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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폭적 ‘권력’에 대한 쓴소리
[서평] 조폭적 ‘권력’에 대한 쓴소리
  • 백우진 기자
  • 승인 2002.11.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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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란 그대로 놔두면 반드시 부패하게 돼 있다.
이 때문에 현대 문명국가는 삼권분립제를 채택해 권력기관끼리 상호 견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법부는 행정부 견제 임무에 대한 자각이 없다.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는 적법성을 꼼꼼히 따지며 검찰의 수사와 기소를 견제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는 국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법부는 오히려 같은 법조인이라며 검사를 믿고 들어간다.
” 저자는 행정사건을 다루는 고등법원도 행정권력의 행사 내용과 과정의 적법성을 면밀히 따지기보다는 ‘중앙부처의 엘리트 공무원들이 전문지식과 양심에 따라 잘 처리했으려니’ 하는 선입견을 갖는다고 비판한다.


사법부와 행정부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한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우리 정부 시스템을 세부사항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큰 틀에서 바라보고,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1981년 사시 23회로 법조계에 입문했고, 서울고법판사로 재직하던 96년 공정거래위원회의 법무심의관에 지원해 행정공무원으로 변신했다.
공정위에서는 이후 심판관리관, 정책국장, 하도급국장 등을 역임한 뒤 올해 4월에 퇴직하고, 법무법인 ‘바른법률’에서 파트너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입법·사법·행정·언론까지 문제투성이


국회는 어떤가? 국회는 입법권과 예산심의의결권, 그리고 국정감사 등을 통해 행정권력을 통제해야 한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입법 과정에 행정부의 조역으로만 참여하고 있다.
“법은 일선 사무관의 손에서 내용이 정해진 뒤 결재 과정에서, 또 국회 심의 과정에서 상급자와 국회의원들의 즉흥적인 생각으로 마구 변경돼 국회를 통과한다.
” 국회의원들의 예산심의나 국정감사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터.

어떻게 고칠 것인가? 저자는 사법부는 고등법원의 서울시장 판공비 공개 판결과 같이 행정부의 감춰진 부분을 햇빛 아래로 끌어내려는 새로운 소송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어 국회의원 개개인이 양질의 의정활동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중앙당의 기능을 축소하고 상향식으로 공천하며 미국의 처럼 주요 의정활동을 생중계하자고 제안한다.


이제 남은 건 행정부다.
저자는 행정부의 가장 큰 문제로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전근대적 조직운영 구조를 든다.
대통령은 장관에게 일을 맡겨두기보다는 사사건건 간섭하고, 장관들은 대통령에게 잘 보이는 방법으로 전시행정과 언론플레이에만 공을 들인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외에 ‘제4부’로 불리는 언론은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 대해 한쪽 측면만 보고 마구잡이로 비판성 기사를 날린다.


저자는 “대통령후보에게 요구하는 공약”이라며 정부 운영과 관련해 다음 사항을 제시한다.
장관 임기를 보장하고 장관에게 부처 운영의 전권을 준다.
청와대부터 판공비를 폐지한다.
총리실을 축소한다.
정기적 국무회의를 폐지한다.
대통령비서실을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만을 보좌하는 곳으로 축소한다.
대통령과 장관의 공적 활동을 모두 기록한다.
대통령은 사정 업무에서 손을 뗀다.


“이 책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힘은 행정부에서 만났던 우수하고 열정적인 후배들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들의 형형한 눈망울과 순수한 정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자부심과 애정을 갖지 못하고 좌절하는 모습이 오래오래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무엇이 젊은 사무관의 의욕을 꺾는가?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국민이 아니라 자신보다 위에 있는 공무원을 위해 일하고 있다.
그래서 업무가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이며, 분위기는 폐쇄적이고 경직돼 있다.
전시행정과 서류작업도 같은 요인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그 결과, 다른 책의 구절을 인용하면, “대통령으로부터 줄줄이 내려오는 권위적인 조직에서 공무원은 업무보다는 윗사람을 모시는 데 열과 성을 기울인다.
머리는 퇴화되고 눈만 커진다.


공무원들은 그래서 차츰 일에서의 보람보다는 상관을 잘 모신 실질적 대가를 추구하게 된다.
그 대가는 고위직으로 올라가면서 휘두르는 재량권과 내부적으로 누리는 조폭적 예우, 그리고 판공비 등이다.



개인적 목적으로 판공비 물 쓰듯


판공비와 관련해 저자는 “원활한 공무를 위해 돈을 쓴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단언한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사적 교제나 개인적 목적을 위해 나랏돈을 펑펑 써댄다는 것이다.
그는 또 기관장이 실제로 쓰는 판공비는 명목상 나타나는 것 이외에도 온갖 곳에 온갖 명목으로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고발한다.
“정부 회계 감사를 담당하는 감사원은 무얼 하는가? 혹시 감사원도 그런 짓을 하기 때문은 아닌가?” 저자는 판공비를 아예 없애고 필요한 금액을 봉급에 반영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아니면 사용 내역을 다음날 그 기관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하자고 요구한다.


옥에 티를 지적하자. 저자는 이 책을 빅딜, 공적자금, 교육 등을 문제삼으며 시작했다.
그러나 저자가 꿈꾸는 ‘나라’이어도 이런 문제는 빚어질 수 있다.
바로잡는다고 해서 곧 제대로 가게 되는 것은 아니다.
또 정부의 잘못은 어디까지나 정부 영역에 그친다.
정부 외에 기업과 금융, 언론 등 의사결정 및 실행과정에 참여하는 주체는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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