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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케이스스터디] 미래는 아름다워야 한다?
[경영 케이스스터디] 미래는 아름다워야 한다?
  • 양우성/일본 TMA 부사장
  • 승인 2003.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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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감각 상실한 맹목적 낙관주의 경계해야… 무디스 신용등급 하락 파문서 드러난 ‘최면’의 오류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줄 줄 알았습니다.
” 아마도 대다수 여성들은 자신의 남편감을 고르는 보편적 기준으로 이 말을 생각할 것이다.
여성들은 자신에게 구애하는 여러 남성 경쟁자들을 놓고 가장 다정다감하게 사랑을 표현하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롭게 해줄 만한 남자가 누굴까 고민한다.
자신의 행복을 극대화하고 싶은 여성들이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 아래에서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인 셈이다.
여성들에게는 안타까운 이야기이지만, 여성들의 이런 기대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를 우리는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많은 남성들이 “잡아놓은 고기에게는 미끼를 주지 않는다”는 말이 틀리지 않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많은 남성들은 결혼 전의 ‘간이라도 빼줄 듯하던’ 모습을 결혼 뒤 급격하게 바꾼다.
좀더 영악한 남성들이라면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태도를 바꿔가는 전략을 택한다.
카리스마가 강한 독재자들의 성향 결국 많은 기혼 여성들은 결혼 뒤 최소한 한번쯤은 주부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여성들은 이때 인생에서 가장 절망감을 느끼거나 때로는 분노에 휩싸이게 된다.
결혼하기 전에 기대했던 것과 결혼 뒤 실제 사이의 괴리 때문에 자신이 결혼에 관한 의사결정에서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사태가 이즈음에 이른다면 여성들 스스로 자신이 선택했던 의사결정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찾아봐야 한다.
의사결정이라는 주제로 연구를 하다 보면 ‘맹목적 낙관주의’(wishful thinking)라는 의사결정 방식을 종종 관찰하게 된다.
맹목적 낙관주의는 바람직한 주변환경만을 염두에 두고 결정을 하거나, 자신의 의사결정이 최선의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의사결정자가 스스로에게 거는 일종의 최면인 것이다.
여성들의 결혼 결정 과정도 이런 의사결정 방식에서 오는 실패요인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맹목적 낙관주의는 단지 결혼뿐 아니라 공공부문과 기업부문을 통틀어 대다수 의사결정자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이기도 하다.
1992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 후보는 대선운동 기간에 “쌀시장만큼은 대통령 자리를 걸고 막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그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결국 쌀시장 개방이라는 국제적 압력을 받아들였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 후보는 우루과이라운드에서 농산물시장 개방이 초미의 의제로 떠오르던 때, 쌀을 포함한 농산물을 개방할 수밖에 없다는 국제무역 흐름에 대한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다.
김영상 대통령의 ‘쌀시장 수호 약속 불이행’ 사례처럼 맹목적 낙관주의는 의사결정자들로 하여금 주변여건과 환경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철한 인식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성공적인 의사결정을 위한 4단계 과정 가운데 첫단계인 ‘상황에 대한 이해와 분석’에서 첫단추를 잘못 끼우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맹목적 낙관주의에 빠진 의사결정자들은 당장 듣기 좋은 정보와 아이디어만 좋아한다.
반대로 듣기 거북하거나 거슬리는 정보와 아이디어는 기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경향은 카리스마가 강한 지도자가 의사결정을 거의 독단적으로 장악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많은 독재자들은 자신의 정책을 비판하는 언론을 길들이고 싶어한다.
때로는 언론을 아예 자신의 정치이념과 노선, 정책을 선전만 하는 ‘정치적 나팔수’로 만들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모든 독재권력들이 방송매체를 국유화하거나, 콘텐츠의 제작·편집에 관여하고, 직간접적으로 검열을 시도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대개의 독재자, 권위주의적 의사결정자들은 맹목적 낙관주의의 성향을 강하게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도 최고경영자가 맹목적 낙관주의 성향이 강하면 부하 임직원들은 최고경영자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 전달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와 함께 최고경영자가 듣기 싫어하는 중요한 경영정보는 알아서 걸러내기 위해 다양한 장치와 절차를 만들어놓는다.
입맛에 맞는 정보만 취사선택하기도 하지만 카리스마적 의사결정자들이 듣기 싫은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들이 ‘아름답게 그리는 대로’ 상황이 돌아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역사가 가르쳐주는 것은 그 반대다.
왜냐하면 좋은 소식만 골라 듣는 의사결정자는 결국 스스로 균형감각을 잃어버려 실패하는 의사결정만 줄기차게 양산하기 때문이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방송을 국유화·공유화하고, 신문기사를 검열해 듣기 싫은 정보의 생산을 원천봉쇄했다.
심지어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마저 대통령의 눈과 귀가 멀어간다며, 대통령을 살해하는 극단적 역설현상을 초래한 것이다.
최근 미국의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대한민국의 국가신용도를 두단계 낮춘 것을 놓고, 정치권과 여론이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서도 전형적인 맹목적 낙관주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정부는 무디스의 신용등급 인하를 막으려고 백방으로 뛰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과도 낙관하고 있었다.
심지어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2월5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와 인수위가 열심히 뛰어 현 등급 유지가 결정될 것”이라고 성급하게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재경부의 고위 당국자들도 지난 1월 무디스 조사단의 방한 때 토머스 번 부사장이 “A3등급의 긍정적 전망은 계속 유효할 것”이라는 언질을 받았다고 자랑스레 소개했다.
청와대를 비롯해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인수위원회, 재경부 등은 무디스가 신용등급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하게 자신했다.
그러다 막상 무디스가 예상을 깨고 등급하락을 검토하자 당황했다.
체면을 구긴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무디스가 제시하는 등급하락의 근거는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능히 수긍하거나 예상할 수 있는 지극히 합리적인 논거들이다.
북한 핵문제와 반미 정서의 심화가 ‘주식회사 한국’에 적신호가 될 것임은 지극히 상식적인 인과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쟁점들은 이미 상당수 국민들과 언론에서 우려하던 문제들이었다.
다만 청와대와 인수위원회, 재경부만이 “어떻게 무디스가 한국 경제 상황을 잘 보아줄 수도 있겠지” 하고 대책없이 낙관하거나, 그것을 유도했을 뿐이다.
만일 청와대와 인수위원회, 재경부 고위 관계자들이 진짜로 무디스가 합리적 인과관계를 외면하면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유지해줄 것이라고 오해했다면 그것 자체가 기막힌 난센스다.
무디스에 강한 희망을 걸었던 청와대, 인수위, 재경부 등이 보여준 모습이 바로 전형적인 맹목적 낙관주의의 오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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