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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새해 채용한파 더 거세진다
[커리어] 새해 채용한파 더 거세진다
  • 황보연 기자
  • 승인 2002.12.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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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2월 졸업예정잔데요. 지난 9월부터 구직전쟁에 뛰어들었어요. 이미 제출한 이력서는 100개를 넘겼구요. 그 중에서 7개 기업에서 서류전형에 합격했고 6곳은 1차면접에서 떨어졌습니다.
나머지 한군데는 좀 있으면 2차면접을 보기로 했어요. 물론 중소기업이지만요. 자꾸 취업이 안 되는 게 비인기학과에 속하는 전공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인지, 면접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인지 정말 괴롭습니다.
내년엔 취직할 수 있을까요?”

어느 취업 사이트 게시판에는 이런 글이 올라와 있다.
이 구직자는 자신의 전공과 학점, 토익점수에다 지금까지 서류전형에서 합격한 회사이름까지 낱낱이 공개했다.
답답한 심정에 공개상담을 요청한 셈이다.
이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발가벗고 드러낼 만큼 취업은 절실한 문제가 됐다.
연말에 남아 있는 마지막 채용기회를 잡지 못하면 사태는 더 심각해진다.
구직자들은 나이를 한살 더 먹기 때문에 취업문은 그만큼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새해가 오면 구직자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필 수 있을까.


상당수 기업 신규채용 계획 미정


뚜껑을 열어보면 웃음꽃이 피기 힘들 것 같다는 관측이 높다.
우선 채용정보업체 리크루트가 지난 11월29일 매출액 순위 200대 기업 가운데 100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를 봐도 그렇다.
조사에 따르면 내년에 채용계획이 있다고 밝힌 기업은 64개였으며, 채용규모는 1만1553명에 이른다.
취업한파가 거셌다는 올해 채용인원 1만1952명에 비해서도 3.3%나 줄어든 것이다.
나머지 34개 기업은 채용계획이 아직 잡혀 있지 않다고 대답했으며, 2개 기업은 아예 채용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업종별로 보면 올해 채용을 가장 많이 한 유통쪽에선 내년에도 3830명을 채용한다.
신규점포가 계속 문을 열기 때문에 다른 업종에 비해 채용이 꾸준한 편이다.
물론 기업에 따라 채용 증감이 다소 다르기는 하다.
예컨대 현대백화점은 올해 600명 정도를 채용했지만 내년에는 500명 정도로 줄일 예정이라고 한다.
내수가 위축되면서 채용규모를 보수적으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공격적으로 점포를 확장하고 있는 롯데쇼핑은 올해 1300명보다 200명을 늘려 내년에는 1500명의 채용을 계획하고 있다.


전기·전자업종은 첨단 디지털 가전제품의 수출호전으로 올해 채용규모를 엇비슷하게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2천명), LG산전(120명), 삼성코닝정밀유리(130명) 등이 올해 수준으로 채용을 이어간다.
다만 대우전자는 올해 300명을 채용했지만 내년에는 250명으로 줄여잡고 있는 등 전기·전자기업의 총 채용규모는 1.8%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IT업종은 올해 2029명에 비해 훨씬 줄어든 1800명에 머물렀다.
올해 수준으로 채용규모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기업은 삼성SDS(500명), 현대정보기술(300명), SK텔레콤(200명), 두루넷(15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올해 500명을 채용한 롯데정보통신은 내년에는 100명 정도만 채용할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부문에선 아직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어 내년 신규 채용 규모는 올해보다 줄어들 것이 확실하다.
때문인지 현재 100명을 채용할 예정이라고 밝힌 조흥은행 외에 대부분의 은해은 아직 채용계획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구인구직포털 사이트 잡코리아 www.jobkorea.co.kr가 10대 그룹의 100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내년 채용전망은 그리 밝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결과를 들여다보면 올해 채용에서 강세를 보인 유통업종마저 내년에는 다소 움츠러들 것으로 예측된다.
LG홈쇼핑이나 현대백화점 등이 올해보다 채용규모가 축소될 것이라고 대답했고, 신세계는 경기를 보면서 추후 채용계획을 결정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IT쪽도 올해에 비해 보수적으로 채용규모를 잡고 있는데다, 쌍용정보통신, 세원텔레콤 등은 내년 상반기에 실시할 채용을 올 하반기로 미리 앞당겨 실시했다.


그나마 자동차쪽은 채용전망이 다소 맑을 것으로 보인다.
쌍용자동차가 내년 상반기에 140명 정도 채용을 예정하고 있고 현대모비스도 1월께 채용계획을 밝힐 예정이다.
GM대우차 역시 구체적 규모는 밝히지 않았지만 올해보다는 채용을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식음료, 전기·전자쪽도 대체로 올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채용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잡코리아는 이번 조사에서 채용계획이 미정인 업체들의 경우도 올해와 비교할 때 증가 또는 감소할 것인지를 물어 이같은 전망을 내놨다.



