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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새 정부 취임식 참석차 방한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
[인물]새 정부 취임식 참석차 방한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3.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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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1943년 미국 인디애나주 출생 1967년 미국 MIT대 경제학 박사 1969년 미국 예일대 경제학과 정교수 이후 프린스턴, 스탠퍼드, 옥스퍼드대에서 강의 1993~97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 위원장 1997~99년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및 부총재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현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 적절한 시장개입은 경제에 보약 막바지 선거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던 지난해 12월. 대통령 후보 경제분야 TV 토론에 나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입에서는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란 이름이 튀어나왔다.
금융위기 당시 IMF가 취한 조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빌어 새 정부 경제정책의 좌표를 둘러싼 가벼운 논란이 오가던 대목에서였다.
세계은행의 부총재이자 수석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던 스티글리츠 교수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이 금융위기의 격랑 속에 허우적대던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본 대표적 증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금융시장 개방을 지렛대로 삼은 “세계화가 개발도상국들, 특히 그 사회의 약자들에게 미치는 황폐화 효과”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분석은 훗날 대표작 '세계화와 그 불만'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하지만 스티글리츠 교수가 고작 IMF로 상징되는 ‘월스트리스-재무부 복합체 권력’에 쓴소리나 해대는 ‘무서운 아이’(enfant terrible)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인디애나주 공업도시 게리에서 보험모집인과 공립학교 교사의 아들로 자란 그의 관심은 어릴 적부터 이 지역의 노동자들을 취업과 실업의 순환 속으로 몰아넣는 경기변동에 쏠렸다(20세기 대표적인 경제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새무엘슨과 같은 마을에서 태어난 건 흥미롭다). ‘정보의 비대칭성’이라는 문제에서 그 비밀을 풀 실마리를 찾아온 그의 오랜 발걸음은 마침내 정보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과학문을 활짝 열어젖혔고, 지난 2001년 그에게는 노벨경제학상의 영예가 돌아왔다.
그의 모든 행보에는 “현실에서 시장은 결코 완전하지 않다”는 굳은 믿음이 언제나 함께한다.
이쯤 되면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철학에서 시장으로부터 ‘튕겨나온’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눈길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스티글리츠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읽어낼 수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때마침 새 정부 출범에 즈음해 스티글리츠 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당일, 바쁜 공식일정에도 노무현 대통령이 면담시간을 할애한 몇 안 되는 인물 가운데 하나다.
스티글리츠 교수와 'Economy21'의 만남은 취임식 이튿날 아침, 그가 머물고 있는 서울시내 한 호텔방에서 이루어졌다.
전날 늦게까지 이어진 취임 축하연에 참석하느라 꽤나 피로를 느꼈음직한데도 스티글리츠 교수는 쾌활한 모습으로 'Economy21' 취재진을 맞이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애덤 스미스의 명제는 틀렸다.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소탈한 그의 웃음은 이내 열정어린 목소리로 바뀌었다.
# 노 대통령과는 어떤 얘기를 나눴나. 경제기적에서 위기, 다시 회복으로 이어지는 한국 경제의 숨가쁜 드라마가 대화 주제였다.
한국인들은 위기를 겪으면서 지난날의 확신을 잠시나마 잃어버린 듯했지만, 이제 서서히 되찾고 있다는 걸 느꼈다.
한국 경제의 발전과정을 관심있게 지켜본 한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또 듣고 싶은 것도 많았다.
지난날 한국의 경제발전은 확실히 ‘워싱턴 컨센서스’라 불리는 것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앞으로 한국의 새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을 나눴다.
대통령 개인에 대한 관심도 컸던 터라 매우 즐거운 자리였고, 또 유익한 만남이었다.
공감하는 부분도 꽤 많았고. 우스갯소리지만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더라. 노 대통령이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얘기를 많이 한 걸로 알고 있는데, 두사람 모두 두나라의 16대 대통령이다.
(웃음) # 그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해외경제자문위 구성계획을 설명하고 위원장을 맡아줄 것을 제안했다고 하는데. (당시로서는) 아직 내각이 정식으로 구성된 것도 아니고. 그 문제는 새 정부의 경제팀이 꾸려진 이후에 공식 절차를 밟아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한국 사회 내부에서도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할 테고. 지금으로서는 뭐라 뚜렷하게 말할 수 없는 거 아닌가. # 정식 제안이 오면 받아들일 생각인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상당히 흥미로운(excited) 제안이다.
