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인 한 고독은 숙명일 테고, 그게 턱에 찰 만큼 밀려왔을 때 고통을 피할 방법도 없는 것 같다.
다만 상대적으로 유복해서 친근한 사람들이 늦게까지 주변에 남아 있는 삶이 있을 수 있을 뿐. 그것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퇴임한 지 오래된 한 연로한 선배가 “남은 일 중 하나가 죽음과 친해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고독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거나, 우기거나, 또는 그 고통이 별 게 아니라고 허한 큰소리를 치는 일 따위를 자제할 줄 아는 지혜일 것이다.
소중한 지혜이겠지만 그걸 구하기는 또 얼마나 힘들까. 다수의 범인들은 큰소리치다가 고통에 몸부림치고 그러면서 잠시 평정을 찾는 일을 끝없이 되풀이할 것이다.
' 어바웃 슈미트'는 노년에 갑자기, 주변에 아무도 없는 ‘절대고독’을 만나게 된 슈미트(잭 니콜슨)의 이야기다.
40년 넘게 보험회사에 다니면서, 한 여자와 살고 딸 하나를 낳은 슈미트는 정년 퇴임 며칠 뒤, 아내가 죽는 악재까지 겹친다.
독립해서 먼 마을에 떨어져 사는 딸은 곧 결혼할 처지여서 슈미트 곁에 머물지 못한다.
큰 집에 홀로 남은 슈미트. 끊임없이 사람 상대하는 일을 수십년간 해오면서 실존이 허해질 수밖에 없었던 샐러리맨이기에 고독감이 더 클 터. 슈미트는 탈속의 깨달음이나 죽음과 친해지는 지혜를 마련하지 못했다.
말수와 표정변화가 적고, 걸음도 느리게 걷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허풍과 두려움, 고통이 끝없이 반복된다.
'일렉션' 등 코미디에 역량을 보여온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그리는 슈미트의 모습은 안타까우면서도 우스꽝스럽다.
퇴임 직후 TV를 보다가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에 동참해 엔두구라는 탄자니아 어린이에게, 속절도 없이 자기 얘기를 편지로 쓴다.
그 독백과, 노인 같고 어린애 같기도 한 슈미트의 행동이 유머를 발할 때, 이면에 절대고독이 주는 고통의 깊이감이 잠시 머리를 들 뿐이다.
'어바웃 슈미트'는 어떤 메시지나 답을 주는 영화가 아니다.
휴먼 드라마처럼 흘러가지만, 한구석엔 서늘함이 숨어 있다.
희망적인 듯하면서도 비극적이기도 한 엔딩이 인상 깊다.
잭 니콜슨의 연기? 그는 스크린 안에서 그대로 슈미트가 되어 산다.
'어바웃 슈미트' 감독·각본: 알렉산더 페인 출연: 잭 니콜슨·캐시 베이츠 상영시간: 120분 등급: 12살 이상 관람가 개봉: 3월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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