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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풍성한 설 극장가 골라 보는 재미가 있다
[영화] 풍성한 설 극장가 골라 보는 재미가 있다
  • 이성욱/ <한겨레21> 기자
  • 승인 2003.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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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는 전통적으로 명절 극장가의 ‘주인’ 행세를 해왔다.
'텔미썸딩' 이후 4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한석규의 '이중간첩'(감독 김현정)이나 '엽기적인 그녀' 이후 흥행에 대한 감각을 확실히 알아챈 듯 또 하나의 코믹 신파 멜로를 만든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이 한달 넘게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해온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을 몰아내기 위한 ‘두개의 탑’ 같은 자세를 취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중간첩'은 미워할 수 없는 영화이나 감동의 결정타가 부재하고, '클래식'은 감동과 웃음을 끄집어내려는 노골적인 ‘대중타협적’ 노선이 얄밉지만 툭툭 던져지는 재미까지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이중간첩 감독: 김현정 출연: 한석규, 고소영 상영시간: 123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1월23일 '이중간첩'의 ‘결정적 장면’은 한석규가 훌륭하게 다듬어진 나체를 보여줄 만큼 헌신적으로 예의 정밀한 연기를 보여준 대목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방송국 아나운서이자 고정간첩으로 나오는 고소영과의 취약한 로맨스나, 남과 북 어느 곳에도 안착할 수 없는 이중간첩의 실존적 고뇌감을 전염시키는 데 역부족인 부실함을 대신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영화는 인민군 소좌 림병호(한석규)가 남과 북 양쪽으로부터 타협의 여지마저 없는 절대적 타자로 전락하는 처지를 첩보 장르의 코드로 그려간다.
1980년 림병호가 총상까지 입으며 동베를린에서 극적으로 탈출하자 남측은 그를 기꺼이 환영한다.
그러나 불과 일주일 뒤, 림병호는 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 생사를 오간다.
‘검증’을 위해 물고문, 전기고문을 가하는 장면은 냉혹할 만큼 사실적이다.
어렵게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한 림병호는 2년간 북파 공작원의 교관으로 일하게 되고, 정보부의 정식 본부요원으로 입성하기에 이른다.
한국 영화 조커 '이중간첩' '클래식' 드디어 첫번째 지령이 떨어진다.
고정간첩인 라디오 아나운서 윤수미(고소영)와의 접선이다.
이중간첩으로서 조건이 무르익을 즈음, 림병호를 집어삼키려는 치명적 함정이 서서히 조직된다.
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조작해 크게 한건 올리려는 정보부의 공작정치가 반전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중간첩'의 의의는 분명해 보인다.
더이상 한국 영화는 ‘분단의 질곡’에서 허우적대지 않는다.
클래식 감독: 곽재용 출연: 손예진, 조인성, 조승우 상영시간: 132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1월30일 '엽기적인 그녀'의 후반부는 제목과 어울리지 않게 ‘엽기적 신파’를 보여줬다.
곽재용 감독은 이 대목을 더욱 확대개편해 '클래식'을 만든 듯하다.
언뜻 무모해 보이는 이 전략은 조승우의 담백하고 적절한 연기호흡과 ‘신데렐라’로의 등극을 알리는 듯한 손예진의 매력에 힘입어 인화성 높은 폭발력을 갖춰버렸다.
대학선배 상민(조인성)을 좋아하는 지혜(손예진)는 적극적인 친구 수경의 부탁을 받고 연애 e메일을 대신 써준다.
엉뚱하게 이 편지로 상민과 수경이 연인으로 연결된다.
지혜의 안타까움은 어머니 주희가 간직한 첫사랑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더욱 절실해진다.
어머니의 첫사랑은 그의 정혼녀를 대신해 편지를 써준 고등학생 준하(조승우)였다.
지혜의 현재와 주희의 과거는 닮은꼴이다.
이야기의 중심은 급격히 과거로 흘러간다.
준하가 여름방학을 맞아 시골 삼촌집에 놀러갔다가 그곳에서 요양중인 주희를 만나 소설 '소나기' 같은 추억을 남기게 된다.
공교롭게도 '이중간첩'과 '클래식'은 과거의 정치적 비극을 배경으로 한다.
