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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해외 연기금, SRI로 ‘일석이조’
1.해외 연기금, SRI로 ‘일석이조’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3.02.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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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성격을 강하게 띤 연금기금의 특징을 꼽으라면? 이른바 ‘월스트리트 룰’을 답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정답 중 하나다.
월스트리트 룰이란 주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의결권을 행사해 적극적으로 기업성과에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단지 해당 주식을 팔아버리는 걸 뜻한다.
투자신탁, 뮤추얼 펀드 등 일반 기관 투자자들이 자주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KDI 김우찬 교수는 이들 기관 투자자들이 월스트리트 룰에 따를 수 있는 것은 공적 성격을 띤 연금기금에 비해 “기업별 투자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단순히 지분을 내다 팔더라도 큰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우리나라 국민연금기금이 ‘기관 투자자’라는 이름 아래 이들 투자자들과 한데 뭉뚱그려지지 않아도 되는 구석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미국 캘퍼스·교원연금 대표적 예 외국에서는 실제로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별도의 사회적 가치를 담은 적극적 투자정책을 고수함으로써 공공성과 수익률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연금기금의 사례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의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캘퍼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1987년부터 92년까지 캘퍼스가 적극적으로 주주 권리를 행사한 42개 기업들을 대상으로 S&P500 대비 초과수익률을 조사했더니 이들 기업들은 5년 사이에 평균 41.3%의 초과수익률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중요한 건 캘퍼스가 적극적으로 주주 권리를 행사하기 이전 5년 동안에는 이들 기업이 평균 66.4%의 음(-)의 초과수익률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91년부터 94년까지 미국 기관투자자협회가 ‘문제기업’으로 선정한 117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결과도 흥미롭다.
이들 기업은 선정 이후 평균 1년 동안 5.9%, 2년 동안 9.2%의 초과수익률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선정 이전 시기에는 음(-)의 초과수익률을 기록했다는 것도 캘퍼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공적 성격을 띤 연금의 행보 하나하나가 얼마만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능히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투자대상 기업에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투자자 입장에서도 만족할 만한 수익률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의 공익이 덩달아 커진 건 물론이다.
이뿐이 아니다.
캘퍼스는 Relational Investors, Active Value, Hermes Focus Fund라는 이름의 3개 ‘기업지배구조펀드’에 간접 투자하는 방식으로 좋은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이 펀드들은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할 여지가 크다고 판단되는 기업에 전략적으로 투자한 다음, 그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쪽으로 압력을 행사하는 방식을 즐겨 사용한다.
3개 펀드 모두 기준수익률 대비 초과수익률을 기록했다.
마치 쓰러져가는 기업을 인수해 구조조정 작업을 거친 다음, 기업가치를 높여 이익을 남기는 ‘인수후개발’(A&D) 방식을 원용했다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미국의 교원연금인 TIAA-CREF는 투자철학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캘퍼스와는 달리, 비공개주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대신 특정기업을 투자 포트폴리오에 포함시키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꼼꼼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기업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예의 주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주 권리를 성실하게 수행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높은 수익률까지 올릴 수 있는 건 마찬가지다.
영국, 연금법에 투자철학 아예 명시 영국에서는 아예 민간부문의 기업연금까지도 단순히 주주 권리를 행사하는 데 머물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들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흐름이 상당히 정착되어 있는 편이다.
이처럼 연금기금의 금융부문 투자와 관련한 얘기를 할 때, 영국의 경험이 꼭 빠지지 않는 것은 바로 ‘제도화’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
99년 ‘연금법’(Pensions Act)을 개정하면서 모든 연금기금이 아예 투자정책지침서(IPS) 안에 사회책임투자(SRI)의 싹을 키울 수 있는 실마리를 담은 투자철학을 명문화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사회, 환경, 경제의 세 요소를 함께 고려할 뿐 아니라, 주주로서 권리를 성실하게 이행하겠다”는 문구가 바로 그것이다.
모든 연금기금에 자신들의 투자철학을 담은 IPS를 만들도록 규정한 95년 연금법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기업,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연금기금이 앞장서도록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간 셈이다.
현재 영국 상장기업 시가총액의 35%를 담당하는 연금기금들이 SRI 흐름으로 서서히 모여들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단기적이고 경제적 잣대만을 좇던 연금기금들이 엔론 사태 이후 줄줄이 큰 타격을 입으면서 각국의 연금기금들이 SRI에 좀더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각국의 연금기금은 단순히 의결권 등 주주 권리를 행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단계에서부터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쪽으로 주주 권리의 깊이와 폭을 넓혀가는 중이다.
‘투자 리스크’의 개념이 점점 넓어지고 장기화해가는 지금, 그 길만이 결국에는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공감대가 서서히 싹트고 있기 때문이다.

캘퍼스의 기업지배구조 가이드라인

외국의 주요 연금기금들은 명문화한 형태의 중장기 투자정책지침서(IPS)에 따라 자산을 운용한다.
개별 연금기금에 따라 IPS의 내용은 차이를 보이지만 주로 기금의 사명과 투자기간, 위험 허용 한도, 투자목표, 전략적 자산배분, 펀드매니저 구성, 성과 분석 등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국민연금관리공단과 보건복지부가 준비중인 IPS 안은 캘퍼스 사례를 많이 참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캘퍼스는 의결권 행사의 기본지침이 되는 기업지배구조 ‘기본원칙’과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1. 이사회의 독립성과 리더십 1) 이사, 경영진, 그리고 주주들은 상호 합의에 의해 이사의 독립성에 관한 통일된 정의를 도출해야 한다.
2) 이사 후보를 추천할 때마다 이사 임기문제를 재검토해야 하며 이사회가 새로운 아이디어에 개방적이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3) 새로운 CEO를 뽑을 때마다 이사회는 CEO와 이사회 의장간의 관계를 재검토해야 한다.
2. 이사회 운용과 평가 1) 이사회는 실제 적용될 수 있는 CEO 승계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경영진으로부터 다른 상급 임원들의 동향을 정기적으로 보고받아야 한다.
2) 모든 이사들은 상급 임원과 접촉할 수 있어야 한다.
3) 이사회는 정기적으로 이사회 크기를 재검토해야 하며 이사회 운용에 가장 효과적인 크기를 결정해야 한다.
3. 개별 이사들의 특징 1) 이사회는 이사회 전체에 대한 성과 평가기준을 마련해야 할 뿐 아니라 개별 이사들에 대한 성과 평가기준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출석률, 회의준비 정도, 발언 빈도, 정직성) 2) 기존 이사가 재추천받기 위해서는 성과 평가기준을 충족해야만 한다.
3) 퇴임 CEO는 일반적으로 이사회에 잔류해서는 안 된다.
4) 이사회는 이사 후보들로부터 요구되는 자질들을 정하여 이를 주주들에게 알려야 한다(회계와 금융, 해외 마케팅, 기업경영, 관련 산업에 대한 지식, 고객관리, 위기관리, 지도력과 경영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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