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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스포츠 브랜드 ‘푸마’ 실적 효자로 바꾼 오상흔 / 이랜드 사장
[사람들] 스포츠 브랜드 ‘푸마’ 실적 효자로 바꾼 오상흔 / 이랜드 사장
  • 백우진 기자
  • 승인 2002.11.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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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이미지로 브랜드 리포지셔닝”

“의사결정을 빠르게 내리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직원들을 격려했습니다.
운도 따랐죠.” 별로 재미없는 대답이다.
매출이 급신장한 요인을 캐물었지만 오상흔(39) 사장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성공하는 경영자는 공을 직원에게 돌리며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반면 실패하는 경영자는 일이 잘 안 풀릴 때 다른 사람이나 외부요인을 탓한다’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매출을 대폭 늘린 데에 비결이 없을 리 없다.
이랜드는 상반기에 지난해 상반기보다 388억원, 62% 많은 101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순이익은 약 120% 증가한 278억원을 냈다.
성장의 주역은 푸마사업부다.
푸마사업부의 상반기 매출은 414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의 99억원보다 315억원 신장했다.
브랜드별 사업부 11개가 이룬 전체 매출증가분 388억원 가운데 81%를 기여한 것.

도대체 운이 어떻게 좋았길래? 오 사장은 “마침 월드컵이 열렸죠”라고 말한다.
월드컵은 모든 업체가 공유한 배경 아니었나? “푸마는 잠실야구장에서 월드컵을 관람하는 ‘사커 페스티발’로 인지도를 확 끌어올렸습니다.
우리나라가 7차례 경기를 치르는 동안 모두 24만명이 사커 페스티발을 즐겼죠.” 이랜드는 월드컵이 개최되기 1년 전부터 머리를 맞대고 마케팅 전략을 구상했고, 프로야구가 월드컵 기간에 쉰다는 뉴스를 듣고는 바로 잠실야구장과 계약을 맺었다.


사커 페스티발 입장권은 주로 푸마 매장에서 무료로 나눠줘 홍보효과를 높였다.
월드컵 바람이 거세지면서 입장권은 장당 몇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이랜드는 축구팬들에게 부채 등 사은품을 선물했고, 잠실야구장을 ‘통째로’ 푸마 광고에 활용했다.
비용은 8억원밖에 들지 않았다.
효과는 바로 매출로 나타났다.


이랜드의 사커 페스티발은 월드컵 기간의 대표적 ‘앰부시 마케팅’ 중 하나로 통한다.
앰부시 마케팅이란 공식 후원사가 아닌 업체가 벌이는 판촉활동을 말한다.
국내 몇몇 대학 경영학과에서는 오 사장에게 사커 페스티발을 성공적 마케팅 사례로 강의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처음에는 마뜩찮아하던 독일 본사는 여러 차례 회의를 거치면서 사커 페스티발 행사를 이해하게 됐다.
본사에선 이제 사커 페스티발을 성공사례로 전파하고 있다.
사커 페스티발은 10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전세계 푸마 라이선스 사업자 마케팅 대회에서도 소개됐다.


푸마사업부는 2000년까지만 해도 이랜드의 천덕꾸러기였다.
2000년 매출은 100억원에 그쳤다.
“독일 본사의 브랜드 리포지셔닝과 이랜드의 노력이 어우러졌다고 봅니다.
” 우선 독일 본사는 브랜드의 상징 색채를 녹색에서 젊고 역동적 이미지의 빨간색으로 바꿨다.
또 대상 고객을 젊은층과 여성으로 재설정하고 상품도 젊고 예쁘게 만들었다.


이랜드는 이에 맞춰 유통망을 재구축했다.
재래 상권에 집중돼 있던 기존 매장을 명동, 동대문, 이태원, 신촌, 대학로 등 젊은층이 많이 모이는 대형 상권 중심으로 옮겼다.
오 사장은 “올해 중 이대, 압구정, 강남역 등 젊은 여성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에 신규 매장을 열어 매장을 현재 72개에서 110개까지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광고와 마케팅도 젊은 쪽으로 집중했다.
과거 푸마는 축구로 대변되는 남성적 이미지를 내세웠다.
이랜드는 10대 청소년이 좋아하는 힙합을 테마로 잡아, 힙합 전문지와 댄스팀을 지원하고 힙합 댄스 축제를 주최했다.
광고는 케이블TV의 음악채널과 극장, 스포츠신문에 내보냈다.


푸마사업부는 지난해 매출 340억원으로 성장률 240%를 기록했다.
올해 판매는 1천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푸마사업부는 디자인, 광고, 영업, 물류 등 인원으로 이루어져 의외로 단출하다.
생산은 해외에서 한다.
부서원 33명은 지난해 연말 월 기본급의 110%를 성과급으로 받았다.
연간 급여가 오 사장보다 많은 직원도 생겼다.
1988년 입사한 오 사장은 “후배들에게 이랜드가 개인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장이라는 점을 보여주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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