유통·전기·전자 올해와 엇비슷


이처럼 기업들은 전반적으로 내년 채용규모를 다소 줄일 것으로 보인다.
체감경기가 갈수록 나빠지면서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확대하기보다는 몸을 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 경제전망조사’ 결과를 보면 이런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최고경영자의 97%는 내년 경제성장률이 올해 전망치(6.2%)보다 ‘낮을 것’이라고 응답해 내년 경기가 올해보다 가라앉을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의 경제상황에 대해서도 49%는 ‘경기침체 가능성이 높다’고 봤고 8.0%는 이미 ‘침체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 투자계획을 묻는 질문에서 54%가 ‘올해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보고 있고, 21%는 ‘축소하겠다’고 응답했다.


또한 상당수 기업들이 채용계획을 정하지 않았거나 발표를 꺼리고 있다는 것도 구직자들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로 꼽힌다.
잡코리아 변지성 대리는 “대체로 12월에 내년 상반기 채용계획이 확정되는데 올해는 경기가 불안정하고 대선 등 정치적 변수까지 겹쳐서 구체적 계획을 잡지 않은 기업들이 많다”고 말한다.
또 다른 채용사이트 인쿠르트 www.incruit.com 조성란 대리도 비슷한 이유로 “애초 예상보다 내년 채용계획 조사에서 훨씬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한다.
기업들이 경기변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신규 인력 채용 계획을 섣불리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정일 수석연구원은 “내년 국내외 경기에 대한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야 채용계획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한다.


이런저런 분위기를 의식해선지 구직자들의 내년 취업전망도 어둡기만 하다.
얼마 전에 올해 마지막 면접을 보고 왔다는 구직자 김성연(29·가명)씨는 “이번에도 안 되면 내년엔 정말 취직할 자신이 없다”고 털어놓는다.
실제 구인구직 사이트 잡링크 www.joblink.co.kr가 구직자 25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71%가 ‘내년 상반기에 취업난이 심각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취업난이 풀릴 것 같다’는 답변은 12%에 그쳤다.
언제쯤 취업이 가능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도 36%의 구직자가 7~12개월은 걸릴 것이라고 답했다.
구직기간이 상당히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하는 셈이다.


사실 올 하반기에 들어서기 전만해도 채용시장에선 장밋빛 전망들이 무성했다.
하지만 결과는 구직자들의 기대에 훨씬 못미치는 취업전쟁으로 끝나고 말았다.
한국노동연구원 안주엽 동향분석실장은 “비관적 경기 전망이 기업 신규 채용의 보수적 태도로 연결돼 새롭게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층 신규 졸업자가 최대 피해자가 됐다”고 지적한다.
또한 안 실장은 “올해 실업률이 2%대까지 하락했지만 임시직과 일용직 비중이 늘어나 고용의 질이 악화됐고 청년층의 실업이 구조적 문제로 자리잡혀 있다는 게 문제”라고 덧붙인다.



IT업종 ‘꽁꽁’ 자동차 ‘다소 맑음’


신규 채용을 꺼리는 대기업들의 인재확보 전략 변화도 채용시장을 움츠러들게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LG경제연구원 인사조직그룹 최병권 연구원은 내년에도 신규 채용시장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본다.
“올해 가장 큰 화두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였죠. 물론 인재육성을 강조하긴 했지만 올해까지만 해도 핵심인재는 외부에서 확보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글로벌 채용이 늘어난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런데 내년에도 기업여건으로 볼 때 신규 채용 규모는 줄이고 내부에서 인재를 육성하는 쪽에 집중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어찌됐든 신규 취업자에게는 유리할 게 없죠.”

채용규모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구직자들도 맞춤형 구직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삼성경제연구소 공선표 상무는 “기업들이 예전처럼 대규모로 뽑아놓고 부서별로 배치하던 전통적 채용방식을 벗어나 필요로 하는 해당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뽑는 일에 치중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대한상의가 220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35.7%가 핵심 인재상으로 ‘전문적 업무능력과 열정’을 꼽았다.
학벌이 이전처럼 채용과정에서 더이상 첫번째 평가요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막연하게 어떤 기업을 선호하기보다는 자신이 어떤 업무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 취업으로 가는 지름길이란 이야기다.


이와함께 기업들이 점차 자신들의 고유한 가치나 경영이념 등에 부합되는 인재를 골라 선발하는 일에도 주력할 것이라는 관측도 주의깊게 들어볼 만하다.
이미 올해부터 이런 경향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눈에 띄게 늘었다.
예컨대 CJ가 6대 가치를 기준으로 삼아 비즈니스 상황에서의 가치판단을 평가하는 등 신채용방식을 도입한 게 대표적이다.
아무리 직무수행능력이 뛰어나도 기업이 원하는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최종적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따라서 초기에 지원하려고 하는 기업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앞서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선표 상무는 “무조건 대기업 인기직종만을 선호하기보다는 중소기업에 취업해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뒤 단계적으로 취업목표를 높이는 전략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조언한다.
채용시장에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내년에도 재현될 수 있는만큼 현실적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올해 일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이라면 내년엔 좀더 치밀한 취업전략으로 승부수를 던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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