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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클리닉] 성과 색, 그리고 남녀
[섹스 클리닉] 성과 색, 그리고 남녀
  • 박석준/ 동일한의원 원장
  • 승인 2003.01.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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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과 색(色)과 남녀라는 단어 중에서 요즘 우리가 쓰는 섹스의 의미와 가장 가까운 말은 무엇일까? 먼저 성은 성욕, 성기, 성교 등으로 쓰니까 아마도 성이 섹스와 동일한 뜻일 것이다.
영어를 번역할 때도 섹스(sex)는 성으로 번역하니까 당연히 성이 섹스와 같은 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은 원래 이런 뜻이 아니었다.
원래 성은 인간이 타고난 바탕이라는 뜻이다.
본성이라고 할 때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맹자가 성선설을 말했다고 할 때도 인간의 타고난 바탕인 성이 선하다, 착하다는 말로 쓰인다.
그러므로 성이라는 말은 섹스라는 의미와는 아무 관계가 없없다.
이렇던 것이 성에 섹스라는 의미가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근대에 들어와 일본에서 섹스를 성으로 번역하면서 생긴 용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가장 일반적으로 성은 섹스를 의미하게 된 것이다.
한편 색은 어떤가. 색이라는 말은 불교에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이 세상의 여러가지 것들, 곧 현상계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그래서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고 할 때의 색은 바로 이런 의미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옛날에도 색이라는 말은 요즈음의 섹스를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됐다.
대표적으로 호색한(好色漢)이라는 말이 있다.
또 '맹자'에 “식색(食色)은 성야(性也)”라고 하여 “먹는 것과 섹스는 사람에게 근본적 바탕이다”라고 말한 예가 있다.
여기에서도 성이라는 말은 섹스가 아니고 근본 바탕, 본성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고 차라리 색이라는 말이 오늘날의 섹스에 가까운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색의 의미를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은 일본이었다.
여기에는 단순한 섹스의 의미만이 아니고 일종의 로맨티시즘을 포함한 넓은 의미로 쓰인다.
특히 에도시대로 오면 일본에서는 색은 거의 섹스라는 의미로만 사용되기에 이른다.
그러면 남녀는 어떠한가. 남녀라는 말에는 섹스의 주체가 다 들어 있기는 하지만 섹스 자체와는 정말 별 관계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바로 남녀라는 말이 요즈음 쓰이는 섹스와 가장 가까운 말이다.
얼마 전에 ‘음식남녀’라는 영화가 상영됐던 적이 있다.
이 영화의 제목을 보고 어떤 사람은 음식과 남자, 여자에 관한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제목을 정확히 번역하자면 ‘음식과 섹스’다.
‘남녀’야말로 섹스를 의미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음식남녀’라는 말은 작가가 그냥 만든 말이 아니라 고전인 '예기'라는 책에 나온다.
“먹고 마시는 것과 섹스에는 사람의 커다란 욕망이 담겨져 있다”는 말이 그것이다.
이 말은 슬프거나 화내는 감정, 먹고 마시고 섹스하는 것은 좋아하면서 가난하고 죽는 것은 싫어하는 것을 잘 다스리려면 반드시 예(禮)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나오는 말이다.
영화 제목치고는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성이라는 말이 섹스와 가장 가까운 말이 됐고 색이라는 말도 쓰이기는 하지만, 남녀라는 말로 섹스를 의미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말이란 시대와 함께 변해가는 것이고 이는 누가 어떻게 하자고 하여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말의 역사를 잘 알고 그 의미를 정확히 쓰는 것이 앞으로의 말을 잘 키워가는 데에 중요하기 때문에 장황하나마 말의 역사를 짚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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