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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세계 최고 반도체 회사 꿈꾼다
[비즈니스] 세계 최고 반도체 회사 꿈꾼다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2.11.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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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 예상과 달리 지난 10년간 반도체산업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인 분야는 D램 반도체가 아니다.
파운드리(수탁가공)산업이 D램을 제치고 최고의 성장 부문으로 꼽힌다.
그동안 세계 파운드리시장은 대만 업체들의 독무대였다.
아남반도체, 하이닉스, 동부전자 등 국내 업체들은 생산능력과 기술력 모두에서 절대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해왔다.
그러나 아남반도체와 동부전자의 합병을 계기로 이러한 상황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난 7월5일부터 시작된 동부전자와 아남반도체의 합병 절차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암코(AmKor)로부터 아남반도체의 경영권을 인수한 동부전자는 11월15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한신혁 동부전자 부회장, 윤대근 동부전자 사장, 박동현 전 메릴린치 이사 등으로 아남반도체의 이사진을 새로 구성했다.
동부전자는 내년 상반기 중 통합법인 설립을 목표로 합병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양사의 경영은 윤대근 동부전자 사장 겸 아남반도체 사장이 위원장으로 있는 통합경영위원회에서 맡고 있다.
동부전자 관계자는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합병작업을 완료한다는 구상”이라며 “그러나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의 허가 절차가 복잡하고, 주주들의 의견수렴 과정도 필요해 생각만큼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동부전자와 아남반도체의 합병을 반기는 분위기다.
시장조사업체인 가트너의 김창수 이사는 “현재로서는 각자 따로 있는 것보다 합치는 게 더 유리하다”며 “무엇보다 합병으로 몸집을 키워 ‘규모의 경제’에 도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송명섭 KGI증권 연구위원은 “이번 합병으로 동부전자의 0.13㎛(미크론·1미크론은 1천분의 1mm) 기술과 투자여력, 아남반도체의 고객과 생산경험, 생산능력이 하나로 묶이게 됐다”며 “시너지 효과가 가시화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전체적 방향은 제대로 잡았다”고 말했다.



동부의 기술력과 아남의 생산력 ‘윈윈’


1997년 D램 사업을 추진하다 IMF 외환위기로 포기했던 동부전자는 2000년 파운드리로 방향을 바꿨다.
도시바로부터 기술을 도입해 건설한 충북 음성의 ‘상우공장’에서 현재 월 5천장 규모의 웨이퍼를 가공하고 있다.
동부전자의 고민은 이 정도의 생산능력으로는 본격적 사업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었다.
라인 증설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2조원 규모에 달하는 투자비용을 조달하는 것이 쉽지 않은 문제였다.
동부전자는 1740억원이라는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아남반도체 인수에 성공함으로써 생산능력 확충에 대한 부담감을 상당부분 덜 수 있게 됐다.
아남반도체의 부천공장은 월 3만장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동부전자 관계자는 “고객들의 반응이 달라졌다”며 “비즈니스의 심도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어졌다”고 말했다.


0.13㎛첨단 미세가공기술에 집중적 투자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상당한 소득이다.
파운드리산업은 다른 곳보다 첨단기술 경쟁이 한층 치열한 분야다.
종합반도체회사나 설계전문회사로부터 주문을 받아 웨이퍼 가공만을 대행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원가 경쟁에서 이익을 남길 수밖에 없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면 그만큼 원가를 낮출 수 있다.
회로 선폭을 줄이는 미세가공기술은 0.35㎛, 0.25㎛, 0.18㎛, 0.13㎛으로 계속 발전하고 있다.
0.25㎛과 0.18㎛이 현재 시장의 주력 기술이다.
0.13㎛ 기술을 구현한 곳은 세계 파운드리 시장 1위 업체인 TSMC를 비롯해 극소수에 불과하다.
후발주자인 동부전자로서는 0.13㎛ 기술 개발에 사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0.25㎛, 0.18㎛ 제품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문제는 다시 투자부담으로 돌아간다.
아남반도체의 부천공장은 0.35㎛, 0.25㎛, 0.18㎛ 기술을 이미 갖고 있다.
동부전자는 이를 인수함으로써 상우공장을 0.13㎛ 이하 시설로 집중 육성할 수 있게 됐다.
도시바와 제휴하면서 동부전자는 0.13㎛ 기술 도입을 약속받았다.
파운드리 중계 업체인 플러스엔스엔티 라문갑 대표는 “0.13㎛ 기술 개발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며 “대만 업체들도 아직 양산단계에 가 있지 못하다.
동부전자가 빨리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아남반도체는 추가 시설투자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남반도체의 대주주인 암코는 세계 1위의 반도체 패키징 전문업체다.
암코는 아남반도체가 98년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아남반도체의 4개 패키징 공장을 차례로 인수했다.
현재 아남반도체에는 파운드리 고장인 부천 공장만 속해 있다.
암코는 주력인 반도체 패키징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이번 매각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남반도체 부천공장은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와 제휴해 설립됐다.
TI는 아남반도체의 최대 고객이기도 하다.
부천공장의 생산물량 중 80% 이상이 TI에 납품하는 디지털신호처리기(DSP)다.



대만 TSMC·UMC 이어 넘버3 도전


KGI증권 송 연구위원은 “아남과 TI가 10년 이상 관계를 맺어왔지만, 앞으로 TI가 주문물량을 줄일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부천공장에서는 0.18㎛ 이상의 제품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TI에서 2003년 하반기부터 0.13㎛ 제품을 납품해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아남반도체가 이를 수용하지 못하면 대만의 TSMC 등으로 거래선을 바꿀 것이 뻔했다.
암코의 한 관계자는 “동부와 아남이 합병해 TI의 기술과 물량이 대만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부전자와 TI의 0.13㎛ 기술 도입 및 제품공급 협상이 깨져 이러한 기대가 무색해졌다.
동부전자 권기주 과장은 “협상은 깨졌지만 부천공장과 TI의 전략적 제휴 관계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이미 도시바로부터 0.13㎛ 기술을 이전받기로 해 기술확보에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최근 “동부아남반도체를 세계 최고의 반도체회사”로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2006년까지 1조3천억원을 투자해 4만장 규모의 생산라인을 갖춘다는 계획이다.
우선 상우공장의 0.13㎛라인 건설에 집중 투자해 내년 중에는 일부라도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동부전자는 1~2년 내로 싱가포르의 차터드를 제치고 TSMC, UMC에 이어 세계 3위의 파운드리 업체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장 큰 변수는 파운드리 시장의 상황이다.
지난해와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올해도 파운드리 업계의 평균 가동률이 5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기침체에 공급과잉이 겹쳤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2004년에나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세계시장의 90% 가까이를 장악하고 있는 빅3의 아성에 도전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업계 전문가는 “신규 파운드리 업체가 쉽게 새로운 시장 세력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빅3로부터 마켓셰어를 빼앗아 오는 일은 일종의 모험”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낙관적 분석도 있다.
동부전자 권기주 과장은 “평균 가동률은 50%에 머물고 있지만, 0.25㎛, 0.18㎛ 생산라인의 경우 가동률이 80%대를 넘어선다”며 “하이테크 기술로 승부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가트너의 김 이사도 “결국은 지속적 투자를 할 수 있느냐가 문제”라며 “동부전자가 쫓아가야 하는 입장인 만큼 공격적 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높지만 현금흐름을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칫하다가는 제2의 하이닉스가 될 수도 있다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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