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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케이스스터디] 1등이 되기보단 품격을 지켜라
[경영 케이스스터디] 1등이 되기보단 품격을 지켜라
  • 양우성/ 공공정책 및 경영전
  • 승인 2003.01.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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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저마다 인격이 다르듯이 기업도 품격이 제각기 다릅니다.
” 경영컨설팅회사 ‘엘리오앤컴퍼니’의 대표컨설턴트 박개성 대표가 주창하는 모토다.
나아가 한국의 기업가와 경영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벌써 몇년전부터 박 대표는 삼성그룹 등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최고경영자와 임원들에게 각종 강연이나 세미나에서 힘주어 기업경영의 새로운 이념을 전파해왔다.
그의 ‘품격경영론’ 은 사실 어느 경영학 교과서나 교과목에서 다루지 않는 주제다.
더구나 현실에서 기업경영을 관찰하고 그 스스로 경영컨설팅회사를 운영하는 실무가 입장에서 나온 담론이라 뜻밖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신념은 자신의 경영방침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무엇보다 ‘접대’를 절대 하지 않는다.
사실 많은 경영컨설팅회사, 로펌, 회계법인 등 전문적 지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고객에게 상당한 향응과 접대를 하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있다.
때에 따라서는 리베이트 성격을 띠는 경우마저 없지 않다.
그러나 박 대표는 결코 접대를 하지 않는다.
접대비만큼 고객에게 과도한 비용을 청구하지 않을 수 없고, 자신들이 제공하는 경영자문 서비스는 향응과 접대를 통해 평가받는 것과 무관하다는 소신 때문이다.
아울러 그는 가격 덤핑을 하지 않는다.
경영컨설팅처럼 무형의 전문적 지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에 고객이 스스로 경영자문 서비스의 품질을 평가할 수 없고,또한 단지 싼 가격만을 좇는다면 컨설팅을 받아서 성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한다.
서로에게 시간 낭비, 돈 낭비가 되는 무의미한 거래관계, 인연이 될 뿐이라고 그는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박개성 대표가 대형 컨설팅회사를 지향하지 않으면서도 이토록 접대 금지, 가격할인 금지 등 나름대로 원칙을 지키는 이유는 바로 자기 스스로 ‘품격경영’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박 대표는 10여년 가까이 자문관계를 유지해온 고정고객들이 많다.
수익성은 기업활동의 목표가 될 수 없어 지난 2002년 신년사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수익성 중시 경영’을 강조했다.
또한 2003년 신년을 앞두고 계열사 사장들에게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며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좋게 보면 대한민국 재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삼성그룹 회장이 자만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경계한다고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아쉬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이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기업 삼성그룹은 수익성과 외형 성장 못지않게 ‘기업의 품격’을 높이는 데 눈을 돌려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은 ‘제일주의’를 표방한 것으로 유명하다.
무슨 사업을 하든, 한국에서 1등 기업이 되라는, 간단하지만 무척 성취하기 어려운 사실상의 ‘사훈’이었다.
제일모직, 제일제당, 제일합섬 등 과거 삼성그룹의 대표기업들 이름에 유난히 ‘제일’이라는 이름이 많이 붙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기업의 수익성과 재무건전성은 당연한 과제이지 특별히 최고경영자나 그룹 오너가 강조해야 할 기업경영 목표가 아니다.
사람으로 치면 건강관리를 강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건강한 육체와 정신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생명 존재의 목적이다.
사람은 건강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인생의 목표와 비전, 꿈을 이루기 위해 건강을 유지하고 관리한다.
마찬가지로 기업도 “수익성과 재무건전성을 바탕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분명한 목표와 비전, 기업활동의 존재 의의를 갖추어야 한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그에게서 ‘살아 있는 이유와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곤란할 때 인격이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기업이 왜 존재하고, 무엇 때문에, 어떤 사업을 하는지 이유와 의미를 갖지 못한다면 기업의 품격이 높다고 보지 않는다.
심지어 기업의 품격을 잃는 몇몇 사건 때문에 결국 기업이 역사저편으로 사라지는 일도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미쓰비시자동차는 두세 건의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사건들로 경영난에 빠지고, 존재의 의의를 상실해 경쟁기업에 합병되는 신세가 됐다.
