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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신용불량자 걸려들기만 해라?
[비즈니스] 신용불량자 걸려들기만 해라?
  • 이현호 기자
  • 승인 2002.12.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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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불량자가 250만명을 넘어선 것은 은행들의 신용평가 시스템이 부실해서 그렇다.
금감원이 나서서 부채비율 250%를 기준으로 가산금리를 매기게 한 것도 은행들이 제대로 된 신용평가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탓이다.
심지어 은행들의 신용평가 능력이 할부금융사나 신용카드사보다도 월등히 뒤떨어진다.
” 아직도 이런 말을 하는 금융 전문가가 있다면 분위기 파악을 한참 못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내년부터는 고객들의 재산, 소득, 납세, 의료보험 내역 등 개인의 모든 신용정보가 은행연합회로 집중된다.
은행들이 기존의 개인 신용정보를 지금보다는 더욱 소상히 관리하기 위해 신용평가 시스템을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난다.
개개인이 자신의 신용정보 관리에 힘쓰지 않으면 자칫 신용불량자로 ‘낙인’ 찍히는 위기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은행들은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가계대출을 새로운 사업처럼 확장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1월 중 금융동향을 보면, 은행의 가계대출이 59조2800억원으로 기업대출 41조20029억원에 비해 월등히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은행권이 신용평가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무분별한 가계대출을 시작하면서 신용불량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는 사정이 달라질 전망이다.
은행들이 신용평가 시스템쪽으로 눈을 돌리며 부실 위험을 줄이려고 발벗고 나섰기 때문이다.



국민은행 소호 전용 평가 시스템 눈길


우선 국민은행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부터 부실채권을 줄이기 위한 신용평가 시스템 개발에 힘썼다.
최근에 국내 은행권으로는 처음으로 소호(Small Office Home Offic) 신용도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소호전용 신용평가 시스템’ 개발에 성공했다.
소호 전용 신용평가 시스템은 기존의 퍼스널뱅킹(PB)과 함께 앞으로 금융권이 경쟁적으로 구축에 들어갈 틈새시장의 실마리다.
국민은행은 12월15일부터 소호 고객을 대상으로 전국 307개점에 ‘SOHO금융팀’을 배치하는 등 전국 1020개 영업점에서 본격적으로 소호 마케팅에 들어갔다.
특히 SOHO금융팀은 점포장이 아닌 본점 직속의 조직으로 독자적 영업활동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 것이 특이할 만하다.


그렇다면 소호 전용 신용평가 시스템이 왜 주목받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소호 전용 신용평가 시스템이 은행들의 담보대출 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계기가 될 것으로 분석한다.
국민은행을 포함해 대다수 은행들은 고객을 크게 6가지로 나눈다.
대기업, 중소기업, 소호, 퍼스널뱅킹(PB), 중산층, 소시민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서 주목받는 것이 바로 퍼스널뱅킹(PB)과 소호 고객이다.
향후 은행권의 가장 큰 고객으로 자리잡을 것이란 목소리가 높은 탓이다.
소호 전용 신용평가 시스템이 중요한 것도 이때문이다.
앞으로 소호 고객은 현재처럼 구먹구구식 담보대출 관행이 아니라, 제대로 된 신용평가를 통해 신속한 대출서비스를 받게 된다.
은행 입장에는 부실채권의 위험을 줄이고, 고객 입장에서는 담보가 없어 못 받은 대출을 신용도로 받는 효과가 있다.


국민은행 정훈모 소호TFT 통합팀장은 “소호 고객의 범위는 매출액 20억원 이하의 자영업자와 매출액 20억원, 여신금 5억원 이하의 소규모 법인 고객으로 한정했다”며 “이들을 위한 전담조직 운영과 차별화된 마케팅 프로그램을 운영해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국민은행측은 앞으로 기존의 기업금융전담전표(RM)와 우량고객을 집중 전담하는 퍼스널뱅킹 등의 특화된 채널과 SOHO금융팀을 전략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SK·KTF 등 대기업도 눈독


여기에 신용정보회사들도 신용평가 시스템에 뛰어들었다.
한국정보통신의 자회사인 한국정보거래소(KIX)도 자영업자를 주타깃으로 한 소호시장에 신용카드 매출자료를 기반으로 신용정보 제공업을 업계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 회사는 신용정보 제공뿐만 아니라 신용평가 시스템도 이미 구축해놓은 상태다.
한국정보거래소가 제공하는 데이터는 가맹점의 매출정보와 업종, 업력, 지역 등의 비재무적 항목들과 현금유동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신용정보다.
한국정보거래소는 이 데이터를 제공하고 받는 수수료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지난 한해 동안 카드조회 수는 모두 6억건으로, 한건당 수수료를 100원으로 계산하면 600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현재 240만개인 가맹점이 500만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여 매출액도 더 늘어날 수 있다.
때문에 신용정보회사들이 너무나도 할 것 없이 덤벼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정보거래소 진홍석 IP본부장은 “한국정보통신이 확보한 전국 184개 대리점과 90만개의 가맹점에 대해 독점적 경영상태 분석이 가능하다”며 “대다수 시중은행이 주요 고객으로 사업전망이 아주 밝다”며 자신있게 말했다.


이뿐이 아니다.
심지어는 데이터 마케팅팀을 독자적으로 갖춘 SK와 KTF 등의 대기업도 이 사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종류의 데이터는 일반 기업의 마케팅 정보로도 쓰일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예컨대 개별 고객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면, 그 어떤 마케팅 자료보다도 월등하게 뛰어난 정보가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도 12월16일 가계대출 심사자의 주관적 판단을 방지하고 부실 가능성까지 자동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개인신용평가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발표하고 나섰다.


물론 신용평가 시스템이 어디서나 만능으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개개인의 신용정보가 오·남용될 경우, 자칫 개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은행들과 신용정보회사들이 경쟁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면 개인 신용정보가 동의 없이 유용되는 사례가 많아질 수도 있다”며 “신용관리 담당자들의 도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나친 경쟁이 무분별한 서비스 전략을 만들고, 그렇게 되면 업체들이 살아남기 위해 자칫하면 도덕적 해이로 이어져 개개인에게 커다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도 신용정보시장은 앞으로 유망산업으로 떠오를 게 분명하다.
가계대출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개인의 신용정보 조회건수가 급증하고, 기업들이 신규고객 확보를 위해 사전에 신용상태 점검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신용정보가 올해 10월까지 신용조회와 채권추심 부문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6% 늘어난 343억의 영업수익을 올린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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