'이중간첩'에는 전두환 정권 시절의 험악함이, '클래식'에는 박정희시대의 월남 파병이 주인공들에게 슬픔을 선사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힘을 받아 설연휴 극장가를 지킬 또 다른 한국영화 '품행제로'도 80년대가 배경이다.
과거로 돌아갔으나 퇴행적이지 않은 영화들이 줄 서 있는 극장가는 30대 이상의 연령층에게 색다른 선물이다.
특히 '클래식'과 '품행제로'는 그때 그 시절의 향수를 확실하게 자극해준다.
20대? 400만 고지를 향해 달리고 있는 '색즉시공'으로 질펀한 웃음을 터뜨려보는 건 어떨까. 영웅 각본·감독: 장이모 출연: 이연걸, 양조위, 장만옥, 장쯔이 상영시간: 97분 등급: 12살 관람가 개봉: 1월24일 중국을 대표하는 장이모 감독이 무협극에 데뷔한 '영웅'과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캐치 미 이프 유 캔'이 한국 영화를 향해 뿜어내는 위세는 자못 위협적이다.
'영웅'이 왕가위의 '동사서독'이나 리안의 '와호장룡'을 넘어서는 창조성을 보여주긴커녕 과도한 중화주의에다 진시황 같은 독재자에 대한 옹호로 퇴색하긴 했으나 현란한 볼거리로 넘쳐나는 건 분명하다.
이연걸, 양조위, 장만옥, 장쯔이 등 중화권 스타들의 총출동이나 이야기 단락마다 색감을 달리해 화려한 동양화를 찍어내는 듯한 스펙터클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스필버그 '캐치 미 이프 유 캔' 등 외화 맞대결 캐치 미 이프 유 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톰 행크스 상영시간: 2시간20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1월24일 ‘잡을 테면 잡아봐’(Catch me if you can)라며 기막힌 사기행각을 벌이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천재적인 10대 사기꾼을 쫓는 FBI의 금융범죄 전문가 톰 행크스도 볼 만하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이 흥미로운 건 믿기 힘든 실화라는 점이다.
프랭크 에버그네일 주니어는 FBI 역사상 최연소 수배범이었다.
17살부터 5년 동안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250만달러에 이르는 위조수표를 만들어 썼고, 조종사·의사·변호사 등 다양한 모습으로 눈부시게 변신하는 데 늘 성공했다.
1980년 자서전을 낸 그의 일생이 스필버그의 눈에 띄었고, 영화화됐다.
역설적이게도 프랭크는 자신의 화려한 경력을 바탕으로 위조방지용 수표를 만들었고 이를 기업들이 널리 사용하면서 매년 수백만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한다.
강박적일 만큼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끼워넣는 스필버그의 버릇은 여전하지만, 누군가를 멋지게 속여넘기는 장면들은 매혹적이다.
‘유혹의 기술’에 목말라한다면 참고해볼 만한 장면이 하나둘이 아니다.
눈높이를 낮추면 이런저런 구색맞추기에 어울려 보이는 외화들이 있다.
'트랜스포터'는 뤽 베송이 제작과 각본에 뛰어들었고, '이연걸의 영웅' '이연걸의 보디가드' 등을 연출한 원규가 감독을 맡았다.
뤽 베송의 '레옹' 같은 킬러가 등장하는 구도를 홍콩식으로 풀어냈다고나 할까. 주인공도 서기와 제이슨 스태덤 등 동·서로 양분됐다.
문제는 두서없는 ‘짬뽕’이 자기만의 개성을 살리기 힘들다는 걸 새삼 보여준다는 점이다.
트랜스포터 제작·각본: 뤽 베송 감독: 원규 출연: 서기, 제이슨 스태덤 상영시간: 92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1월30일 할리우드 일급스타 중에 흥행침체의 늪에 빠져든 대표선수가 에디 머피다.
영문 모르고 첩보의 세계에 발디딘 에디 머피의 좌충우돌 모험담 '아이 스파이'가 그를 구제해줄까? 느슨한 액션과 특수효과를 입심으로 때우려는 건 아무래도 무모해 보인다.
육안으로는 물론, 레이더나 적외선으로도 식별할 수 없는 투명 스텔스기 ‘스위치 블레이드’를 되찾기 위해 권투선수 에디 머피를 앞세우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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