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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손자병법에서 건진 경영전략
[서평] 손자병법에서 건진 경영전략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2.12.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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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체인 ‘반스앤노블’은 미국 전역의 소규모 동네 책방을 줄도산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전국적으로 체인망을 갖춘 이 거대 기업에 똑같은 방법으로 대항하려 한다면 그건 아마도 엄청난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는 일일 게다.
동네 책방 수준에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마냥 무방비 상태로 있다간 물량공세에 꼼짝없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헌데 이런 절체절명 위기의 상황에서 살아남은 책방이 하나 있다.
틈새시장을 노린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파월’이 그 주인공. 파월은 반스앤노블의 일반 매장이 보유하고 있는 서적의 종류보다 오히려 3배나 많은 20만종의 책을 한군데 모으고, 거기에 또 30만종의 헌책을 추가했다.
새책과 헌책을 한데 모아 웬만한 주제의 웬만한 책은 모두 찾아볼 수 있게끔 했다.


이러한 틈새시장 전략은 '손자병법' 허실(虛實)편의 지혜와 서로 통하는 점이 많다.
손자는 상대방의 ‘허’를 간파해 찌름으로써 압도적 우위에 있는 대군도 손쉽게 격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강한 적도 힘이 무한할 수는 없다.


지난 몇년간 히트를 쳤던 기업 중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곳들을 보면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기존 경쟁자와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고 아무도 없는 곳,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비즈니스 컨셉트로 과감하게 들어갔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더 빨리, 더 잘, 더 싸게’ 하는 경쟁에서 발을 빼고 고객에게 완전히 새로운 가치를 제시한 것이다.



다양한 비즈니스 사례로 현실감 살려


아마존과 이베이가 그렇고, 경쟁자들이 포진하고 있지 않은 시골지역을 공략한 월마트, 메이저 호텔 체인들과 직접 경쟁을 피하고 사람들이 많이 여행하는 주요 고속도로 근처를 공략한 홀리데이인 체인, 뉴스의 CNN, 음악의 MTV가 그렇다.
이것은 또한 '손자병법' 모공(謨攻)편에서 읽어낼 수 있는 지혜이기도 하다.
손자는 백번의 전투에서 백번 모두 승리하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진정한 최고의 기술로 친다.


‘세계에서 가장 쿨(cool)한 교수’가 되고 싶어하는 저자는 전통 병법서 '손자병법' 13편의 내용을 현대 기업의 다양한 비즈니스 사례와 엮어 거침없이 풀어나간다.
때로 일본의 전설적 사무라이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를 인용하고,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군사전략가 리델 하트의 '전략'을 동원하기도 한다.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건너간 저자가 올 1월10일부터 10월31일까지 대학원생들과 진행한 온라인 강의 내용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이 책은 무엇보다 그 생생함이 특징이다.


매강의 말미에 16명의 제자들이 달아놓은 ‘리플’과 이들이 주고받는 솔직한 대화는 딱딱해지기 쉬운 논의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신세대의 온라인 문법을 완전히 체화한 저자의 섬세한 감각과 톡톡 튀는 번역이 곳곳에서 빛난다.
저자는 허실편의 한구절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군대 배열 노하우의 극치에 도달하면 상대방이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우리를 숨길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적의 스파이가 침투하더라도 능히 엿볼 수 없고, 아무리 똑똑한 적장이라도 우리를 상대로 계획을 짤 수가 없다.


이 책은 ‘경영학’에 대한 일반인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준다.
오늘날 ‘경영’은 CEO(최고경영자)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승진을 위해서든 독립을 위해서든 경영의 원리와 방법을 익히는 것이 성공의 필수 코스가 된 지 오래다.
많은 이들이 경영의 핵심 비법과 최신 트렌드를 듣기 위해 애태우지만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시대에 뒤떨어진 지루한 원론이나 생경한 외국 사례의 나열이기 쉽상이다.
각각의 주장이 어떤 절실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으며, 그것이 ‘오늘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정작 알려주는 곳이 많지 않다.


저자가 진행한 온라인 강의에서는 대학원 경영전략 과정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 제자들이 함께 참여해 현실에서 느끼는 그들의 고민을 들려준다.
그들은 대기업 경제연구소, 컨설팅 회사, 외국계 은행, 대기업 해외지사, 보험사 등 자신들의 일터에서 ‘경영학’과 현실의 접점을 찾아가고 있다.
실제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기업 핵심 경영진의 경험과는 여전히 상당한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경영학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임은 분명하다.



이윤은 목적 아니라 부수입이다


'손자병법'을 기업 경영에 적용하는 것은 이미 세계적 유행이다.
미국과 일본쪽의 적지 않은 책이 번역돼 우리에게도 소개됐다.
왜 다시 '손자병법'인가? 한정된 자원을 갖고 가장 효율적으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전쟁과 기업 경영은 분명 공통점이 많다.
기업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단계적 성장보다는 단기간에 승부를 보는 전광석화 같은 스피드가 중시되면서 경영은 점점 더 전쟁을 닮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경영 노하우를 역사 속에서 검증된 전통 병법서에서 구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저자는 '손자병법'에서 진짜 눈을 부릅뜨고 찾아내야 할 것은 경쟁자를 꺾을 수 있는 그 어떤 비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손자는 '손자병법'의 첫머리에서 전쟁의 승패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도’(道)를 꼽는다.
저자는 ‘도’란 “우리가 미션이라고 가끔 얘기하는 부분인 듯하다.
즉, 어느 쪽의 목적이 도덕적으로 더 건전한가(명분이 있는가)에 따라서 파이팅 스피릿(fighting spirit)을 더 높일 수 있고, 커미트먼트도 더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해석한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볼 때 우리 회사는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먼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이러한 미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전무하다.
돈 벌기 위해 남이 하는 것을 그저 따라할 뿐이다.


저자는 단순한 이윤추구 외에 뭔가 더 의미있는 목적, 가치, 철학을 지닐 때만 그 기업이 오랫동안 생존하며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이윤은 미션을 성공적으로 달성한 결과 얻는 것이지 주된 목표는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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