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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기업 투명성, 지난해 보다 후퇴
[커버]기업 투명성, 지난해 보다 후퇴
  • 이원재 기자
  • 승인 2003.03.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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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엔론사태 이후 세계 금융시장에서 ‘기업’과 ‘투명성’은 이제 뗄래야 뗄 수 없는 단어가 됐다.
국내에서도 강력한 재벌개혁 의지를 보이는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업지배구조와 관련된 논의도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투자홍보(IR)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기업들도 속속 전담 팀을 만들어 기업내용 홍보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한국 기업 주식을 팔아치울 때마다 걸핏하면 투명성 타령이다.
기업 투명성의 시대, 한국 기업들의 투명성은 높아지고 있는 걸까.

'Economy21'과 한겨레이앤씨 기업평가센터는 투자자들을 위한 기업분석을 맡고 있는 애널리스트들의 도움을 받아 2003년 상반기 현재 한국 상장기업들의 투자자들에 대한 투명성이 어느 수준인지를 평가했다.
서울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증권시장 상장기업 전체를 대상으로,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 161명으로부터 설문평가를 받아 집계했다.
각각의 기업마다 기업정보 제공의 양과 질, 투자홍보(IR)활동에 대한 기업 의지와 전문성, 기업지배구조의 건전성과 관련된 16개 항목의 점수가 매겨졌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2월과 8월 실시했던 '씽크머니'(현 씽크머니 섹션) 기업투명성 평가의 연장선에서 실시됐다.



상장·등록사 전체 평균 65.7점, 1.5점 하락

조사 결과 2003년 2월 현재 애널리스트들이 평가한 전체 한국 기업의 투명성 점수는, 100점 만점으로 환산했을 때 65.7점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년 전 조사에서 전체 평점이 67.2점이었으니 1.5점 떨어진 것이다.
증권시장에서는 국내 기업들의 투명성이 반년 사이 오히려 조금 후퇴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IR활동의 전문성(70.3점→67.1점), 최고경영자의 IR 의지(69.9점→67.0점), 주주권리 행사의 용이성(62.5점→59.8점), 공개한 기업정보의 정확성(79.6점→77.2점) 등이 가장 큰 폭으로 후퇴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신 기업의 배당실적(56.9→58.1)과 공시대상 이외의 중·단기 기업정보 제공(63.1점→65.2점) 항목은 점수가 올랐다.


한국 증시를 대표하는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만을 대상으로 평가범위를 좁혀봐도, 전체 기업보다는 낫긴 하지만 여전히 반년 전보다 약간 후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2월26일 현재 증권거래소에서 시가총액 10위까지인 삼성전자, SK텔레콤, KT, 국민은행, 한국전력, 포스코, 현대자동차, LG전자, 신한금융지주회사, 우리금융지주회사에 대한 투명성 점수는 평균 71.63점으로 전체 평균보다는 6점가량 높았다.
반년 전의 72.13점보다 0.53점 낮아진 수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행된 공정공시제도 탓에 정보공개 공정성이 향상되고 기업 경영자들의 투명경영 의지는 높아진 것으로 평가됐지만, IR의 전문성과 주주권리 행사 용이성 등은 오히려 후퇴한 것으로 평가됐다.


총점 기준 전체 1위는 포스코가 차지했고, 2위는 제일모직, 3위는 KT&G(옛 담배인삼공사)가 차지했다.
강원랜드와 KT가 그뒤를 쫓으며 5위권을 형성했다.
포스코는 이사회 운영 효율성, IR활동의 전문성, 기업 관련 정보 발표 시기의 적절성, IR조직과 관련행사의 규모, 관련산업 정보 제공 등의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포스코는 최근 유상부 회장 유임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투자자에 대한 투명성만큼은 시장에서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인 셈이다.
대주주의 전횡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점과, 지난해 말 배당을 늘리는 등 투자자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제일모직은 최고경영자의 투명경영 의지와 장기 경영전략 공개 등에서, KT&G는 배당실적에서 뛰어난 점수를 얻어 상위에 올랐다.


포스코와 제일모직은 반년 전 애널리스트 평가에서도 각각 6위와 9위로 상위를 차지했었다.
그러나 KT&G는 30위에서 3위로, 강원랜드는 56위에서 4위로, KT는 41위에서 5위로 크게 뛰어올랐다.
반면 반년 전 1위였던 국민은행이 17위로, 3위였던 하나은행은 48위로 추락하는 등 은행권 상위기업들이 전반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2위였던 엔씨소프트도 6위로 네계단 떨어졌다.



