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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워싱턴의 포로가 된 월스트리트
[기자수첩]워싱턴의 포로가 된 월스트리트
  • 이원재 기자
  • 승인 2003.02.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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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을 이끄는 사람들이 읽는다.
그리고 '워싱턴포스트'는 자신들이 미국을 이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는다.
” 신문들을 빗대 월스트리트가 있는 뉴욕과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을 비교한 미국 농담이다.
겉보기와는 달리 미국을 이끄는 것은 워싱턴의 정치인들이 목청 높여 부르짖는 반공 민주주의 이념이 아니라 월스트리트의 금융인들 사이에 은밀하게 오가는 자본의 논리라는 점을 비유한 말일 게다.
월스트리트를 거쳐가는 돈이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돈줄이 되고 있는 판이니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최근 한국 신용등급 전망을 ‘긍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꾸면서 북한 핵 위협 때문에 앞으로 한국 신용등급을 낮춰야 할지도 모른다고 발표하는 무디스를 보니, 이미 판도가 바뀌어 월스트리트 일부가 워싱턴의 포로가 된 것 같아 보인다.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던 3대 신용평가사 가운데 한군데가 금리와 환율에 상당한 영향을 줄지도 모르는 결정을 경제 펀더멘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그저 워싱턴의 노예처럼 결정하고 말았다.
지금 워싱턴 부시 정권에 깊숙이 포진하고 있는 군수산업과 석유산업 옹호자들은 자꾸만 한반도 긴장을 부추긴다.
그게 그들의 이해관계이니 기분은 나쁠지언정 고개를 끄덕여줄 만도 하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금융자본은 이해관계가 다르지 않은가. 이미 한국은 국제금융시장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버렸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가 보유비중은 35%를 넘어섰다.
혹시 한반도에 전쟁이라도 나면 워싱턴을 호위하고 있는 군수산업은 번창할지 모르지만, 한국 시장에 한쪽 발을 걸치고 있는 월스트리트는 큰 생채기를 입게 된다.
그런데도 무디스의 행보나 '월스트리트저널'의 전쟁옹호론적 칼럼들을 보면, 세계의 돈줄이 이성을 잃어버리고 워싱턴에 투항하고 있는 듯해 섬뜩해지곤 한다.
역사적으로 봐도, 대량 파괴 행위가 경제에 도움이 됐다는 증거는 없다.
전쟁옹호론자들은 우연히 미국 경제 10년 호황의 초입에 자리잡았던 걸프전의 환상을 떠올리지만, 그들은 베트남 전쟁의 악몽이 얼마나 오랫동안 미국을 괴롭혔는지도 함께 놓고 생각해야 한다.
그나마 또 다른 세계적 신용평가사 피치가 신용등급에 변동은 없으리라고 발표했다.
다행히 월스트리트 전체가 워싱턴의 전쟁포로가 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 월스트리트는 이성을 되찾고 그들이 평화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보여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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