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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칼럼] 권태신 /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 국장
[리드칼럼] 권태신 /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 국장
  • 이코노미21
  • 승인 2002.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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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과연 아시아 최고 등급을 부여받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히 일개 신용평가사의 평가에 대한 기대라는 의미를 넘어 우리의 미래상에 대한 화두라고 생각한다.


국가신용등급은 특정국가의 채무원리금 상환능력과 의지에 대한 평가다.
따라서 국가신용등급은 단순히 경제상황에만 국한되는 평가는 아니며 채권발행국의 정치적, 사회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된다.


오늘날 국제금융사회에선 국가신용등급이 높다는 것의 의미를 단순히 채무원리금의 상환능력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국가신용등급은 특정국가의 중장기적 경제상황에 대한 국제금융사회의 긍정적 평가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다.


외환위기 직후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은 S&P 기준으로 AA-에서 B+로 10단계 하락해 선진국의 우량금융기관은 내부규정상 우리 채권을 구입할 수 없는 투기등급으로까지 하락시킨 적도 있다.
그러나 금 모으기 운동 등 온 국민이 합심해 노력한 결과 우리는 최근 외환위기를 겪은 남미,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A등급을 회복하는 놀라운 성과를 이룩했다.


최근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대되며 세계경제의 불안요인이 높아가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이 모두 2등급이나 상승시킨 것은 한국 경제에 대한 국제금융사회의 긍정적 확신이 반영된 결과다.
이러한 신용등급 상승은 곧바로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 제고로 이어져 기업들의 차입비용 절감과 수출증대,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의 직·간접 투자를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신용등급 수준은 아직 외환위기 이전 수준인 AA-보다 낮으며 일본, 싱가포르 등 주요 아시아 경쟁국보다도 낮다.
국가신용등급이 그 국가에 소속된 기업과 금융기관의 신용등급 상한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가신용등급의 상향 없이는 우리가 추진하는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지 전략도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우리의 신용등급을 상향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무엇일까? 국제적 신용평가사들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 향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시장 중심의 경제질서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정치적 안정, 노사관계의 안정, 기업의 투명성면에선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고 입을 모은다.


필자는 오랜 외국생활 동안 우리 국민 개개인이 선진국 국민보다 열심히 일하고 개인적 능력이 뛰어난데도 왜 아직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가 고민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내린 결론 중 하나는 우리 사회가 과연 예측이 가능한 사회인가, 약속을 지키는 사회인가,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회인가 하는 질문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우리 사회가 법과 질서가 존중되는 사회인지 자문해봐야 한다.
법과 원칙에 충실한 개인은 다소 우직해 보일 수 있고 때로는 손해도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 전체로 살펴보면 법과 원칙이 잘 지켜지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더욱 많은 혜택이 돌아간다.
아마도 국가신용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체는 원칙과 자기 책무에 충실하고자 하는 개인들의 신념일 것이다.
오늘날 선진국 사회치고 법과 질서가 중시되지 않는 사회가 없다는 사실은 이를 잘 반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가치 공유도 중요하다.
우리는 아직도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사회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모인 식당 등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것을 가만 놔두는 부모를 보면 우리나라의 가정교육은 아직도 “너만 출세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듯하다.
끼어들기를 한 차량이 가장 빨리 갈 수 있고 또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가 되어서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본다.


또 무한경쟁 시대에 ‘세계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세련된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더욱이 대외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나라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외국인의 가치관에 비추어 우리를 한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외국인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고 했지만 아직도 외국인들은 그렇게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최근 국제경영연구기관인 IMD는 우리 노동시장의 경쟁력을 49개국 중 47위로 평가하고 있다.
이렇게라도 우리가 그들과 너무나 다르다는 점을 지적해주는 외국인은 오히려 고마울 수 있다.
아무 말 없이 발길은 돌리는 외국인이 더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머지않은 장래에 필자가 걱정하는 오늘의 자화상이 기우에 불과했다고 평가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나라가 아시아 최고의 신용등급국가로 올라 ‘2002 월드컵의 격정’을 다시 한번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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