7개 기업 20위권 유지, 8개 기업 신규 진입


20위권까지를 살펴보면, 포스코 제일모직 엔씨소프트 LG전자 풀무원 INI스틸 국민은행의 7개 기업만이 지난번에도 20위 안에 들었던 기업이다.
8개 기업은 반년 전 평가에서 21~71위권에 있다가 20위권으로 약진했다.
대우조선해양 외환카드 LG화학 국순당 현대오토넷 등 나머지 5개 기업은 반년 전에는 충분한 숫자의 애널리스트로부터 평가를 받지 못해 순위 밖에 있다가 신규진입했다.
이들 5개 기업은 투명성이 향상됐다기보다는 시장에서의 기업 중요도가 높아져 순위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16개 평가항목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경영진이 특정 대주주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적인가’라는 문항에서는 엔씨소프트, 다음커뮤니케이션, NHN 등 코스닥 인터넷 기업들이 높은 순위를 싹쓸이했다.
이들 기업은 최고경영자가 대주주인데도 특정주주보다는 다수 주주의 이익에 따라 경영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공기업 민영화나 재벌의 변신이 가속화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정부지분이 큰 기업이나 재벌계열사들은 특정 대주주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인 셈이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현대 계열사인 현대오토넷과 정부가 대주주인 국민은행은 당당히 경영독립성 5위 안에 진입해 눈길을 끌었다.
반년 전 같은 항목에서는 하나은행이 선두였고, 국민은행, 신한금융지주회사가 뒤를 이은 바 있다.


IR 및 투명경영에 대한 최고경영자의 의지는 제일모직 안복현 대표이사가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안 대표는 반년 전 평가에서는 7위에 올랐었다.
포스코 유상부 대표, KT 이용경 대표, KT&G 곽주영 대표, 옥션 이재현 대표가 뒤를 이었다.
공기업 최고경영자들이 민영화 과정을 겪으면서 대체로 투자홍보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반면 국민은행 김정태 행장은 1위에서 13위로 떨어졌고,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는 3위에서 20위로 추락했다.


IR조직의 전문성에서는 공동 1위를 차지한 포스코와 제일모직 이외에, LG전자와 LG화학 IR팀이 나란히 3, 4위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LG전자 IR조직은 지난해 하반기 14위에서 이번에 3위로, KT&G는 17위에서 5위로 약진했다.
포스코, LG전자, 제일모직, LG화학은 IR담당조직의 규모와 위상에서도 각각 1~4위에 올라, IR업무의 전문성과 성과는 IR담당조직에 대한 투자와 비례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단 SK텔레콤은 IR담당조직의 규모와 위상은 다섯번째로 높다는 평가를 받았으면서도 IR전문성은 반년 전 1위에서 14위로 떨어졌다.



주주권리행사 용이성 등에선 낮은 평가


발표하는 기업정보의 정확성에서는 국민은행이 만점인 100점을 얻으면서 반년 전에 이어 1위 자리를 지켰고 포스코와 대우조선해양이 그뒤를 따랐다.
지난해 공정공시제도 시행 이후 부쩍 중요성이 커진 ‘의무공시대상 정보의 적절한 제공’ 항목에서는 강원랜드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번 조사에서는, 국내 상장기업들이 공개하는 기업정보의 정확성이나 의무공시정보의 적절한 제공처럼 법으로 강제되는 항목에는 상당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시장의 평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항목에서 전체 평균점수는 대개 70점 이상으로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주주권리행사 용이성, 배당실적, 이사회운영 효율성, 경영 독립성처럼 투자자가 직접 주주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항목에서는 50점대나 60점대 초반의 낮은 평가를 받았다.
앞으로 국내 기업들이 투자자들 앞에 더 투명해지려면 어디에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항목별 점수 가중평균해 환산

이번 평가는 2월17일부터 24일까지 'Economy21'과 한겨레이앤씨 기업평가센터가 국내 증권사 기업분석 담당 애널리스트 16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e메일 설문에 기초해 이뤄졌다.
평가대상은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기업 전체였으나, 설문대상자 가운데 모두 7명 이상의 애널리스트로부터 언급된 기업만 순위 내에 편입시켰다.
애널리스트들은 기관투자가들의 관심기업을 중심으로 분석대상을 정하므로, 현재 주식시장 기관투자가들이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기업들만 순위 내로 진입한 셈이다.

설문항목은 모두 16개로 이뤄졌다.
각 항목 점수는 애널리스트의 개인적 편견이 평가점수에 반영되는 폭을 최소화하기 위해, 체조경기에서 심판이 점수를 매길 때처럼 최고점수를 준 평가자와 최저점수를 준 평가자를 배제하고 나머지 점수의 평균으로 정했다.
이렇게 매겨진 항목별 점수는 다시 18개 증권사 리서치센터 책임자의 설문조사를 토대로 정해진 비중에 따라 가중평균해 100점 만점인 총점으로 환산했다.


'기업투명성 평가모형'
항목 /비중(총점 100%중)
정보의 정확성 4.37%
정보공개 적시성 3.04%
정보공개 성실성 3.22%
정보공개 공정성 2.71%
의무공시대상 정보공개 9.68%
중/단기 기업이슈 공개 7.11%
장기 경영전략 공개 5.13%
관련산업 정보제공 4.47%
최고경영자 IR의지 10.21%
IR조직 규모와 위상 3.45%
IR전문성 5.72%
IR행사 횟수와 규모 4.03%
주주권리행사 용이성 8.24%
이사회 운영 효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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