지난 1996년 미국 일리노이주 노멀시에 자리잡은 미쓰비시자동차의 한 미국 현지 공장에서 일본인 공장관리인들이 수백명의 현지 여성 노동자들을 성희롱한 혐의로 제소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어찌보면 보통 회사내 회식자리에서도 여직원들이 남직원들에게 마치 게이샤처럼 공손하게 술을 따라주는 ‘전통과 관습’을 고수하는 일본식 기업문화에서는 문제될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고 성희롱을 엄격히 금지하는 미국 문화에서 보면 일본 기업과 일본 기업에서 근무하는 일본 남성들의 품격은 형편없어 보인다.
영원한 기업으로 가는 길 미쓰비시자동차는 이 때문에 미국 고용기회균등위윈회(EEOC)와 24명의 전·현직 여성 노동자들부터 공장에서 성희롱을 광범하게 자행했다는 혐의로 고발당했으며, 6년 동안 미쓰비시자동차 미국 법인을 총괄해온 오히오우에 츠네오(64) 회장 겸 CEO가 불명예 사임했다.
더구나 공개 사과나 합법적 손해배상 대신에 일부 피해여성들과 950만달러의 이면합의를 시도하면서 음흉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만 더해졌다.
미쓰비시는 사건 발생 초기에는 “성희롱 제소는 외국 기업들로부터 돈을 뜯어내려는 짓”이라며 적반하장식으로 결백을 주장했고, 심지어 직원 3천여명을 동원해 EEOC 빌딩 앞에서 규탄시위까지 벌이는 등 엉뚱하게 대응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일부 피해자들과 비공개적으로 합의해 사태를 수습하려 했던 것이다.
다분히 일본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였지만, 이것은 오히려 일본 기업의 불투명성, 비열함으로 미국 언론과 정부기관에 비쳤다.
결국 2년여의 소송 끝에 미쓰비시는 연방정부와 3400만달러의 손해배상에 합의했다.
아울러 별도의 성희롱방지교육을 제도화하며, 정기적으로 연방정부에 이행 여부를 감독받기로 약속한 채 사건을 일단락지을 수 있었다.
금전적 손실도 적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기업 이미지 추락은 천문학적 금액을 투입해도 만회하기 어려운 손실이었다.
미쓰비시자동차의 불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 97년 일본 경찰은 주주총회에서 ‘원활한 진행’을 위해 총회꾼을 현금 900만여엔을 제공하고 고용한 혐의로 미쓰비시자동차 전 총무부장 등 간부 3명과 총회꾼 2명 등 모두 5명을 체포했다.
추가조사 결과 몇년 동안 반복적으로 일어난 범법행위임이 밝혀졌다.
심지어 미국법인에서 발생한 성희롱 문제조차 다음 주총에서 문제가 되지 않은 것도, 주총회장 주변에서 여성단체들이 항의시위를 벌였는데도 30분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도 전부 총회꾼의 공작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2000년 여름에는 미쓰비시자동차가 제품 결함을 30년 동안 은폐해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쓰비시자동차는 일본의 자동차 역사에서 사라지고 다임러-크라이슬러에 경영권을 헌납하게 된다.
만일 일본 굴지의 미쓰비시자동차 경영진이 기업의 품격에 분명하고 적극적인 관심을 가졌더라면 미국 현지법인에 파견된 남성직원들이 현지 여직원들에게 품격을 잃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성희롱 파문이 발생한 뒤에 기업의 품격을 잃었다는 부끄러움을 알았다면 피해 여성들과 이면 합의를 시도하거나 주총에서 총회꾼을 동원해 주주들의 입막음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들의 사업목적이 단지 자동차를 많이 팔아 이윤을 남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을 고객들에게 제공해 생명을 지키고 인류의 행복을 증진한다는 품격있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더라면, 30여년간 제품의 결함을 은폐하는 어처구니없는 경영행태가 발붙일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의 기업이 고객과 사회, 투자자 등 기업 외부의 이해관계자들로부터 ‘품격있는’ 기업으로 인정받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기업가들의 꿈인 ‘영원한 기업’을 만들고 싶다면, 품격 높은 기업을 만들어 고객과 투자자, 노동자, 협력업체, 후대의 경영자들이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소중함을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경영자가 자신의 인격처럼 기업의 품격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노동자도 , 협력업체도, 고객도, 투자자도 굳이 지켜주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누구보다 최고경영자가 품격경영을 주도하고 실천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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