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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개미들 부나방 근성에 경종
[서평]개미들 부나방 근성에 경종
  • 임일섭/ LG경제연구원 책임
  • 승인 2003.03.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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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열 : 거품증시의 탄생과 몰락
로버트 J. 쉴러 지음,
이강국 옮김
매일경제신문사

그렇게도 당첨확률이 낮다는 로또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에 대해서 지나친 확신을 지니고 있다.
만일 사람들에게 이미 자신이 숫자를 정한 복권을 당첨발표가 나기 전에 팔라고 하면, 원래 들인 돈보다 4배나 비싼 가격을 부른다고 한다.
이른바 ‘마술적 사고’(magical thinking)라 불리는 사고의 패턴이다.


이렇듯 복잡한 심리적 요인은 주식시장에서도 어김없이 작동한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주식을 사면 주가가 오를 것으로 생각하면서 근거없는 소문이나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좇아 주식시장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몇년 동안 주가가 계속 상승하고,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주가상승에 대한 장밋빛 이야기들이 만발한 때라면 더욱 그러하다.
이렇게 폭등하는 주가는 으레 기업수익과 같은 펀더멘털과는 따로 놀기 마련이다.
사실 주식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온갖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복잡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이며, 금융시장은 속성상 결코 효율적이지 못하다.
애널리스트들의 수많은 보고서들, 이른바 과학적인 경제학 연구들이 시장을 예측하는 데 얼마나 무력한가.

쉴러의 '이상과열'은 1990년대 후반 미국 주식시장의 폭등에 대한 진지한 분석서다.
96년 12월 그린스펀은 당시의 주가 폭등에 ‘이상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란 이름을 붙이며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미국의 주가는 더욱 치솟았고 소위 신경제(New Economy)의 바탕이 되었다.
저자는 주가 폭등을 야기한 다양한 요인들을 지적하고, 이 요인들이 어떻게 투자자의 행동으로 이어졌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는 우선 주가 수준에 대한 역사적인 분석을 통해 당시의 주가는 기업 수익과는 무관한 투기적 버블임을 확인한 다음, 인터넷, 베이비 붐, 뮤추얼 펀드의 성장, 경제 매체의 역할 등 이러한 과열을 가져다준 다양한 요인들을 제시한다.



펀더멘털과 따로 노는 주가


나아가 그는 주가가 상승하는 증폭 메커니즘(amplification mechansim), 즉 투자자들의 신뢰와 기대가 상호작용하면서 주가상승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버블은 주가상승과 대중의 기대 사이의 정(+)의 피드백(positive feedback)이 작동한 결과다.
다시말해 사람들이 미래에도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과도한 기대에 근거해 행동한 결과였다.
역사적으로도,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도 주가의 버블은 신경제와 같은 ‘새로운 시대’(new era)가 도래하였다는 분위기와 함께 나타나곤 했다.
결국 그가 보기에 당시의 주가 폭등은 근거없는 과열,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버블이었으며, 실제로 그의 책이 막 출판된 2000년 상반기부터 미국 주식시장은 폭락했고 ‘신경제’가 약속하던 장밋빛 미래도 이제는 빛이 바래고 말았다.


쉴러와 같은 이른바 행동금융(behavioral finance) 이론가들의 관심은 심리적 요인과 이에 기초한 사람들의 행태가 금융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본격적으로 파헤치는 것이다.
이들은 금융시장이 이용 가능한 정보를 모두 반영한다는 효율적 시장이론을 반박하고, 심리학, 사회학, 역사학 등의 다양한 연구성과를 경제이론에 한데 녹여내고자 한다.
예컨대 투자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설문조사 등을 통해 실제 투자자들의 행동 유형에 대한 분석을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시장을 심리적으로 지탱하는 앵커(anchor)가 과도한 기대와 판단에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며, 복잡한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나타나는 소위 무리짓기 행위(herd behavior)와 전염(epidemics)이 어떻게 시장을 불안정하게 하는지에 대한 최신의 연구결과를 상세히 소개한다.


자, 그럼 무엇을 할 것인가? 금융시장이 결코 효율적이지 않으며 변덕스러운 투자자의 심리에 좌우되는 불안정한 것이라면, 어떤 대안이 있는가? 그는 버블의 위험을 경고하며 사람들과 정부가 미래를 위해 현재의 부를 불안정한 주식시장에 맡기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의 근본적인 대책이 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대부분의 학자들과 다르다는 점이다.



다소 위험스러운 대안, 시장 확대


대부분의 학자들은 시장의 불안정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으로 과도한 거래를 제한하는 세금이나 시장에 대한 규제 강화를 들먹이지만, 그는 과감하게 정반대로 나아간다.
즉 모든 상장기업들의 총 배당에 대한 시장, 혹은 세계 주요 국가들의 국민소득의 장기적 청구권에 대한 시장 등 더 많은 다양한 시장들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거시적 시장(macro markets)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시장의 창설을 통한 시장 그 자체의 확대 및 심화가 바로 그의 복안이다.
하지만 역자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시장의 불안정을 완화하기 위해 더 한층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은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이런 주장은 금융시장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이 책의 주제와도 상충되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의 불안정을 완화하기 위한 대안적인 정책들에 대해서는 더욱 깊이있고 현실적인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몇몇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주식시장의 버블에 관한 보기 드문 연구서다.
한국에는 조금 늦게 소개된 감도 있지만, 불안정성 또는 변동성이 어느 곳보다도 심한 한국의 금융시장에 주는 함의는 더욱 클 것이다.


물론 주식시장을 복권이나 도박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모두가 주식을 산다면 대부분은 일시적으로 부자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피드백이 반대 방향으로 작동할 때 나타난다.
모두가 주식을 팔려고 나선다고 해보자. 조금이라도 움직임이 늦은 사람에게 남는 건 오직 마이너스 통장뿐이다.
이 책은 진지한 경제학 연구자들보다는 주식으로 고민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더욱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비록 읽기는 만만치 않더라도, 적어도 ‘누구누구처럼 투자하기’, ‘며칠 내에 얼마 벌기’와 같은, 독자보다 저자에게 더 큰 부를 가져다주는 이런저런 투자 지침서들에 비해서는 훨씬 값어치가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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