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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8마일
[영화]8마일
  • 이성욱/한겨레21 기자
  • 승인 2003.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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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상을 저주한 에미넴에게 그래미는 ‘최고의 랩 앨범’ ‘최고의 랩 솔로 아티스트’ 등의 상을 푸짐히 안겨주었다.
한편에선 그를 여성차별주의자, 동성애 혐오주의자로 욕하지만 수많은 젊은이들의 열광적 지지는 그를 인기 정상의 백인 래퍼로 등극시켰다.
그의 노래에서 노골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는 건 나인 인치 네일스, 스파이스 걸스, 윌 스미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림프 비스킷 등의 동료 뮤지션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신을 비하하는 가사를 실었다고 어머니에게 고소당했을 만큼 그의 하드코어 랩이 벌이는 질주에는 경계선이 없다.
에미넴의 살기등등한 눈빛이 작렬하는(일부에서 그를 멋진 반항아 제임스 딘에 비유하는 건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8마일'은 자전적 영화답게 그의 노래가 왜 그리 거친지 고개를 끄덕이게 해준다.
그렇다고 에미넴의 프로모션용 영화쯤으로 오해해선 곤란하다(동성애 혐오주의자란 비난을 잠재우려는 장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영화의 내용처럼, 에미넴은 디트로이트 출생의 백인으로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며 랩을 통해 세상과, 또 자기 자신과 싸워온 과거가 있다.
그가 래퍼들이 일대일로 랩 대결을 벌이는 ‘랩 배틀’에서 비로소 승자로 올라서기까지 과정은 랩의 탄생비화를 제대로 보여주는 힙합 영화의 모범 답안 같다.
그러니 에미넴에 관한 전기영화로 국한시키지 말자. 게다가 헤어나올 수 없을 것만큼 질척거리는 수렁 같은 삶을 견뎌내는 순간들의 축적은 '8마일'을 괜찮은 성장영화로 이어준다.
버니 래빗으로 불리는 지미 스미스 주니어(에미넴)는 디트로이트의 흑인 거주지에 산다.
두서없이 사는 어머니(킴 베이싱어)의 트레일러에 얹혀 살고, 쓰레기 봉투를 가방 삼아 옷을 넣고 다니는 팍팍한 인생이다.
그의 유일한 희망은 랩. 온통 흑인들뿐인 클럽에서 랩 배틀에 출전하지만 입 한번 열지 못하고 무대에서 내려서는 그의 팍팍한 신세는 도무지 역전의 기미가 안 보인다.
이런 그를 끝까지 독려해주는 건 흑인 친구들의 신심이다.
음악영화인만큼 음악까지 맡은 에미넴의 독특한 보컬을 들을 수 있는 건 물론이다.
또 바닐라 아이스, 윌리 넬슨 등 팝 가수들에 대한 예의 그 조롱기, 닥터 드레(에미넴을 발탁한 음악적 스승이기도 하다)와 투팍 등 정상급 래퍼에 대한 촌평도 양념처럼 끼어든다.

슬램

록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많지만 랩 장르를 영화화한 건 그리 많지 않다.
'8마일'에서 래빗은 꼬깃꼬깃 접은 종이 조각을 가지고 다니며 틈나는 대로 랩 가사를 적는다.
이 장면은 '슬램'에서 감옥에 갇힌 한 흑인이 시를 쓰듯 랩을 엮어가는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98년 선댄스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고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받았다면 영화적 완성도가 아주 뛰어나다는 증거일 텐데, '슬램'은 '8마일'처럼 랩의 사회사적 의미를 제대로 짚어주는 음악 영화다.
마리화나 거래로 살아가는 시인이자 래퍼인 레이 조슈아의 삶을 통해 흑인들의 닫힌 현실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영화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레이에게 랩은 유일한 안식처이자 세상으로 뻗는 확성기다.
각본·감독을 백인인 마크 레빈이 맡았다.
1998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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