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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SK ‘집중포화’ 사건의 전모
[비즈니스] SK ‘집중포화’ 사건의 전모
  • 류현기 기자
  • 승인 2003.02.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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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문건’ 덕에 수사 급물살… 최 회장 ‘직접적 지분 높이기’ 화근 SK그룹과 JP모건의 주식 이면거래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검찰수사가 의외로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움직임에 고발 당사자인 참여연대도 내심 놀라는 눈치다.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참여연대는 SK증권과 JP모건 사이에 주식재매입과 관련된 이면계약이 공시의무를 위반하고 배임죄에 해당한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박스 참조) SK(주) 최태원 회장과 구조조정본부장 등의 책임을 묻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참여연대의 애초 의도 이상으로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탔다.
이 문제를 수사하던 검찰이 SK그룹의 부당내부거래 혐의를 발견한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최 회장이 SK(주)의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비상장회사인 워커힐 주식가치를 과대평가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SK그룹의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검찰수사는 SK그룹 압수수색과정에서 발견된 ‘3·26문건’에서 더욱 힘을 받게 됐다.
이 문건에는 SK(주) 주식가치가 워커힐 주식가치보다 2배 정도 높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실제 거래는 거꾸로 워커힐 주식 1주에 SK(주) 주식 2주가 맞교환됐다.
검찰은 이 문서 등을 근거로 최 회장이 SK(주)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비상장된 워커힐 주식을 과대평가했다고 얘기하고 있다.
검찰 적극성에 참여연대도 ‘깜짝’ 그렇다면 최 회장은 그동안 SK그룹을 장악하고 있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SK그룹에서는 SK(주)의 대주주가 되면 사실상 그룹을 지배하게 된다.
SK(주)가 각 계열사에 촉수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 회장은 그동안 SK C&C→SK(주)라는 간접적 방법으로 SK그룹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고 있었다.
최 회장이 SK C&C의 지분 49%를 갖고 있고, SK C&C는 다시 SK(주)의 주식 10%를 갖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지난해 4월초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시행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SK C&C가 SK(주)에 대해 갖고 있는 의결권이 크게 축소됐기 때문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각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에 대해 갖고 있는 지분 가운데 순자산의 25%를 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제한하고 있다.
복잡한 계산 과정을 생략하면, 결론적으로 최 회장은 SK(주)에 대해 10% 가운데 2%에 대해서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 때문에 최 회장은 SK(주)에 대한 직접적 지분 높이기를 시도한다.
이를 위해 최 회장은 당시 보유하고 있던 워커힐 주식 225만주(40.7%)를 주당 4만495원에 SK C&C에 넘기고 SK C&C는 갖고 있던 SK(주) 주식 646만주(5.08%)를 최 회장에게 넘겨줬다.
최 회장과 SK C&C가 워커힐 주식과 SK(주) 주식을 맞교환한 것이다.
결국 최 회장은 SK(주) 지분을 5.2%까지 확보해 최대주주가 됐다.
문제는 비상장회사인 워커힐 주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다.
최 회장이 SK(주)와 워커힐 주식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워커힐 주식을 과대평가해 700억~800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하지만 워커힐 주식은 비상장주식이고 거래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 가치를 평가할 만한 기준이 없다.
현행 기업회계기준조차도 비상장주식에 대해 “합리적인 평가모형과 적절한 추정치를 사용해 신뢰성있게 평가한 금액은 비상장주식의 공정가액으로 볼 수 있다”고 할 뿐이다.
명확한 가격산정 방식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비상장주식에 대한 ‘고무줄 평가’가 가능한 셈이다.
그나마 구체적으로 적시한 것은 상속증여세법이다.
상속증여세법에 따르면 비상장주식은 주당순자산가치와 주당순손익가치를 비교해 큰 것을 가액으로 계산한다.
다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5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경우에는 주당순자산에 30%를 가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워커힐 주가, 호텔신라보다도 한수 아래 SK그룹쪽은 “워커힐 주식에 대한 평가는 상속증여세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SK그룹 관계자는 “워커힐 주식은 법에 따라 주당순자산가치에 30%를 할증했기 때문에 가격이 높아졌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검찰은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비교하면 SK(주)의 주가가 높은데도 워커힐 주가를 SK(주)의 2배로 평가한 것은 과대평가다”고 주장한다.
회계 전문가의 의견도 검찰의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 회계사는 “비상장기업을 평가할 때는 일반적으로 앞으로 순이익이 얼마나 날 것인지, 순자산가치가 얼마인지를 따진다”며 “워커힐 주식은 어느 쪽으로 평가해도 주식가치가 4만원까지 나올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오히려 “워커힐은 동종업계인 호텔신라와 비교해도 결코 수익가치나 순자산가치가 높지 않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당시 상장사인 호텔신라의 주식가치가 1만원 안팎이었던 것과 비교해 워커힐 주가를 1만2천~2만3천으로 평가하고 있다.
SK그룹의 이면계약과 최 회장의 내부거래를 통한 부당이익에 대해 검찰은 유례없는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의 재벌지배구조에 대한 의지도 확고하다.
SK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상장주식을 이용하거나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등을 이용해 계열사들을 지배하거나 상속증여의 수단으로 사용해온 다른 재벌들이 긴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JP모건과 이면거래 요지

SK그룹과 JP모건의 주식 이면거래 사건의 발단은 지난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금융감독원은 부실해진 SK증권에 경영개선명령을 내렸다.
SK증권은 부실을 만회하기 위해 JP모건으로부터 돈을 빌려 동남아통화표시 파생상품에 투자했다.
하지만 태국의 바트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SK증권은 2천억원의 손실을 입게 된다.
99년 9월 SK증권은 유상증자를 하게 된다.
SK증권은 이때 JP모건에게 빌린 돈을 갚는 대신 JP모건이 유상증자에 참여하도록 하면서 일정가격 이상으로 되팔 수 있도록 하는 풋옵션 이면계약을 맺는다.
문제는 여기서 불거져 나왔다.
JP모건은 지난해 10월 SK증권의 주가가 하락하자 이면계약에 따라 SK그룹에 SK증권지분을 재매입하라고 요구했다.
SK글로벌 해외 현지법인은 이 주식을 매입하면서 JP모건의 손실을 보전해준다.
결국 SK그룹은 SK증권의 퇴출을 막기 위해 관계사인 SK글로벌쪽에 손해를 입힌 것이다.
이는 곧 배임죄로 연결된다.
게다가 이런 이면계약을 공시하지도 않았다.
공시의무를 위반한 셈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SK증권에 증권거래법과 공시규정 위반으로 과징금과 경고조치를 취했다.
문제가 불거지자 최 회장은 사건을 덮기 위해 사재 등을 출연해 SK글로벌 현지법인이 JP모건에 지급한 대금인 1060억원을 상환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참여연대는 최 회장 등이 배임죄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최 회장과 손길승 SK그룹회장 및 유승렬 전구조조정본부장 등을 검찰에 고발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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