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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프로] 최재현 / 유저 인터페이스 전문가
[나는프로] 최재현 / 유저 인터페이스 전문가
  • 김윤지 기자
  • 승인 2002.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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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 전문회사인 유투시스템 최재현(38) 사장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연신 주변에 깔아놓은 기계들을 만지작거렸다.
“이 제품은 이렇게 손에 착 감기거든요. 움직이면서 한손으로도 쉽게 조작할 수 있고요. 이게 다 보이지 않는 경쟁력이에요.” 전자제품 가운데에는 비슷한 제품인 듯 보여도 좀더 손에 편하고, 한눈에 조작방법이 들어오는 제품이 있다.
반면 잡아보면 왠지 편치 않고 버튼을 몇개씩 눌러봐도 통 조작원리를 알기 어려운 제품도 있다.
최 사장은 그런 제품들이 좀더 인간과 편히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일을 하는 UI 전문가다.


UI는 이제까지 주로 디자인쪽에서 접근을 해왔다.
하지만 최 사장은 인간공학적 원리를 밑바탕에 두고 접근한다.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 물건을 쓰는지, 어떤 근육을 어떻게 움직이는 것을 편안하게 여기는지를 고려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머릿속과 몸 속을 들여다봐야 사람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인간공학을 연구하면서 최 사장은 많은 것을 배웠다.
수업 때에는 실제로 의대에 가서 해부학 강의를 듣기도 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사람의 움직임에 대한 이해가 쑥쑥 느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비슷한 동작도 뼈의 각도에 따라 편안함의 차이를 느끼고, 똑같은 크기의 물건을 보더라도 더 주목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 분야에서 연구성과는 어느 정도 있는데, 실제 제품에는 적용한 사례가 많지 않은 것이 안타까웠다.


최 사장은 인간공학을 바탕으로 삼성전자에서 10여년 동안 줄곧 UI를 연구했다.
냉장고, 전자레인지, 세탁기 등에서부터 휴대전화기, 프린터, 캠코더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보가전 제품들을 다뤘다.
전문가 시각에서 최 사장은 휴대전화의 천지인 입력방식을 인간공학 원리에 잘 맞춰 만든 성공작으로 꼽는다.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글자를 쓰는 원리를 그대로 기계로 구현해 사람들이 편안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버튼 하나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일본 휴대전화의 아이모드도 최 사장이 꼽는 성공작 가운데 하나다.



손에 착 감기는, 쓰기 편한 기계 만든다


최 사장 본인의 작품에선 업라이팅 방식의 캠코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소니 제품에 뒤지는 이유를 찾지 못해 8년이나 끙끙 대던 것을 최 사장이 해결해줬기 때문이다.
인간공학 원리에 맞춰 제품의 각도와 버튼 위치 등을 바꿔 다시 설계했는데, 이를 보고 유럽업계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 정도의 제품을 만들어낼 줄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인간공학을 적용한 제품이 드물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사실 이제까지 우리나라 제품엔 인간공학적 고려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다.
‘베끼기’에만 몰두하다 보니 자체적으로 그런 연구를 할 필요가 없기도 했다.
그런데 베끼는 게 더 문제였다.
베끼는 걸 그대로 베끼기라도 하면 별 탈이 없는 걸, 베끼면서 조금씩 변형하다 보니 그야말로 죽도 밥도 아니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원저작자가 다 생각을 해서 이 방향에 붙여놓은 버튼을 조금 바꾼다고 다른 쪽으로 붙여버리곤 해요. 그럼 처음에 고안된 편안함과 조화는 다 깨지고 조야한 유사품이 될 뿐이지요.”

최 사장은 특히 이 분야의 연구가 앞서 있는 소니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움직임을 잘 살펴야 한다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일관된 방식이 자리잡으면 그것을 바꾸기가 여간해선 어렵기 때문이다.
“윈도우를 한번 익히면 다른 운영체제를 쓰기 어렵지 않습니까? 가전제품도 똑같아요.” 소프트웨어에서 앞선 마이크로소프트의 방식이 디지털 가전에도 옮겨지면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란 이야기였다.
최 사장은 이에 맞설 방법을 빨리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공학이라는 관점에서 유저 인터페이스를 개발시켜야 하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최 사장은 1차산업에 속한 농기구나 산업용기기 가운데 도전할 게 가장 많다고 꼽는다.
디지털화가 점점 진전되면 이런 기구들에도 정보기술이 접목될텐데, 그렇게 되면 현재 사용자들이 너무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주 사용층인 노인과 저학력층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제품들이 나와야 한다는 게 최 사장의 생각이다.
또 장난감도 도전분야 가운데 하나다.
아직까지는 정보기술을 접목한 장난감들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어린이들의 눈에 알맞는 새로운 방법들을 고안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까다로운 리모트 콘트롤도 여전히 남아있다.
리모트 콘트롤은 고도의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탓에 좀처럼 발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요즘 최 사장의 관심을 끄는 분야는 홈네트워크쪽이다.
그는 조만간 이 분야에서 히트작이 나와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홈네크워크는 첨단제품들을 하나로 연결해 복잡한 가정 일을 한번에 해낼 수 있도록 해주지만, 가정주부들이 조작하는 것을 무서워해 막상 보급이 늦어지고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제품이라도 50대 아줌마가 사용에 불편함을 느끼면 무용지물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정말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만 하는 분야죠.” 인간이 기계에 몸을 맞추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 딱 맞는 기계를 만드는 일, 그것은 세상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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