가 멀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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