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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최고 인재만 국민은행으로 오라
[비즈니스] 최고 인재만 국민은행으로 오라
  • 황보연 기자
  • 승인 2003.01.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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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을 전공한 정상철(26)씨는 얼마 전 국민은행의 취업문을 통과했다.
오는 2월 졸업을 앞둔 그는 같이 취업준비를 해온 학과 동기들로부터 한껏 부러움을 샀다.
단순히 어려운 취업에 골인한 것 때문만은 아니다.
신입사원 100명 모두를 4년뒤 MBA에 보내주겠다고 공언한 바로 그 ‘국민은행’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경영학이 전공인 정씨의 학과 동기들 중에서도 입사지원서를 낸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업계 선두를 달리는 은행인 만큼 애초부터 지원자가 많기도 했지만, ‘MBA’라는 파격적 조건이 붙자 인기가 더욱 치솟았던 것이다.


지난해 7월 국민은행 김정태 행장이 처음 ‘MBA’ 조건을 내걸었을 때만 해도 정씨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설마 진짜일까 싶었죠. 워낙 기업들이 발표만 하고 안 하는 것들도 많잖아요. 그런데 11월에 본격 채용공고가 나면서 여전히 똑같은 조건이 붙자 너도나도 지원서를 썼어요.”


토익 만점자·전문자격증 소유자 등 인재 몰려


국민은행이 내건 ‘파격적’ 채용조건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100명의 신입행원들은 4년 동안 업무를 익힌 뒤 퇴사하고 MBA 과정에 등록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물론 지원대상 학교가 제한돼 있긴 하다.
미국지역은 입학허가시점에서 <유에스뉴스앤월드리포트> 발표 상위 20위권 이내의 비즈니스 스쿨로부터 입학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다른 지역은 입학허가 시점에서 <파이낸셜타임스> 발표 상위 20위권내의 비즈니스 스쿨이어야 한다.


MBA를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은 별도의 채용절차를 거쳐 재입사가 가능하다.
물론 더 좋은 직장을 찾아가는 것은 자유다.
이번 국민은행의 사례가 전례없는 ‘실험’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기업들이 핵심 인재들을 선발해 MBA를 보내주고 있지만 대부분은 돌아와서 의무적으로 일하는 기간이 설정돼 있다.
아니면 지원해준 학비를 기업에 물어줘야 한다.


하지만 국민은행은 예컨대 국내외 유수한 은행들에 인재를 빼앗겨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생각이란다.
도대체 다시 돌아와 일한다는 약속도 없이 직원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려는 이유가 뭘까. 국민은행 인사팀 강용희 차장은 “돌아오지 않더라도 우리 은행이 우수한 인재를 키워냈다는 사실이 없어지진 않죠. 훗날 좀더 성장해 있는 그 인재를 다시 스카우트하는 데도 유리하지 않겠어요”라고 되묻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부적으론 90% 이상이 돌아올 것으로 믿고 있다.
국민은행이 국내 선두를 지키고 있는 한, 직원들이 굳이 다른 곳에 갈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결국 톱뱅크만이 할 수 있는 ‘실험’이라는 이야기다.


조건이 파격적이다 보니 채용절차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MBA에 공짜로 보내줘도 하나 아깝지 않을 만한 인재를 뽑으려다 보니 당연한 일이다.
먼저 지원자격은 평균 B학점 이상, 토익 860점 이상의 점수를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2002년 8월 대학졸업자와 2003년 2월 대학졸업예정자로 제한했다.
취업 재수생들을 정중히 돌려보낸 것은 물론이고 석사학위를 소지해서도 안 된다.
그야말로 갓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할 새내기들만 지원이 가능했다.
사회생활 초기부터 국민은행이 확실하게 인재로 길러내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이처럼 지원자격이 제한적이다 보니 실제 경쟁률은 몇백 대 일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고작’ 30 대 1에 머물렀다.


