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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우의 책읽기] '루이뷔똥'
[이권우의 책읽기] '루이뷔똥'
  • 도서평론가
  • 승인 2002.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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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중늙은이들이 된 386들이 술자리에 모이기라도 하면 한탄조로 요즘 ‘아이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뱉는다.
어쩌면 그렇게 자기만 알고 되바라진지 모르겠는데다, 머리에 든 것 없이 자기 주장만 내세운다며 푸념이다.
각별히 머리에 든 것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는, 1980년대보다 여러모로 안정된 시절을 보낸 녀석들이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힐난이다.
그래도 부러워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영어나 컴퓨터 실력은 선배세대들보다 낫다는 점이다.
이 말은 벌써 386세대들이 후배들의 추격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 역시 386으로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다.
하지만 일방적 매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후배세대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믈론, 나 역시 내가 속해 있는 386세대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우리는 자신의 안녕만을 생각하지 않았다.
나라와 민족, 그리고 민중을 사랑했다.
그것은 분명 자기희생을 밑거름으로 삼은 고귀한 행동이었으며, 그 결과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굴러가게 하는 데 이바지했다.
그러나 젊은날의 화려한(?) 기억만을 가지고 후배들에게 존경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오히려 우리 세대의 허상을 꿰뚫어보는 후배세대들의 냉소적 시선에 등골이 오싹해지곤 한다.
신예작가 김윤영의 첫 소설집 '루이뷔똥'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오금이 저렸다.
이 신예작가가 마침내 386 신화의 허구를 만천하에 폭로하고 있어서다.
민주와 통일을 위해 구국의 전선에 나섰던 세대라고, 웃기고 있네. 그렇게 잘난 척하는 너희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초라한 몰골을 한번 되돌아보라고 비아냥거린다.
그런데 386세대를 흉보는 방식이 고약하기 짝이 없다.
변신의 물결에 몸을 실어 보기 좋게 성공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를 조롱하지 않는다.
외려 남들 다 떠난 자리에 고집스럽게 남아 고통받는 이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옛동지들한테 “아직도 우리가 대학 다니던 20대인 줄 알고 그때 기준으로 생각하고 살려고” 한다며 욕을 먹는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들은 낮은 목소리로 “아주 최선을 다해 살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때와 너무 멀어진 것 같다”고 항변한다.
그런데, 읽는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 실종되거나 가출하거나 유학을 가거나 정신병자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명랑소설을 연상케 하는 날렵한 문체를 자랑하는 김윤영이 386세대의 명자리를 찌르고 빠지면서 희망적인 인물을 빚어놓았으니, 그것으로 그나마 진보적인 삶을 살았던 이들의 체면은 세워졌다.
“안 되는 애들은 역시 안 되더라구, 하는 걸 인정하기 싫을 뿐이다.
세상이 죄지, 이놈의 세상한테 한판 붙어야지, 그러지 않곤 참을 수가 없다.
” 중학교 선생 30년차인 봉순자씨의 넋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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