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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위풍당당 여성 CEO 나가신다
[커리어] 위풍당당 여성 CEO 나가신다
  • 황보연 기자
  • 승인 2002.11.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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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최고경영자(CEO)들 사이에서 ‘마당발’로 통하는 새턴커뮤니케이션스 김은수(42) 사장은 1985년 학교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남녀차별이 적은 외국계 기업쪽으로만 눈길을 돌렸다.
실력보다는 성별을 먼저 따지는 분위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그는 머천다이저(MD)에서 헤드헌터로 진로를 바꾸는 인생역전 속에 2년 전부터 헤드헌팅 업체인 스터링 리소스그룹과 외국 IT잡지 등을 제작하는 새턴커뮤니케이션스를 경영하고 있다.
한국 IT여성기업인협회, 한국벤처협회,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등 그가 몸담고 있는 협회만 해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한달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모임만 7군데 정도에 이른다.
네트워크를 쌓아가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동국대 국제정보대학원에서 개설한 최고경영자과정을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모임에 참가하는데도 불구하고 성에 차진 않는다.
“술 먹고 골프 치는 문화적 차이뿐 아니라 남성 CEO들은 대체로 사업규모가 크고 제조업 중심이라 교류에 한계가 있어요. 만나면 여자라 힘들겠다는 식의 인식도 부담스럽고.” 여성 CEO들이 중심이 되는 협회도 만족스럽지만은 않았다.
대체로 임원 중심으로 운영되는데다 회원을 중심으로 한 교류의 장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뭔가 다른 모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김 사장은 지난 10월30일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여성기업인 경영연구모임’(경영연구모임)을 공식 발족시켰다.
2년 전부터 가깝게 지내던 10여명의 여성 사장들과 가져온 모임을 확대한 것이다.
30~40대 중심, 전문직 종사자도 참여 발족준비위원으로 참여한 시스템통합(SI) 업체인 애드온 최영선(51) 사장의 고민을 들어보면 경영연구모임의 필요성을 좀더 공감하게 된다.
그는 여성 CEO 1세대로 꼽힌다.
아직도 70년대 업무 때문에 해외출장을 다니던 시절을 잊을 수가 없단다.
“일본에 출장을 가야 하는데 여권을 내주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외무부로 직접 가서 따졌죠. 여자가 무슨 출장이냐고 생각했는지 내 서류는 맨 밑에 처박혀 있더라구요. 결국 아는 분을 동원해 예정보다 사흘 늦게야 떠날 수 있었어요.” 최 사장은 73년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한국후지쯔, 한국유니시스 등에서 프로그래머로 경력을 쌓아왔다.
하지만 직장생활 2년차에 접어들면서부터 CEO가 되고 싶은 꿈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사장의 결정에 따라 전체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실력’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죽을 힘을 다해 일에 매달리던 시절이다.
이때부터 스스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말하자면 셀프트레이닝을 한 셈이죠. 사장이 되려면 자기 일만 잘해선 안 되잖아요. 두루두루 경험을 쌓아야 하는 거죠. 사장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면 저도 나름대로 또 다른 결정을 해보기도 하고, 결과가 나오면 혹독한 평가도 내렸죠.” 90년 한국소프트웨어개발을 차리면서 실제 사장이 됐다.
17년 동안 꾸준히 한길을 걸어온 경험이 발판이 됐다.
하지만 막상 ‘여성 CEO’가 되고 나서도 제대로 인정받긴 쉽지 않았다.
“여자가 해봤자 얼마나 하겠느냐 하는 인식이 팽배했지요. 지금도 사장을 찾는 외부전화가 걸려와 제가 받으면 여비서인줄 알고 다시 사장을 바꾸라고 하는 일이 다반사죠.” 그러나 정작 여성 CEO들이 겪는 어려움은 네트워크가 취약하다는 데 있다.
출신학교부터 따지고 드는 학연과, 지연으로 똘똘 뭉친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인적 네트워크가 취약한 여성 CEO들이 겪는 어려움은 남다르다.
이런 고민 끝에 평소 가깝게 지내던 김 사장의 제안으로 경영연구모임의 핵심멤버가 됐다.
맏언니격으로 후배 CEO들에게 해줄 이야기도 많지만 실은 그가 배울 점도 많기 때문이다.
겁없이 새로운 분야를 과감하게 개척해나가는 젊은 여성 CEO들은 그에게 새로운 활력소로 다가온다.
CEO 꿈꾸는 여대생에 카운셀링도 ‘Businesswomen’s Roundtable’이라는 영문명칭에서 보듯 경영연구모임은 김은수 사장을 포함한 13명의 운영위원들이 만장일치로 모든 사항을 결정하는 여성 기업인들의 자치모임이다.
김은수 사장과 최영선 사장 외에 강은주 플라워라인 사장, 김재희 오리엔트 전산 사장, 이혜경 한국PNR건설 사장, 신향숙 이포어 사장 등이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기존 여성 기업인들을 포괄하는 협회와는 다른 차원으로 여성 CEO들끼리 서로 실질적 도움을 주고받자는 것이 기본 취지다.
첫모임부터 60명이 회원으로 가입하는 등 반응은 뜨거웠다.
이곳의 회원들은 대체로 30~40대가 주를 이룬다.
어느 정도 직장경력을 쌓아 창업한 지 5년 이내인 여성 CEO들이다.
또 CEO가 아니더라도 법조인 등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이라면 회원 가입이 가능하다.
“남성들에 비해 소위 ‘백’이 없는 여성들일수록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봐요. 사업에 직접 도움이 되는 정보교류뿐 아니라 CEO로서 자질을 닦아가고 CEO가 되고자 하는 후배들을 양성하는 데 더 비중을 두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죠.” 경영연구모임은 우선 매월 한차례 정기포럼을 안착시킬 생각이다.
11월27일에는 김정태 국민은행 행장을 강사로 초빙한다.
김 사장은 또 장기적으로 NGO 역할까지 담당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귀띔한다.
“여성 기업인을 위한 창업자금 지원, 여성전용 펀드 등의 정부지원책이 있지만 실제 사업을 하다 보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들처럼 자금동원이 쉽지가 않아요. 정부가 자금대출시 심사기준을 다르게 만들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최근 합류한 디자인이즈 신지희(40) 사장은 곧 문을 열 모임의 홈페이지 www.bwroundtable.com 작업을 거들고 있다.
24시간 경영을 고민해야 하는 CEO들인지라 온라인을 활용하는 것은 필수다.
회원들이 애로사항을 제기해오면 1차 상담은 내부적으로 가능하도록 구축할 계획이다.
보통 딱딱한 분위기에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포럼에 많이 다녀봐서인지 친근한 분위기의 이 모임이 맘에 들었다고 한다.
“지난 2000년 사업을 시작하면서 사실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경영자가 갖춰야 할 것들을 모아나갔어요. 진작 이런 모임이 있었으면 고생을 덜 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양한 주제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다가도 사업 이야기가 나오면 서로가 충실한 카운셀러가 돼주는 것이 큰 매력이란다.
CEO가 되려는 여대생들을 위한 카운셀링 행사 등을 통해 후배들에게도 실질적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게 신 사장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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