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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전자개표기, 대선 최대 수혜자
[비즈니스] 전자개표기, 대선 최대 수혜자
  • 류현기 기자
  • 승인 2003.01.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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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는 시간 싸움이다.
후보들에게뿐만 아니라 선거관리위원회 입장에서도 시간 싸움이다.
특히나 이번 대선처럼 2% 안팎에서 당선자가 결정되는 상황에서는 얼마나 빨리 개표하느냐가 후보자나 국민에게 모두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자개표기는 박빙으로 이어진 ‘16대 대선’이라는 화려한 쇼에 사용된 훌륭한 소도구였다.
이번 대선은 242개구 시, 군, 선관위 개표소에 적게는 2대에서 많게는 11대까지 모두 960대의 전자개표기가 동원됐다.
덕분에 시간은 크게 줄었다.
수작업으로 진행된 지난 1997년 대선에서는 전국 303개 개표소에서 개표가 완료되는 데 평균 7시간30분이 걸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저녁 9시께 개표율이 50%를 넘어섰고, 자정 이전에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 확정됐다.


전자개표기를 공급한 회사는 SK C&C다.
SK C&C는 90년 초에 SK가 설립한 시스템통합(SI) 전문회사다.
당시에는 생소한 분야여서 매년 100% 안팎으로 매출이 늘었다.
SK C&C가 그동안 벌여온 사업을 보면 굵직굵직한 것이 적지 않다.
서울시 내부순환도로 지능형교통시스템(ITS) 구축과 국회도서관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수원시 도시정보시스템 구축 등이 모두 목록에 들어 있다.
한편으로는 매출에서 정부 정보통신(IT) 관련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업계에서는 SK C&C가 참여하고 있는 정부 IT 관련 사업이 10여개가 넘는 점 때문에 이번 전자개표기사업을 낙찰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수표·지로용지 분류용 판독기 응용


애초 전자개표기입찰에는 청호컴넷과 SK C&C 두곳이 참여했다.
하지만 SK C&C가 정부쪽이 제시한 최종가격을 받아들여 전자개표기 공급업체로 낙찰됐다.
원래 전자개표기 낙찰가격은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와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의 평균가를 해당 업체에 제시해 결정된다.
최초에 SK C&C가 제시한 낙찰가는 100억원 정도였다.
하지만 함께 입찰에 참여한 청호컴넷이 60억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을 제시하는 바람에 최종 낙찰가는 76억8천만원으로 결정됐다.


이번 전자개표기 제작에는 SK C&C 이외에도 한틀시스템, 바른정보, 인지소프트 등이 하청업체 형식으로 참여했다.
한틀시스템은 원래 전자개표기 시스템의 원조격인 은행 수표 판독기를 개발했다.
바른정보는 개표기와 컴퓨터의 상호 연결 시스템인 인터페이스부문에 참여했다.
인지소프트는 투표용지를 인식해 각 후보자들의 표를 분류하는 부문에 기술을 제공했다.


전자개표기는 제어용 컴퓨터와 개표기로 구성된다.
개표 종사원이 투표지를 모아 장착함에 넣으면 개표기는 투표지를 한장씩 보낸다.
개표기는 스캐너를 통해 광학문자판독장치(OCR) 방식으로 투표용지에 적힌 문자와 기표인을 자동인식한다.
인식된 투표용지는 득표자별로 자동분류된다.
이렇게 선거구별로 집계된 후보자별 득표상황은 선관위의 중앙서버로 전송되고, 선관위 중앙서버는 각 선거구별 개표결과를 방송국으로 전송한다.
전자개표기는 분당 220장 정도의 투표용지를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전자개표기에 쓰인 기술은 원래 금융기관에서 수표나 지로용지를 분류하는 데 쓰인다.
금융기관들이 서로 다른 은행들의 수표를 분류할 때 전자개표기 원리를 사용해온 것이다.
이번에 SK C&C가 이를 선거용으로 응용개발한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전자개표기를 6·13지방선거에서 50억원을 들여 최초로 사용했다.


전자개표기 기능이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워낙 준비를 철저하게 했기 때문에 서너 군데 작은 문제를 제외하면 1천대 가까운 기계가 별 문제없이 작동했다고 한다.
선관위는 스캐닝 시스템이 빛에 민감하다는 이유로 사진기자들이 플래시를 사용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기기 주변에는 먼지제거기를 비치하고 기기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수리했다.
SK C&C 김철균 과장은 최근 한나라당이 제기하는 개표부정에 대해 “전자개표기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시스템”이라고 일축한다.


이번 대선에서 전자개표기 최대 수혜자는 선관위라고 할 수 있다.
선관위는 인원과 비용에서 50% 이상의 비용을 절감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선거 때마다 공무원과 교사들을 개표원으로 차출하다 보니 이들의 거부감도 꽤 높았다.
하지만 이런 불만도 많이 줄었다.
선관위는 80억원에 이르는 전자개표기의 구입비용을 뺀다 하더라도 결국 남는 장사를 했다고 자평한다.



전자개표기 덕분 선관위 인력·비용 절감


실제로도 수작업으로 진행된 지난 97년 대선과 비교하면 인력면으로나 비용면으로나 훨씬 경제적이고 돈 안 드는 개표였다.
개표가 2시간 이상 빨리 끝났을 뿐만 아니라 개표사무원 수도 지난 대선의 2만8359명에서 1만3528명으로 52.3%나 줄었다.
또한 이전 같으면 개표 사무원에게 이틀치 수당을 지급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루치 수당만 제공해도 됐다.
한사람에게 최소 10만, 20만원 정도 수당을 지급하는 것을 고려하면 대략 15억~20억원의 인건비가 절약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총선을 한차례 더 치르면 전자개표기 도입에 든 비용은 충분히 뽑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막상 개표기를 공급한 SK C&C쪽에서는 운영과 유지에 들어간 비용에 비해 낙찰가가 너무 낮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SK 관계자는 “5억원 이상의 적자가 생겼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번처럼 박빙의 승부로 진행된 대선을 통한 홍보효과와 ‘관공서 프로젝트 수주’ 같은 부수적 효과를 생각하면 엄살로 느껴진다.


실제로 전자개표기 효과가 알려지면서 일부 동남아 국가에서 주문을 의뢰하고 있다고 회사 관계자는 전한다.
예컨대 인도네시아 정부는 현재 SK C&C쪽과 80억~100억에 이르는 기계 수입과 관련해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정당투표를 하고 정당 수만 해도 200개가 넘습니다.
인구가 많을 뿐만 아니라 정당이 많은 이런 동남아 국가들은 특히 전자개표기가 필요합니다.


차기 대통령은 이미 결정됐다.
하지만 전자제어기는 다음 총선을 기다리고 있다.
아울러 전자개표기 공급업체들은 한발 앞서 전자투표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선거는 끝났지만 전자투표와 개표시스템 기술은 아직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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