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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안팎 시련 조흥은행 ‘동작그만’
[비즈니스] 안팎 시련 조흥은행 ‘동작그만’
  • 이승철 기자
  • 승인 2002.11.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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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있는 은행 본점을 지방으로 이전하려는 초유의 시도가 결국 물 건너가는가. 조흥은행이 예금보험공사에 본점 이전에 관한 세부실천계획을 제출한 10월25일, 조흥은행 지분을 약 80% 보유한 정부는 은행지분을 매각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로써 대전이냐 청주냐를 놓고 지역 대립 구도로까지 치열하게 전개되던 조흥은행의 본점이전 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나게 돼, 충청지역의 반발과 실망감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매각이라는 돌출변수의 파장은 다른 부문에도 미치고 있다.
조흥은행은 카드사업부문을 매각하면서 국내 최초로 합작카드사를 신설할 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10월말 최종타결 단계까지 이른 것으로 알려졌으나, 은행매각이라는 돌출변수로 주춤거리고 있어 한치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됐다.


조흥은행은 10월25일 본점의 후선부서와 인력 182명을 12개월 이내에 충청지역으로 옮기겠다는 내용을 포함한 구체적 본점 이전 계획을 예금보험공사에 제출했다.
이것은 1998년 조흥은행이 정부로부터 공적자금 2조7천억원을 투입받을 당시 제출한 ‘경영정상화를 위한 양해각서(MOU)’에 포함된 사항이다.
이 각서에는 ‘지역경제발전을 위해 2001년 말까지 중부권으로 본점을 옮긴다’는 내용이 단 한줄로 언급되어 있다.
그 무렵 충청은행과 충북은행이 모두 퇴출된 터라, 당시 공동여당 자민련이 충청지역으로 조흥은행의 본점을 옮길 것을 강력히 요구했기 때문이다.
순전히 정치적 논리로 결정된 일이었다.



본점이전 계획, 지역갈등만 조장


조흥은행의 한 관계자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급작스럽게 유동성 위기에 몰렸던 은행이 살길을 모색하던 중, 정부의 지원을 얻으려면 지방으로 이전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지방으로 옮겨서 경영에 보탬이 될 것은 하나도 없지만, 당시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MOU에는 본점이 이전할 지역을 ‘중부권’으로만 언급했기에, 이전지역을 둘러싸고 대전과 청주가 지금까지 불꽃 튀는 물밑 유치 경쟁을 벌여왔다.
조흥은행은 지난해까지 이전지역을 당연히 자민련의 정치적 고향인 대전지역으로 감안하고 계획을 추진했으나, 청주지역의 반발에 부닥치면서 이전 시한을 넘겼다.
충북지역에서 “조흥은행이 청주에 근거한 충북은행을 합병했으니 청주로 이전하는 것이 순리”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더해 춘천의 한 지역신문은 강원은행도 조흥은행에 합병됐으니, 역시 중부권인 춘천으로 와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조흥은행으로서는 본점이 충청지역으로 이전하면서 지방은행으로 전락하는 것이 죽을맛이지만, 이왕 옮길 수밖에 없다면 각종 기반시설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대전지역을 내심 선호했다.
하지만 이전 문제가 대전과 청주 양쪽의 지역갈등 양상으로 번지는데다 국회의원, 시의회 등 정치권까지 가세해 압력을 행사하면서, 결국 지역선정을 양쪽 지자체의 합의에 맡기고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러나 조흥은행의 주인인 정부가 은행지분을 매각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본점 이전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조흥은행이 민영화하면 MOU의 합의사항은 휴짓조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MOU 당사자인 예금보험공사와 금융감독위원회도 두손을 놓고 상황 전개를 지켜볼 뿐이다.


애당초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을 하루 빨리 정상화하고 값어치를 높여 투입자금을 회수하려면 본점 지방 이전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본점 이전 문제가 정치적 흥정 대상이 됨으로써, 결국 지역간 갈등만 조장한 채 정부의 약속이 빈말로 전락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조흥은행이 25일 제출한 세부이전계획을 보면, 본점 중에서 전산부서와 수도권 영업부서, 금융감독원 담당부서 등을 제외하면 본점 1300여명 중 지방으로 이전할 수 있는 인원은 182명에 불과하다.
MOU에도 후선부서를 중심으로 본점의 ‘일부 부서’가 이전하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조흥은행 조성호 전략기획팀장은 “영업점의 80%가 서울 및 수도권에 있으니 영업인력이 남아 있어야 하고, 전산부서는 기술적으로 지방 이전이 곤란해 지방에는 백업센터를 신설할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이것저것 빼고 나면 이전할 수 있는 인원은 182명 정도여서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애초 취지에 얼마나 부합할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충분한 설명없이 충청권을 상대로 잔뜩 기대감만 부풀렸으니 그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홍석주 은행장, 매각시점에 강한 불만


한편 조흥은행은 지난해 6월부터 카드사업부문의 지분을 외국 선진업체에 매각하고 국내 처음으로 합작 카드회사를 신설할 것을 추진해왔다.
그동안 씨티은행 등 5개 업체가 관심을 보였으나, 현재 합작대상으로 GE캐피탈이 유력하다.
양사는 51 대 49의 지분율로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조흥은행이 경영권을 갖는 것으로 이미 합의했다.
카드부문의 자산규모는 약 6조원으로 이중 5조원 정도가 신설될 합작사에 매각될 예정이다.
양쪽은 마지막으로 자산매각분의 프리미엄 액수를 놓고 5천억~8천억원선에서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다.


카드사업부문 매각은 그동안 조흥은행이 경영을 정상화하고 독자생존의 길로 들어서기 위한 핵심과제로 추진해온 것이다.
조흥은행 신용카드사 설립준비단 전두환 단장은 “GE캐피탈은 세계적 카드 업체로 업무 프로세싱, 연체관리 등에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어 비용절감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현재 보유중인 480만 고객을 바탕으로 단숨에 업계 4~5위권으로 자리매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전 단장은 “조흥은행의 역사가 오래기 때문에 카드 고객의 로열티가 높고 일인당 평균 사용액도 가장 많다”고 자사의 장점을 설명했다.


그동안 양쪽이 이르면 10월말까지 계약을 성사하고 내년 1, 2월 중 회사를 출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했다.
그러나 때마침 불거진 은행매각 문제로 협상이 큰 어려움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전 단장은 “외부적 요인에 영향받지 않고 카드부문 매각을 계속 추진하고 싶지만,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조심스럽운 반응을 보였다.
홍석주 은행장도 정부의 은행매각 시점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한 바 있다.


11월1일 건설교통부가 그동안 국민은행이 독점해온 국민주택기금 운용 은행으로 2곳을 추가 선정했으나, 주택기금 운용사업에 큰 기대를 나타냈던 조흥은행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조흥은행쪽은 “지난 몇년간 위기상황을 거치면서 대출관련업무에서 특별한 노하우를 쌓았으니 객관적으로 평가받으면 충분히 선정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시해왔다.
오히려 매각 문제에 따른 불이익이나 특혜시비를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이래저래 안팎으로 닥친 어려움에 조흥은행의 앞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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