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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문화적 관용이 창조를 낳는다
[서평] 문화적 관용이 창조를 낳는다
  • 신현호/ 홍익대 강사
  • 승인 2002.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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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정보통신 혁명의 열풍이 불면서, 모든 도시의 정책 입안가들에게는 어떻게 기존의 낡은 도시를 첨단기술도시로 변모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 됐다.
각 도시는 하이테크 도시화 위원회를 결성하고, 위원회의 제안에 따라 정보통신 인프라를 갖추었다.
더불어 벤처캐피털의 결성을 장려하고, 스톡옵션을 포함한 다양한 보수체계에 대해 세제상 혜택을 주었다.
우리나라의 도시들도 마찬가지였다.
부산, 광주, 대구, 인천 등에서 미래형 첨단도시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출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피츠버그의 시민들한테, 라이코스의 등장은 열광할 만한 사건이었다.
전세계인을 사로잡은 획기적 검색엔진 라이코스는 피츠버그에 자리잡은 명문 카네기멜론대학을 요람으로 해 90년대 중반 인터넷 비즈니스의 기린아로 떠올랐다.
하지만 환호의 순간은 너무도 짧았다.
라이코스가 회사의 모든 사업부를 보스턴으로 옮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지역 경제개발을 오랫동안 연구해왔던 카네기멜론대학의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는 큰 충격을 받았다.
피츠버그는 기술, 설비, 인재가 넘치는 대학, 자금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기존의 이론으로 설명할 길이 없다고 판단한 플로리다는 현대의 하이테크 도시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들을 찾아나섰다.
먼저 플로리다 교수는 미국 안의 주요 하이테크 밀집지역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우연히, 그리고 운명적으로, 카네기멜론의 박사과정 학생인 개리 게이츠를 만났다.
게이츠는 당시 게이 인구의 지역적 주거 유형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그가 조사한 게이 밀집지역을 들여다보다가 플로리다는 깜짝 놀란다.
자신이 마련한 하이테크 밀집지역으로 오해할 만큼 너무도 유사했던 것이다.



창조적 계급은 생활방식이 다르다


이것을 단순한 우연으로 돌리지 않고, 플로리다와 게이츠는 통계적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도시의 게이인구의 비중(게이 인덱스)과 하이테크 성공도는 아주 밀접한 관련을 보여주었다.
그밖에도 배우-음악가-미술가-작가의 비중(보헤미안 인덱스)과 외국 태생 인구의 비중(외국생 인덱스)도 하이테크 성공도와 아주 밀접하게 나타났다.
전통적 이론에서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변수들이 기이할 정도로 하이테크 도시화와 관련돼 있다는 것을 발견한 플로리다는 여기에서 실마리를 풀게 된다.


이 책은 크게 두부분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그가 ‘창조적 계급’이라고 명명한 과학자, 엔지니어, 컴퓨터 프로그래머, 건축가, 디자이너, 예술가, 음악가 등의 엘리트 집단이 현대사회를 주도한다는 것이다.
물론 창조적 집단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플로리다가 처음은 아니다.
조엘 모키르나 폴 로머와 같이 현대의 저명한 경제학자들과 역사가들 역시 창조성과 경제발전에 대해 주목해왔다.
다니엘 벨 역시 수십년 전에 지식노동이 중요한 사회요소로 전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혁신가의 중요성을 강조한 조지프 슘페터도 포함시킬 수 있다.
플로리다는 이들의 연구를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자신의 이론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그의 책의 진가는 완전히 독창적인 두번째 파트에 있다.
이들 창조적 계급의 구성원들이 직장과 사회에서 과거와는 판이한 직업태도와 생활방식을 갖는다는 내용이다.
이들은 정시 출퇴근보다는 유연한 시간관리를 좋아하고, 짙은색 수트 대신에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고 싶어한다.
과거의 엘리트 미국인들과는 달리 유색인종과 여성을 자신의 동료로, 또는 직장의 상사로 받아들이는 것을 꺼리지도 않는다.
또 플로리다의 인터뷰에 응한 대학 졸업반의 엘리트들과 MBA 2년차 등 예비 인재들은 따분한 도시에 살면서 높은 임금을 받느니, 차라리 연봉이 다소 낮더라도 멋진 록 밴드의 공연을 볼 수 있기를 원했다.
그들은 색다를 분위기의 바에 들를 수 있고, 다양한 개성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멋진(hip) 도시에서 직장을 구하겠다고 응답했다.


플로리다에 따르면 이 모든 태도의 변화는, 무엇보다도 이들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창조성이 다양한 아이디어의 교환과 변화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성은 고인 물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무의식중에 터득한 이들 창조적 계급 구성원들은 직장과 지역의 문화를 바꿔놓고 있었다.
이들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이제 도시의 정책은 “기업을 유치하여 고용을 창출한다”는 낡은 생각을 버리고 “도시의 분위기를 바꿔 창조적 계급의 인재들을 유치하면, 기업은 따라서 들어온다”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제안은 “기술(Technology)과 재능(Talent)을 갖춘 인재들을 유치하려는 도시의 유력한 전략은 문화적 관용(Tolerance)을 배양하라”는 3T전략으로 요약된다.
그는 게이들이 살기에 가장 좋은 샌프란시스코 일대가 하이테크 산업기지로 발전하고, 게이에 대한 배척이 매우 심한 뉴욕주의 버팔로가 낙후하고 있는 것을 예로 든다.
이것은 게이들 가운데에서 특별히 과학자, 엔지니어 등 창조적 계급의 구성원들이 많아서라기보다는, 게이에 대한 관용적 태도 여부가 곧 다양성에 대한 도시의 수용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헤미안 인덱스와 외국생 인덱스 역시 마찬가지다.



획일화된 문화가 창조를 말살한다


플로리다도 인정하듯, 이 책은 완전히 무르익은 학문분야의 저술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발견과 가설, 그리고 설득력 있어 보이는 주장들을 소개하고 있고,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이 책은 미국에서 크게 성공해 아마존의 베스트셀러로 올랐고, 미국의 수많은 도시들은 플로리다를 초빙하여 도시개발에 관한 자문을 청했다.


책을 다 읽고, “우리는 어떤가” 하고 생각을 해봤다.
미국과 현실이 많이 다르니 만큼 직접 적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의 창조적 인재들은 새로운 문화에 목말라하면서도, 창조적 영감을 얻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의 교류를 원하면서도, 그것을 가로막는 강한 사회적 압력들에 짓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를테면 끈끈한 동창생 문화라든가 완고한 기성의 획일적 문화와 같은 것들 말이다.
모쪼록 하이테크 성공을 꾀하는 지방의 정책가들이 산업의 인프라, 세금 혜택과 보조금만으로 하이테크 기업 유치를 도모하기보다는 우리 도시의 관용도는 어떤지, 우리 도시의 문화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에까지 고민이 진전되기를 바란다.
그 고민의 해결에 이 책은 유익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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