면접과정도 이전보다 몰라보게 강화됐다.
한차례로 끝나는 것이 보통이던 면접이 1박2일의 합숙면접을 포함해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특히 1차 합숙면접에선 이름과 학교, 출신지 등 지원자의 주요 이력사항을 가린 채 이루어지는 블라인드 인터뷰(Blind Interview)를 도입했다.
지원자들의 역량을 선입견없이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임원보다는 실무 부서장들을 면접에 투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인터뷰에서 면접자의 주관은 철저히 배제하도록 했다.
강용희 차장은 “20명의 면접관이 채용 전문가로부터 별도의 코치를 받는 등 최대한 객관적 채용기준을 공유하도록 훈련받아왔다”고 전한다.
서류전형 과정을 채용 전문업체에 맡긴 것도 인사청탁을 없애고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서였다.
아울러 우수한 인재일수록 개인주의가 만연할 수 있다고 판단해 2차면접에선 지원자의 리더십이나 팀워크, 가치관 등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걸러냈다.



이직률 높을 때 핵심인재 잡아둬라


국민은행의 새로운 채용실험은 ‘핵심인재’가 향후 기업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최근 몇년간 이런 분위기는 꾸준히 확산되고 있다.
김정태 행장은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 이후 이런 부분에 각별한 신경을 써왔다.
무한경쟁의 금융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차별화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신입 행원뿐 아니라 기존 행원들 중에서도 4년 이상의 경력자 중에서 상위 20위권내 대학의 입학허가서만 받아오면 MBA를 보내고 있다.
금융관련 국내외 40여개 자격증 취득을 지원하기 위해 최고 200만원의 연수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도 최근에 나타난 모습이다.
이런 노력을 기울인 탓인지 현재 은행내 2만6천여명의 직원 중 전문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만 5천여명에 달한다.


그렇다면 이번 채용실험에 대한 은행 안팎의 평가는 어떨까. 먼저 국민은행은 앞으로 나타날 효과를 지켜보면서 계속 시행할지 결정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채용이 막 끝난 시점인 지금까지는 대체로 성공적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우수한 인재를 뽑기 위한 전략이 적중했다”는 게 인사팀의 평가다.
실제 이번에 합격한 지원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미국 공인회계사(AICPA) 자격증을 딴 사람만 12명에 이르고 토익 만점자 등 최고 수준의 어학실력을 갖춘 사람도 눈에 띈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한 면접관은 이번처럼 우수한 사람이 많이 몰린 적이 없었다고 설명한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평균 6시간 이상을 잔 사람이 별로 없더군요. 학과성적은 A학점, 토익은 900점 이상이 대부분이었고 전문자격증을 딴 사람이 수두룩했어요.”

여기에다 LG경제연구원 허진 연구위원은 “신입 행원들의 이직률이 현저하게 낮을 것”이라는 지적을 내놓는다.
보통 일반 기업들을 보면 4~5년 사이에 신입사원들의 이직이 가장 많은 편이다.
하지만 이번에 채용된 국민은행의 신입 행원들은 4년 뒤면 MBA에 도전할 기회가 있기 때문에 적어도 그 기간 동안은 이직률이 0%에 가깝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직률이 가장 높을 시기에 핵심인재를 잡아둘 수 있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은행쪽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각에선 신입 행원에 대한 전폭적 투자가 그대로 은행의 이익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MBA를 보내게 되면 1인당 1억3천만원 정도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만일 100명의 신입 행원이 모두 입학허가서를 받아온다면 130억원이 드는 것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의한상일 연구위원은 “앞으로도 국민은행이 계속 최고의 은행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느냐에 따라 신입 행원에 대한 투자가 물거품이 될지, 투자한 비용 이상의 효과를 낼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한다.
뛰어난 인재를 잡아두려면 기업이 그만한 매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향후 비전이나 성과보상체계 등에서 다른 곳보다 뒤처지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한편에선 이번 채용실험이 철저한 윈윈 게임을 거쳐 끝까지 살아남는 자만을 정규직원으로 들이겠다는 다소 살벌한 인사정책이 반영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신입 행원들은 모두 4년짜리 계약직 사원으로 채용됐다.
MBA로 가기 전에는 반드시 ‘퇴사’라는 형식을 취해야만 한다.
직원들에게는 반드시 직장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부담을 주지 않는 반면, 은행은 필요한 직원만 선별해서 재채용할 수 있는 권한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은행과 직원이 서로 필요하면 다시 만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각자의 길을 가면 된다는 것이다.
노조가 볼멘 목소리를 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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