지금도 한국 경제에 관심이 무척 많고, 지난날 한국 경제가 보여준 모습이 나의 작업에 밑바탕이 된 건 사실이다.
기회가 되면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보고 싶다.
# 왜 당신이 해외경제자문위원장으로 추천되었다고 생각하나. (웃음을 지으며) 글쎄. 그거야 그쪽 사람들한테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다만 이런 얘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아시아 경제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정부 역할이 상당히 중요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시대는 모든 문제가 정부의 과도한 규제에서 오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아닌가. 산업정책만 해도 그렇다.
30년 전에 유효했던 산업정책을 지금 시점에서 다시 써먹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산업정책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아직도 정부가 맡아야 할 몫은 분명히 있다.
동아시아 위기는 정부의 과도한 규제 때문에 찾아온 게 아니라,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글쎄, 나의 이런 생각들을 새 정부를 꾸려갈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어 한국 경제 ‘성공의 속성’(nature of success)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국 경제는 자원이나 자본, 지식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나름의 길을 걸어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부족한 자본을 무작정 바깥에서 끌어오기보다는 높은 저축률로 해결한 건 대표적 사례다.
그만큼 “대외요인에 의한 불안정성을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해외의 선진지식을 발 빠르게 습득해 국내 경제발전의 동력으로 삼은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정부의 활동적 산업정책과 적절한 거시정책이 보태져 한국 경제를 업그레이드시켰다는 게 그의 논지였다.
사실 스티글리츠 교수의 이런 생각은 오늘날 대표적인 후발산업화 국가인 중국 경제를 바라보는 그의 입장에도 어느 정도 투영되어 있다.
급작스러운 충격요법을 택한 러시아보다는 점진적 변화를 택한 중국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 그럼 이런 얘기도 해볼 수 있지 않나. 아시아나 남미 국가들 가운데 상당수는 ‘개발독재’란 이름의 독특한 산업화 과정을 겪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시장만능주의에 반대하는 사람 가운데서도 정부 개입이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목소리도 있다.
우선 민주주의와 발전 사이의 연계가 중요하다.
한국 사회가 관심을 끄는 건 약 15년이라는 시간 안에 민주화를 경험했다는 점이다.
15년이라면 고작 반(半) 세대다.
이런 다이내믹한 ‘이행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 내가 정부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해서 지난날의 개발독재 경험을 떠올리는 건 다소 무리라고 본다.
중요한 건 한국의 경제성장이 종합적 의미에서 지속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 과정을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민주적 방식으로 정부가 시장의 보완 역할을 하는 예는 여러 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정부 역할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나. 금융시장 얘기를 해보자. 오늘날 금융시장의 주류는 국경을 넘나드는 단기 자본이동이다.
특히 해외자본은 특정 나라의 이해관계와 맞지 않는 측면도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 속에서도 한 나라 경제의 장기적 성장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는 거다.
동아시아 경제위기도 결국 정부의 적절한 규제 없이 국제 금융시장에 완전히 노출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 아닌가. 좋은 금융 시스템을 만든다는 얘기? 좋지. 그런데 망하지 않는 은행을 만드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문제는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은행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다.
정부가 고민해야 할 건 바로 이런 문제들이다.
이 대목에서 자신이 일방적인 세계화 반대론자로 비쳐지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못박은 스티글리츠 교수는 한국도 분명 “세계화의 수혜자”일 수 있다며, 이제는 세계화를 둘러싼 논의 역시 찬성이냐 반대냐의 단순구도를 넘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로 옮겨가야 한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그의 억양도 높아졌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스티글리츠 교수와 취재진은 서둘러 한국개발연구원(KDI)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10시부터 그곳에서 스티글리츠 교수의 특별강연이 예정되어 있던 탓이다.
예상대로 강연장엔 사람들이 꽉 들어찼다.
방한 기간 내내 바쁜 일정을 이어간 스티글리츠 교수는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강약을 조절해가며 또다시 한시간 남짓 이어졌다.
정부와 시장이 긴밀하게 협조한 나라들만 성공의 열매를 딸 수 있었으며, 한국 경제의 미래 역시 정부와 시장의 파트너십에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는 청중들에게 다시 한번 전달됐다.
“자본주의에는 여러 형태가 존재한다.
1990년대 이후 미국식 시장자본주의의 우월성이 강조되지만 그건 진실의 일부일 뿐이다.
” 어느새 그의 강연도 종착역을 향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는 소득은 약간 낮지만 더 많은 일자리, 더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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