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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대한민국 원조 은행 “나야, 나”
[비즈니스] 대한민국 원조 은행 “나야, 나”
  • 이현호 기자
  • 승인 2003.01.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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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은행은 한성은행(조흥은행 전신)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기네스협회도 1995년 조흥은행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으로 공인했다.
한성은행은 1897년 2월19일 설립됐다.
조흥은행은 한성은행이 국내에서 최고 오래된 법인기업으로, 순수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우리나라 근대 금융기관의 효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학계 한편에서는 다른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우리은행이 최근 한국금융학회에 '한국금융 100년사' 연구와 저술 용역을 맡기면서 다시 ‘최초 은행’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다.
학계 일부에서는 상업은행의 전신인 천일은행이 최초의 은행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상업은행을 합병한 우리은행이 우리나라 최초의 은행이라는 주장인 셈이다.
우리은행도 여기에 가세해 한성은행보다 1년 앞선 1896년에 천일은행이 존재했다는 내용이 적힌 미국 알렌 공사의 일기가 뉴욕시립도서관에서 발견됐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다 한성은행, 즉 조흥은행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한성은행은 1903년 문을 닫은 뒤 다른 사람이 다시 사업자로 등록해 공립 한성은행으로 개편됐다.
그런데 개편된 한성은행이 1897년 세워진 은행과 같은 은행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한국금융의 변천사가 학계내에서 정립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역사적 가치를 처음부터 다시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
학계의 판단 여하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한국기네스협회에서 공인한 최초 은행의 역사적 사실이 뒤바뀔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조흥은행은 다소 어이없어하는 표정이다.
최초 은행 논쟁은 이미 일단락된 것으로 지난 95년 한국기네스협회가 1년 넘게 현존하는 모든 자료를 검토해 국내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법인회사 가운데 최초라는 사실을 공인했다는 것이다.
조흥은행 관계자는 “학계 일각에서 제기된 논쟁이나 주관적 자료들은 확대 해석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흡수합병 위기 조흥은행, 상징성 강조 하지만 이 논란은 조흥은행이 현재 흡수합병 위기를 맞이해서인지 더 많은 관심을 모은다.
특히 조흥은행에서는 현존하는 최고 은행이 없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며 경영권 매각을 반대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또한 금융권의 구조조정이 심화되면서 은행들의 역사적 가치인 ‘창립 변천사’가 퇴색됐다는 학계의 평가도 한몫 했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금융권 일부에서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이라는 상징성을 정립하기 위해서라도 역사적 사실을 이번 기회에 다시 밝혀야 한다”며 더 ‘큰 불씨’를 지피고 있다.
최초 논쟁이 불거진 마당에 확실한 종지부를 찍자는 이야기다.
사실 한성은행은 초기 설립시기에 금융기관으로서 은행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그 기능이 제한적으로 운영됐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지는 못하다.
은행은 수신과 여신을 함께 운영해야 하는데, 한성은행은 여신부문인 대출업무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조흥은행은 “시대가 어려워 처음 문을 열고 며칠 정도 대출 손님이 없었을 뿐”이라며 “국내 최초의 대출은 한성은행에서 시작됐다”고 역사적 의미를 강조한다.
예컨대 한성은행 최초의 대출은 “한 대구 상인이 당나귀 한필을 담보로 부족한 자금을 빌린 것”으로 한국 은행사의 최초 대출담보 1호라는 의미가 담겼다고 반박한다.
한성은행이 최초라는 것을 입증하는 역사적 자료도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
당시 탁지부(현재 재정경제부)는 1897년 법인 설립인가를 받은 한성은행을 한국 최초의 법인으로 인정하고 있다.
95년 한국기네스협회의 기록도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또한 한성은행은 '독립신문' 1897년 3월25일치에 창립광고를 싣고, 그 역사적 의미를 세상에 알렸다.
이날 신문에는 대출 확대를 위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또한 초기 한성은행에서는 국내 처음으로 복식부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만큼 서양식 은행체계를 처음 시도했다는 역사적 의미가 담겼다고 학계는 해석하고 있다.
한성은행은 최초 민족은행으로서의 역할론에 충실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는 분석이다.
이런 사실은 당시 금융기관 역할을 했던 객주나 전당포들의 훼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은행이 생기기 이전의 예금과 대출 업무는 객주와 전당포가 독점했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현재로서는 한성은행이 우리나라 최초의 주식회사로 꼽힌다.
조흥은행은 이미 정보통신부로부터 100주년 기념우표를 발행받을 만큼 그 역사적 가치를 공인받기도 했다.
연세대 경제연구소에서 발간한 '한국근대금융사연구'에서도 한성은행이 1897년 1월 설립된 최초의 민족은행으로, 천일은행(상업은행)은 1899년 1월에 설립한 두번째 은행으로 분석하고 있다.
은행간 대립 NO, 한국금융사 100년 체계화해야 결국엔 학계에서 알렌 공사의 일기가 어떻게 판가름나는가에 결론이 달려 있다.
현재로서는 다분히 주관적인 알렌 공사 일기는 역사적 가치가 없다는 견해가 높다.
또한 일부 학자들은 알렌 공사의 일기를 두 은행간의 대립적인 시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한국금융사 100년’을 체계화하는 일부 자료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료는 검증되기까지는 자료일 뿐이지, 역사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견해다.
향후 알렌 공사의 일기가 어떠한 역사적 가치로 고찰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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