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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정의로운 기업이 경쟁력 높다
[서평]정의로운 기업이 경쟁력 높다
  • 이현호 기자
  • 승인 2002.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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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 부패지수 순위가 늘 하위권을 맴돌고, 전직 대통령과 전현직 대통령의 아들들이 뇌물수수죄로 줄줄이 교도소를 드나드는 이 땅에서 과연 건전하고 공정한 활동을 통해 존경받는 기업이 존재할 수 있을까? 기업은 사회라는 큰 틀 안에서 자본주의적 경제생활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며 사회나 국가의 번영과 경제성장을 일궈낼 수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하지만 동시에 기업에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의무가 따라다닌다.
이는 기업의 가치 창출 활동이 사회의 지지 없이는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가 펴낸 '윤리경영이 경쟁력이다'는 단순히 눈앞의 이윤만을 좇기보다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바람직한 기업상이며, 이런 기업들이야말로 오히려 경쟁력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올 한해를 돌이켜 보면, 나라 안팎에서 어느 때보다 윤리경영이라는 단어가 입에 오르내렸음을 알 수 있다.
때마침 발간된 이 책에는 경제정의연구소가 1990년부터 해마다 ‘경제정의기업상’ 제도를 운영해오면서 차곡차곡 쌓인 사례들이 담겨 있다.
모두가 사회적 성과와 재무적 성과의 연관관계 유형들과 해결방법을 말해주는 것들이다.



경영진의 의지 절대적으로 필요


지난 90년 11월 동원F&B의 창업주인 김재철 회장은 동원산업의 주식 59만주를 장남에게 넘기면서 62억3800만원의 증여세를 자진 납세해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공식 절차를 거친 대규모 증여에 놀란 국세청이 주식 위장분산이 없는지 내사에 들어갔다.
모든 게 깨끗했다.
이에 국세청은 자진 신고에 따라 증여세 10% 감면 혜택을 줬다.
지금이나 당시나 재벌 기업 오너들이 재산 상속과정에서 세금을 덜 내기 위해 여러가지 편법을 동원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사무용 가구 전문 생산업체인 퍼시스의 손동창 회장은 기업을 공개하면서 개인 지분의 3%를 우리사주조합에 희사했다.
기업, 주주, 종업원, 소비자가 하나 돼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경영철학과 신념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런 모습은 기업주가 개인의 재산 증식보다는 회사의 실속있는 발전을 위해 적절한 재투자에 힘쓰고, 사원들은 그러한 회사를 믿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신뢰 관계가 형성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퍼시스는 지금도 투명경영, 투명경리로 정평이 나 있다.


한국인 귀에 가장 익숙한 ‘활명수’를 만드는 회사,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제조회사, 최초의 제약기업. 바로 동화약품 얘기다.
동화약품은 15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수명을 30년으로 추정하는 데 비하면, 한국 자본주의사보다 역사가 긴 것이다.
동화약품은 창사 이후 줄곧 전직원이 한가족이라는 정신을 견지해왔다.
이 회사는 경영자의 솔선수범 행동을 3대 문항으로 정리해 성문화할 정도다.
73년에는 오늘날 전문경영인과 비슷한 제도인 ‘지배인 제도’를 도입했고, 지난 78년에는 대기업도 엄두를 못 내는 생산직 직원의 완전월급제를 단행하는 등 선구자적 경영방식을 보여줬다.


실제로 회사를 이렇게 경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경쟁 기업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기업윤리 원칙에 매달린다는 것은 냉엄한 경쟁세계에서 아주 어렵고 위험천만한 일이다.
기업윤리 원칙을 지킨다고 해서 기업의 미래가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건 더욱 아니다.
이 점에서 경영진의 의지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분식회계 스캔들은 대부분의 기업이 이윤 추구만을 절대치로 삼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줬다.
현실은 기업의 자발적 의지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셈이다.
그러기에 기업윤리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감시라는 시스템이 항상 필요하다.
아울러 그 시스템 안에서 기업의 바람직한 경영사례가 경쟁기업의 타산지석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이 책에는 담겨 있다.



정도경영만이 기업의 미래 보장


경제정의연구소는 기업의 윤리경영이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세가지 분류기준이 모두 수용돼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기업의 건전성과 공정성이다.
기업주의 소유집중 정도, 경영의 전문화 현황, 공정거래 질서 준수를 뜻한다.
둘째, 기업의 경제발전 기여도다.
기업은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고 건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며, 창의력과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해 기술 혁신과 고용증대에 기여해야 한다.
셋째,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의무다.
기업은 노사화합, 복지증진, 산업공나 환경오염 개선, 사회복지·문화·지역사회 발전 등 사회공동체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의 뼈대를 이루는 ‘경제정의기업상’ 선정기준의 출발은 정부의 기업 관련 정보와 감사보고서, 언론 등의 공적 자료를 정량적으로 분석한 수치다.
이 수치를 바탕으로 전문가 설문과 기업평가위원회의 최종 결정 과정이 더해지면서 최대한의 객관성을 얻게 됐다.
단, 대상기업들은 건설업을 포함한 제조업으로 하되, 상장회사로 한정했다.
결국 이 상을 통해서 기업의 성과와 사회적 책임 수행 정도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존경받을 수 있는 기업’ 평가 모형을 창출한 것이다.


경제정의기업상을 수상한 업체 이외에는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정도 경영을 하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생각을 하는 경영자들은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며, 정도 경영이 기업의 미래를 보장해주는 생명보험이자 국제사회에서 탄탄한 경쟁력의 원천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책의 편집을 전담한 한양대 한홍렬 교수도 거듭 강조했다.
“기업의 이윤 추구와 사회적 책임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며, 정도 경영만이 기업의 미래를 보장하는 경쟁력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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